외딴집 - 상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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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추리 소설의 배경으로 현대 보다는 몇 세기 전의 시대물이 더 흥미진진한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물론 동일한 작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영화라면 모르지만, 소설에서는 상대적으로 서로 소통이 되지 않아야 스토리텔링이 진지하고 구성도 탄탄해 질 것이다. 즉 어리석은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지나친 과학의 발전은 추리 소설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요즘 T.V 에서 많이 나오는 과학 수사 극을 보더라도, 머리카락 한 가닥이면 범인을 알 수 있으니 소설로 쓰여 진다면 얼마나 싱겁게 느껴지겠나.

 미야베의 엄청 두꺼운 『모방범』을 일본 출장길에 흥미 있게 읽으면서 보낸 적이 있다. 약간 술에 취해서도 긴박하고 섬세한 내용이 궁금하여 호텔 침대에서 읽은 것이다. 장정일이, 그의 작가 동료와 중국 여행길에서, 만리장성 일정을 취소하고 혼자 호텔에서 읽은 수준 높은 책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재미있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미야베의 소설이 그렇듯이 이 책도 어떤 사건을 단순히 해결하려는 본격 추리물이 아니라 따스한 인정과 사악함이 교차되는 시대물이다.  에도 시대 시코쿠의 작은 마을, 마루미 번에서 일어나는 외부인에 대한 차별과 미신, 조작과 은폐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바보라고 ‘호’라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은 이리저리 떠돌다가 악령이 산다고 하는 ‘마른 폭포 저택’에서 고용살이를 하는데 여기서 살인 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언로(言路)가 막혀있던 시절이라 소문이 소문을 낳고 확대 재생산되어 평화로운 마을을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가당찮은 ‘번의 존속을 위해서’라는 명분아래 소수자의 의견을 무시하고 부당하게 약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조직의 비리가 미야베 여사의 수려한 문체로 전개된다. 미야베 여사의 매니아들은 이미 읽어 보았겠지만 만약 아직 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빨리 하권을 해치우고, 『낙원』이 재미있다고 하는데 술을 줄이고 시간을 확보해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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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분
쑤퉁 지음, 전수정 옮김 / 아고라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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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작가 중에서 ‘위화’나 ‘쑤퉁’의 책은 국내에서 출간되어 나오는 대로 읽게 된다. 여기에 『핸드폰』의 작가 류전윈이 추가 되어서 세 명으로 늘었다. ‘모옌’도 많이 추천되는 작가지만, 그의 『풍유비둔』을 읽다가 던지 이후로는 그에게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아직은 모르겠다.

 이 책 『홍분』에서도 쑤퉁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오래된 우리 노래에 ‘여자의 일생’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가요를 생각하게 하듯이, 이 소설에서는 굴곡진 여성들의 삶을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문체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세 부분으로 나누어 실린 이야기는 고단하고 처절한 여성들의 삶이 생생하게 재현된다. 각기 다른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성들에게 유독 가혹했던 삶이 수련한 문체로 강물 흐르듯이 펼쳐진다. 밑바닥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때로는 그들의 진실을 볼 수 있고 웃음을 느끼게 하지만 행복 보다는 불행이 더 강하게 그들을 압박한다.

 개인적으로는 간장 공장 같은 구질구질한 배경이 짜증나기도 했지만, 아무리 어려운 고난과 슬픔 속에서도 해학을 잃지 않게 하는 쑤퉁 특유의 입담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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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류진운 지음, 김태성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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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제목의  소설도 있구나.’ 하고 집어든 책이다. 작가 프로필에 『닭털 같은 나날』이 지은 책으로 나와 있었다. 분명히 황석영이 극찬하여 읽은 책인데, 작가는 낯설었다. 다시 확인해 보니 이해가 되었다.  『닭털 같은 나날』에서는 류전운으로 되어 있었다.  외래어 표기라 그런지는 모르지만 약간 혼동이 있었다.

 핸드폰의 부정적인 요소인 단순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상당히 시사적이면서 대중적이다. 특히 한 번 이 책을 집어 들면 가독성이 강하여 연일 제쳐두고 끝까지 읽어야 한다. ‘위화’와 ‘쑤퉁’에 버금가는 글발과 위트, 재치에 흠뻑 빠지게 만든다고나 할까.

 크게 세 부분으로 된 연작이 서로 비교되면서 ‘말의 역사와 핸드폰’을 풀어 나간다. 이 소설의 가장 많은 주된 내용은 어느 방송국의 토크쇼 사회자인 엔셔우이의 핸드폰이 사건을 주도해 나간다. 아니 ‘말’이 문명의 이기인 핸드폰을 통해서 어떻게 분란을 일으키는지 보여준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주인공 옌셔우이의 할아버지는 ‘결혼하러 고향으로 오라는 당시의 아버지의 말’을  2년 만에 듣게 된다. 앞선 전달자는 말을 전하고 불행하게 죽고, 또 죽고 하여 3단계의 사람을 거쳐서 결혼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는 것이다. 불과 몇 분과 2년의 차이가 핸드폰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망설이게 한다.

  옌셔우이는 핸드폰이 여자를 후리는데 편리성 면에서 많은 도움을 받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을 인해 파멸의 길에 들어선다. 글쎄, 이것도 이 책이 주는 효용론이라기에는 좀  그렇지만, 즉흥적이고 일회적인 사랑은 하지도 말고, 편리성만을 고려하여 핸드폰에 의지하다가는 꼼짝없는 물증으로 박살나는 수가 있음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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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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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종가의 문화적 전통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최명희의 『혼불』을 생각했다. 내용면에도 유교 사상이 퇴색해 가는 끝머리에서, 종가를 보존하려는 세대와 별로 그런 것에 관심이 없는 현 세대와의 갈등이 중요한 얼개가 된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공통점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혼불』은 우리 민족의 당시의 가치관, 문화, 풍속이 씨줄과 날줄로 풍부히 제공되는 대하소설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과의 차이라 할 수 있다.

 무리하게나마 가문의 위상을 지키려는 할아버지의 집념은 집요하다. 반면에 서자 종손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손자는 그 문제에 대해서 타성적이고 회의적이다. 그들 할아버지와 손자는 한적한 사당, 효계당에서 끝임 없이 부딪치고 상처를 준다.

 뚜렷한 주관 없이 종가를 이어갈 책무를 지게 된 상룡은 비록 적극적이지 않지만 할아버지 의사에 비교적 순종적이다. 그러면서도 이런 압박과 출생에 대한 그의 내부적 반발이, 그렇게도 신체적 결함으로 증오하던 정실과 깊은 관계를 맺게 한다. 정실을 진심으로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기 도피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그녀를 범한다. 종손에 대한 중압감과 생모의 문제 등이 상룡을 편협하고 절망하는 인간으로 만든 것이다.
   
 상룡에게, 종가를 지키어 후손에게 승계 시키려는 할아버지는 거대한 산이다. 귀한 자손에 한숨 지며 몰락해가는 가문을 떠받치면서도 그 위상을 추호도 잃지 않으려는 할아버지. 상룡과 할아버지는 서로 공감하고 그렇게 쉽게 소통해 갈 수 없었다. 서로 이해하고 타협하기 보다는 체통과 체면으로 포장된 껍데기들의 삶이었다.

  상룡의 역대 종상 묘에서 나온 언간(언문편지)은 할아버지의 자부심이었다. 조심스럽게 상룡을 통하여 언해된 내용은 아이러니하게도 가문에 먹칠을 하는 내용이었다. 할아버지는 그 언간을 찢어버리면서 강하게 부정하려 한다.

 어찌 보면 가문이나 가통이 허상에 불과하다고 본다. 이문열 같이 조상을 자주 들먹이며 금과옥조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인간이 그렇게 혈통에 의해서 많이 좌우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종종 억지 춘향식 가문 타령을 들으면 신물이 난다.

상대적으로,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신생아로 밟혀서 죽임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은 무엇이로든지 정당화 될 수 없다.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강간을 당한 아내에게 남편이 ‘당신의 행실이 가해 남성을 자극해서 이 재앙을 자초했다’ 질책했다고 하니 이 얼마나 마초적 발상이고 야만적인가.

 아무튼, 흔한 소재로 다루어진 이야기지만, 작가의 탄탄하고 빈틈없는 구성력으로  흥미 있게 읽을 수 있었다. 간간히 나오는 예스런 문체가 분위기를 더욱 실감나게 하고 변화를 주어, 읽는 이를 소설 속으로 쉽게 빠져들게 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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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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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읽고 공감 받은 바 있어 그녀의 책을 나오는 족족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최근 수 년 간은 국내 작가의 책을 의식적으로 읽지 않아서 무슨 책이 나왔는지 흐름을 잘 알지 못했었다. 어느 날 제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이 책을 빌려보게 되었다. 선뜩 이 책을 보게 된 것은 솔직히, 세 번 이혼하고 성씨가 다른 세 명의 아이를 키운다는 작가의 이력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오로지 작품성을 가지고 평가받아야 문학적 업적을 작가의 특이한 이력에 대한 호기심을 해소하려는 차원의 책 읽기를 비난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일반적이지 않은 작가의 이력에 끌리어 공지영의 이 책을 선택한 이도 적지 않으리라. 언론에서도 이 점을 부각시켜 어려운 환경이지만 당당하게 살아가는 한 여인을 책 선전에 이용하려는 의도가 보였고, 27쇄라는 출판 캐리어도 이점을 짐작하게 한다.
 
  작가의 이런 당당함이 소시민적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부러웠다. 과감히 자기를 오픈 시키고 사회의 온갖 따가운 시선을 감내하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 살아가는 한 여자의 삶은 그 자체가 숭고하기까지 하다. 주인공처럼 과감한 결단으로 주체적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여자들이 많으리라. 그냥 참고 얼마 되지 않는 인생을 하루하루 밀어내고 있는 이들이 이 책을 읽고 생각을 좀 달리한다면 하는 생각을 했다. “이혼하는 것은 불행한 것이지만, 불합리한 것을 그냥 참고 사는 것은 더욱 불행하다.”는 대화는 많은 공감을 가지게 한다. 물론 후기에 작가는 이 작품은 픽션인 소설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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