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사월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유정희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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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엄청난 소설을 만나게 된 것은 역시 책을 통해서이다.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에 공동 필자인 소설가 김진규는 이 책을 읽고 그렇게 울었다고 한다. 이 책의 무엇이 그녀를 눈물까지 흘리게 만든 것일까.  궁금해졌다. 소설가라면 어느 정도 감정의 기복을 다스리는데 이골이 나지 않았나. 그런데 무엇이 그녀를 이 책에 빠지게 했나 호기심이 갔다. 아울러 김진규의 책 <모든 문장은 나를 위해 존재 한다>를 읽으며, 어떤 책이 그녀를 소설가의 길로 가는데 영향을 주었나 알아보고 있는 중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비와 안개에 싸인 알바니아 고원지대에서 벌어지는 인간 실존의 비극적 서사시’ ‘삶은 죽음 앞에 주어진 짧은 휴가였다.’ 로 이 소설을 소개하고 있다. 책 표지의 이 문구는 강렬하면서도 읽는 이를 허무하게 만든다.  옛 관습법에 따른 피의 복수, 피의 회수라는 문장은 사람의 소름이 끼치게 만든다.

 알바니아는 코스보라는 나라와 동시에 언젠가 뉴스에 소개된 적이 있었다. 그래도 어디에 붙어 있는 나라인지는 알기 어려웠다. 검색해 보니 발칸반도에 있는 나라로 대충 짐작이 갔다. 종교가 70%가 이슬람교라고 한다. 간간히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에서 남자들이 그들의 가문을 위해 자기의 여동생을 총으로 쏴 죽였다는 외신을 본 적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갑자기 떠오른 기억이다.

이슬람교도들의 인상은 나에게 야만적으로 각인되어 있다. 남존여비가 철저하다 못해 폭행과 살인을 예사로 하고, 여자를 자신들의 하나의 부속물로 여기는 사람들. 이 책에도 딸이 시집갈 때 총을 챙겨서 보낸다고 한다.  나는 그들의 딸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는 차원으로 그러는 줄 알았다. 그것이 아니었다. 자기의 딸이 잘못하면 사위가 총을 사용하라고 처가에서 예물로 보낸다니 놀라울 일이다. 그리고 침대에서 생을 마감하느니, 총을 맞아서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안다니 다분히 호전적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오래된 과거의 이야기겠지만, 척박한 땅에서 어렵게 살아서 그런지 삭막하기만 하다.

 이 책은 그조르고라는 주인공이 자기 형의 복수로 다른 가문의 피를 회수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카눈의 전통이 주요 소재라고 하는데 어찌 보면 정교한 관습법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그러나 끔찍스럽다. 서로 번갈아 죽이고, 시체 옆에 총을 놓아두어 사자를 모욕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해자가 피해자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음식을 먹는 장면은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이 책은 고귀해야 할 인간의 생명을 명예를 위해 파리 목숨 다루듯 한다.  현대 문명의 관점에서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산업화에 따른 물질문명의 시대의 도래는 도덕이나 명예 같은 우리의 기본 윤리를 급속히 퇴색시키고 있다. 좀 야만적이라 그렇지 그런 관습법이 그들이 삶아가는 최선의 선택이요, 지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실정법을 어겼으면서도 뻔뻔스럽게 용감히 살아가는 고위층 인사들이 많다. 최소한의 도덕심도 지나가는 개에게 주어버렸는지, 경제만 살리고, 정치만 잘하면 된다고 설치고 있다.    

이 책에는 미쳐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알바니아 특유의 관습이 소개된다. 왜 이들은 손님을 그렇게 우대했는가.  심지어 손님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담보해야 할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알바니아인은 왜 혈연관계를 포함한 인간의 다른 모든 관계를 넘어서는 위치에 손님을 올려놓는 관습을 만들어냈느냐고 재차 질문했다.”(98쪽)

이 책은 작열하는 태양아래 사막을 걷듯이 팍팍한 느낌이 든다. 인간의 숙명과 고통스러운 삶에 대해 눈물을 흐리게 할 정도로 기괴하다. 건조한 문체에 기상천외한 사건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언제 총성이 들릴까. 어디서 비극이 찾아드나 긴장하면서 읽게 한다.  
“끔직하고 터무니없어! 그리고 뭐랄까, 숙명적이야----
그가 대답했다.
사실이야 이건 끔찍하고 부조리하고 숙명적이야. 다른 모든 위대한 것들처럼“(92쪽)

검색해 보니 이스마엘 카다레를 ‘일단 한 권 읽고 나면 전작을 읽고 싶어지는 작가’로  소개하고 있다. 나도 그의 책을 모두 읽고 싶어 준비하고 있다.
<돌에 새긴 연대기>, <아가멤논의 딸>,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광기의 풍토>, <꿈의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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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글감옥 - 조정래 작가생활 40년 자전에세이
조정래 지음 / 시사IN북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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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감탄을 했다. 그것은 조정래의 대하소설의 성공 때문이 아니다. 그의 책 한 권이라도 안 읽은 국민은 얼마 안 되고 그의 명성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므로.  또한 그의 자기희생적 글쓰기 분투기도 아니다. 그것 역시 간간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놀라게 하고 그를 존경하고 싶도록 만들며, 황홀하게 한 것은 그의 유창한 문체에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 책을 표현 문체론 관점에서 보면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글을 나는 자주 만나지 못했다.  그의 글은 마치 롤러코스트를 타듯이 리듬이 있다. 주르륵 주르륵 이쪽에서 저쪽으로, 문장과 문장의 이어짐이 시소를 타듯이 경쾌하다. 또한 단어의 쓰임이 평범한데도  바로 옆에서 말하듯이 유창하다. 그의 문장은 짧으면서도 그 느낌은 길다. 우리나라 작가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

  물 흐르듯 막힘이 없는 이런 글은 우연히 나오지는 않는다고 본다. 문학에 전력질주 해온 ‘문학 인생 40년’의 내공의 힘일 것이다. 산더미 같이 쌓인, 그가 써온 원고지를 찍은 사진을 보라. 자기 키 만큼 쌓인 원고의 높이가 주옥같은 글이 나올 수밖에 없음을 말해 주고 있다.

수십 년을 용광로에서 달고 달으면서 힘을 얻고 살이 붙으면서 생명력을 얻은 그의 글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저자의 이런 집중력이 즐겁고 감탄하게 하는 좋은 글을 만들고 시공을 초월하여 읽히는 명작을 탄생 시킨 것이다.

그의 대하 장편 소설 중 나에게는 <태백산맥>이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가장 먼저 나온 이 작품이 아직도 나에게는 등장인물의 이름이 떠오를 정도로 생생하다. 그것은 단지 그 책을 두 번이나 읽은 이유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그 뒤에 나온 <아리랑>과 <한강>도 수작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앞의 작품보다 좀 구성이 느슨해지고 캐릭터 묘사가 덜했다는 느낌이 든다.  “‘대하소설은 뒤로 갈수록 지루해진다.’라는 것이 대하소설의 정설이다.”(247쪽)처럼 긴 소설을 많이 쓰다 보니 그렇지 않나 짐작해 본다. (이 리뷰를 <황홀한 글감옥>을 중간 정도 읽고 썼는데, 이 책 뒤편에 보니 <아리랑>이 <태백산맥> 뒤진다는 평을 들을 까봐 좌불안석 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의 말대로 도서관이나 대여점에 있는 <태백산맥>은 걸레가 될 정도로 너덜너덜하게 읽혀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각 대학 도서관에서 대출 1위가 이 책이라고 했었다. 너무 유명세를 타다보니까 극우 세력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이 책의 저자가 생생한 현장 취재에 의해 쓰인 소설이 아니라고 반박하는 책도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읽은 지 오래되어 기억이 확실치 않지만 <태백산맥 그 현장을 찾아서>일 것이다.

물태우 시절 이름 석 자 알지 못하게 성씨를 제외하고 동그라미로 표시되었던 월북 작가들이 해금 되었다. 당연히 그들의 작품이 물밀 듯이 쏟아져 나왔다. 동광출판사의 <임걱정>, 백석, 오장환, 임화의 시 등이 대표적이다. 또 이 책에도 언급되었지만 빨치산 문학이라 하여 이태의 <남부군> 등 그 아류의 책이 나왔다.  이병주의 <지리산>도 한 몫을 했다.

이 시기에 설렘 속에서 <지리산>,<남부군>을 통해서 빨치산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즉 철저한 반공 교육 탓에 머리에 뿔난 괴물로 알았던 빨치산의 실체적 접근이 가능해졌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가족이 있고 삶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우리 보다 한 시대를 더 치열하게 풍미했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 죽음도 불사하는 매우 진지한 삶을 사는 자들로 인식하게 되었다.

<태백산맥>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나름대로 판단해 보면, 저자의 뚜렷하고 확연하며 창의적인 개성적 인물의 창조와 수련한 문체, 민족적 불행인 분단의 현실, 그리고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중적인 요소가 한 몫 했다고 본다.

그리고 전두환 사령관의 깡패 정치가 이 책의 뜨거운 반응에 상승 작용을 했을 것이다. 술자리에서 말 한 마디 잘못 해도 잡혀가 갖은 고초를 겪던 시절에, 절대 금기 사항을 치고 나갔으니, <태백산맥>은 역사적 진실에 목마른 독자가 찾게 되어 있었다. 당시에 우리 민족의 불행의 속살을, 남과 북을 동등한 입장에서 다루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지금도 지들만 군대 갔다 온 것으로 착각하여 생뚱맞게 색안경 쓰고, 군복 차림으로 설치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로 부터도 상당한 압력을 받았으리라.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 저는 그들의 공갈 협박에 맞서 맞고함을 질러대기 시작했습니다.”(262쪽)

 거듭 말하지만, 조정래의 글은 ‘아주 찰지고  졸깃졸깃하다’.   구수하면서도 애절한 느낌을 주는 전라도 사투리는 그의 작품을 읽을수록 정감이 간다. 독자의 몸에 착착 감기며, 때로는 분노하게, 때로는 껄껄 웃도록 조정래는 자기가 창조한 인물들을 몰아간다. 

조정래의 성공은 우연히 이루어 진 것이 아니다. “파지를 몇 장씩 내도 문장이 마음먹은 대로 엮이지 않습니다.”(244쪽) “문장 하나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한나절이 흘러가버린 것을 뒤늦게 깨닫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255쪽) 그렇다. 그의 작품은 뼈를 깎는 인고의 산물이다.

 그러면서 작가는 좋은 글을 쓰는 방법도 넌지시 훈수를 둔다.“ 글을 문난하게 잘 쓴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글을 물 흐르듯이, 그러면서 의미가 깊도록 쓰고 싶으면 많은 책을, 정신 모아, 유심히 읽는 습관을 들이십시오.”(297쪽)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다시 그의 대하소설로 겨울을 보내는 독자들이 많아 질 것같다. 이 <황홀한 글 감옥>을 읽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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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밋빛 인생 - 2002 제26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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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책 읽기 보다는 T.V 드라마에 더 열중인 아내가 꼭 읽어 보라고 권하여 읽기시작 했다.  이 소설의 내용과 달리 문체의 톤은 착 가라 앉았다. 가정이 있는 여자가 일 관계로 만난 나이 많은 미혼남과 벌이는 불안한 사랑이 이 소설의 큰 줄거리이다.

  그들은 서로 좋아하여 육체관계를 나누고, 잠시의 헤어짐도 못 참고 그리워한다. 여자의 남편이 찾아오면 그들은 묘한 삼각관계를 이루며 상재 남자는 질투의 감정에 휩싸인다. 대부분의 연애 소설처럼 어디 한 구석 들뜬 구석이 없다. 그래서 삼복염천 더위에 읽기에는 버거웠다. 별로 재미가 없었다.

  흔하디흔한 연애 소설이지만, 광고라는 직업으로 만나 두 남녀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허상을 교묘하게 터치한다.  인간의 이중성과 현대의 비주얼 문화에 대한 몰입을, 주인공의 심리를 치밀하게 따라가면서 들어낸다.

 결국 그들의 사랑은  과대광고처럼 진실 없는 허상에 불과했다. 서로 붙잡고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서로를 방관한다.  과대광고의 유혹에 숨은  허무함처럼 그들의 사람은 모래위의 성과 같이 순식간에 허물어진다. 

 사랑의 활력소를 모토로 이루어지는, 정애가 진행하는 요리 프로는 성황리에 방송되고 있지만, 성주의 아내 정애는 어두운 방안에서 울고 있다. 성주가 많은 사람들을 광고로 설득하고 있지만 자기 아내 하나는 설득 못 시킨다.  정애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사랑의 요리를 말하고 있지만 자기 부부의 사람은 회복 불가능한 지경에 빠져 버린다.

“삶이란 정색을 하고 저울질하기엔 너무 무거운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누구였으며 지금은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있었고 지금은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가? 붉은 펜으로 깨알같이 일정이 메모된 다이어리 속에? 내가 만든 광고의 장면 속에?”(139쪽)


 “아무래도 삶이란 정색을 하고 저울질하기엔 너무 무거운 어떤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무거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고 여행을 하고 쓸데없는 것들을 소비 한다. 그리고 절대로 상처받지 않을 거짓 사랑에 짐짓 빠져보기도 한다.”  (140쪽)

“살아간다는 건 그 무엇인가를 위해 날마다 존재의 일부를 내어놓는 일이다.”( 79쪽)

“이강호 모토 <인간은 자신을 지배하는 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가질 수 없는 존재이다>”(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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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원리 - 스마트버전
차동엽 지음, 김복태 그림 / 동이(위즈앤비즈)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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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에서 사원 연수를 갔다. 1년간 상조회에서 회사원이 내는 돈을 모아 1박 2일간 시행하는 연수다. 결국 사원의 돈으로 가니, 회사 연수가 아니라 그냥 술 먹고 논다는 개념으로 보면 된다. 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하는 측이 더 많다. 그런데 강제성이 강하다. 나도 별로 참여하고 싶지 않은 측에 속한다.  부족한 금전적 문제로, 한방에 많은 인원을 몰아넣고 지내라는 것은 몰개성적이다. 우리 자신을 스스로 존중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본다. 그래도 동료와 같이 부딪치고 지내다보면 친근감도 생긴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말이다.

요즈음은, 휴일 날을 반납해 가며 체육대회나 야유회를 갖는 회사는 거의 없다고 한다. 얼마 전 어느 시청에서 민원 때문에 휴일 날 체육대회를 하려다 직원들의 반발로 저녁에 산책하는 것으로 대신한 적이 있다. 이런 말을 동료 직원에게 하니 별 반응도 없고 생각도 없다. 무조건  따른다는 입장이다.

 한 방에서 여럿이 지내다 보니, 별 사람이 다 있다. 나도 그 한축에 속한다. 맥주한 캔하고 먼저 자려하는데, 술이 얼근한 후배가 들어 와서 난리를 피운다. 내 돈으로 안주를 시키고 술자리를 마련했다. 술 안 먹는 분들을 위해서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지금 와서는 내 머리를 찢고 싶을 정도로 후회스럽다. 더구나 안하무인격인 후배가 욕설을 하고 주정을 부리지 않는가. 평소에 별 말없이 지내지만 술만 먹으면 문제가 된다. 

그 사람은 큰 덩치에 과묵하고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인간적인 면은 비호감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방심하여 문제를 일으킬 소지를 남겼고 그에 대한 상처는 컸다. 술에 취해 지혜롭게 행동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할 수밖에 없다. 술자리에서의 해프닝이라고 넘어가면 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한편으로는, 당시에 그 후배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었다. 술에 만취되어서도 어울리지 않게 나와 같은 연배의 부사장에게는 대우가 달랐다. 그렇게 만취 중에도 여러 가지 아부하는 액션을 연출한다. 그리고 다른 저보다의 선배를 완전히 무시하고 시비의 대상이다. 참으로 비루한 인간이다. 그렇게 인사불성인 상태에서도 제 유리한 사람 구별은 철저하다.

정신적 상처가 컸고 그래도 신뢰했던 인간에 대한 배신감으로 종일 마음이 우울했다. 그래서 눈에 띠는 대로 책을 집어 들었다. 고난에 처하면 크리스천이 주님을 찾듯이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책을 찾았다. 정신적 외상을 위로 받고 나를 성찰하기 위해서다.

평소 자기 개발 도서는 별로 읽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차동엽의 <무지개 원리>를 읽게 되었다. 이런 내용이 있었다.

“증오와 분노가 신체의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의학적 연구에서 이미 밝혀졌다. 용서는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분노와 불평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가 건강하게 생활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용서하며 생활해야 한다.”(234쪽)

다시는 술자리에서 상대하지 말고 용서하자. 상황의 경중의 차이는 있더라도,  계속 떠오르는 낭패감과 망신살을 이렇게 잊어버리자. 도마뱀이 꼬리를 끊고 도망가듯이.

“여동생이 큰돈을 사기당하고 그 사기꾼을 원망하며 미워하고 또 없어진 돈을 아까워하며 속을 태우고 있을 때, 이를 곁에서 본 언니가 다음과 같이 충고 했다고 한다.
‘너는 도마뱀만도 못한 년이다. 봐라! 도마뱀은 꼬리를 밟히면 그 꼬리를 끊고 도망간다.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는 왜 그리고 미련하냐? 너를 짓밟고 있는 그 증오 때문에 너는 죽고 말 것이다. 미련 없이 끊어버려라, 뚝 끊어버리고 잊어라. 그래야 산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뚝 잘라 버리라. 그래야 산다.”(242쪽)

아울러 행복의 자기암시로 이해인 수녀의 시를 인용한다. 그리고 꼭 나에게 귀감이 될 말을 요약해 본다.    

 “나를 키우는 말”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
나도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되어
마음이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여기서 말하는 나는 누구일까?

“ 나는 위대한 사람들의 하인이고 또한 모든 실패한 사람들의 하인입니다.
위대한 사람들은 사실 내가 위대하게 만들어 준 것이지요. 실패한 사람들도 사실 내가 실패하게 만들어 버렸구요.
 나를 택해 주세요. 나를 길들여 주세요. 엄격하게 대해 주세요. 그러면 세계를 재패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나를 너무 쉽게 대하면, 당신을 파괴할지도 모릅니다.  ”                         습관

 


“ 첫째, 생각을 조심하라. 그것이 너의 말이 된다.
둘째, 말을 조심하라 . 그것이 너의 행동이 된다.
셋째, 행동을 조심하라. 그것이 너의 습관이 된다.
넷째. 습관을 조심하라. 그것이 너의 인격이 된다.
다섯째, 인격을 조심하라. 그것이 너의 운명이 될리라.“

20세에 암으로 죽은 매튜라는 청년은 죽기 10개월 전 다음과 같은 시를 쓰고는 죽음을 초월한 삶을 살다 갔다.

태양이 없으면 우리는 무지개를 자질 수 없지.
비가 없어도 우리는 무지개를 가질 수 없지.
아, 태양과 비, 웃음과 고통,
그것들이 함께 어울려 무지개를 만드는 거지.

이 시에서 무지개는 인생을, 태양은 삶의 긍정적이고 행복한 면을, 비는 삶의 어둡고 슬픈 면을 말한다. 그런데 이 시는 인생이 밝고 행복한 면과 어둡고 슬픈 면이 섞여 이루어진 것인, 비록 어둡고 슬픈 상황이 닥칠지라도 그것을 초월하여 고고한 태도를 유지하자고 하는 것이다.

“비관론자는 매번 기회가 찾아와도 고난을 본다. 낙관론자는 매번 고난이  찾아와도 기회를 본다.”
  윈스턴 처칠의 말이다. 사실이다. 이를 입증하는 실례를 들어보다. (288쪽)

“ 반대나 저항이 없으면 발전 가능성도 없다. 공기에 저항이 없으면 독수리가 비상할 수 없다. 물에 저항이 없으면 배가 뜰 수 없다. 중력이 없으면 걸을 수조차 없다. (291쪽)


비관론자는 매번 기회가 찾아와도 고난을 본다. 낙관론자는 매번 고난이 찾아와도 기회를 본다. 고난은 성장의 기회이다. 모든 가능성을 다 시도해보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I can do it
1. 고난 뒤에 숨은 은총을 보고 역경을 두려워하지 말자. 위기는 진정한 기회이고, 실패를 통해 성공할 수 있다.

2. 모든 것을 잃는 순간에도 포기하지 말고 다시 시작하려는 용기를 갖자.

3. 언제나 ‘선한 결과’가 오리라는 희망을 갖고 자신 있게 밀고 나가자. 기약된 미래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이의 몫이다. (302쪽)


* 포기하지 마라


때로는 잘못 되더라도
그대가 터벅대며 걷는 길이 오르막이더라도
지금은 부족하고 빚은 늘어나더라도
미소를 짓고 싶어도 한숨만 새어나오더라도
근심이 그대를 짓누르더라도
그래, 필요하다면 쉬어라. 하지만 포기하지는 마라.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삶에는 우여곡절이 있는 법
수많은 실패가 성공으로 바뀌지 않던가
성공의 기운이 엿보이면 그 기운을 꼭 잡으라.
성공이 뒤늦게 찾아온다고 포기하지 마라.
어느 날 불어온 바람이 그대에게 성공을 안겨줄 테니까

성공은 실패에서 태어나는 법.
의혹의 그림자가 은빛으로 물들더라도
그대는 성공이 가까웠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저 멀리 있는 것처럼 보여도 가까이 있을 수 있을 테니까.
그대에게 커다란 시련이 닥치더라도 싸움을 포기하지 마라.
최악의 상태로 치닫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마라.

                                    작자 미상 (303쪽)

유다인 성공의 법칙

하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행복과 성공은 ‘생각의 길’에 따라 정해져 있다.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사고를 버리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를 잦는다면 인생의 승리자가 된다. 미래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도전하는 자의 몫이다.

<실천 가이드>
1. 변화를 원한다면 긍정적, 적극적 사고로 ‘생각의 길’을 다시 내자.
2.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자. 걱정과 근심은 진취적 사고를 막는다.
3. 끊임없이 도전하자.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둘 1. 품고 있는 꿈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신념을 갖고 말로 선언하자.
2. 내가 가진 재능을 믿고 스스로를 격려하자. 그 믿음은 성공에 필요한 가장 큰 도구이다.
3. 백만장자가 되고 싶다면 백만장자처럼 행동하자. 삶은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만을 우리에게 준다.

다섯, 말을 다스리라
말은 살아서 움직인다. 우리의 뇌는 사실 관계와 주어를 구분하지 못하고 우리가 하는 말에 반응한다.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평범한 말이든 우리가 자주 쓰는 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된다. 그러므로 절제된 말, 격려의 말, 축복의 말, 승리의 말, 매력의 말을 해야 한다.
<실천 가이드>
1. 남을 축복하고 칭찬하는 말을 자주 쓰자. 내뱉은 말은 모두 부메랑처럼 나에게 돌아온다.
2. 긍정적인 말을 자주 쓰자. 내가 쓰는 말에서 미래의 성공과 행복이 예측된다.
3. 가족들, 특히 자녀들에게 희망의 말과 격려의 말을 자주 해주자. 그들은 말을 먹고 쑥쑥 자라날 것이다.

 
정현종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항상 감사하기


10대 자녀가 반항을 하면
그건 아이가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고 집에 잘 있다는 것이고,
지불해야 할 세금이 있다면 그건 내게 직장이 있다는 것이고,
파티를 하고 나서 치워야 할 게 너무 많다면
그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고,
옷이 몸에 좀 낀다면 그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이고,
주차장 맨 끝 먼 곳에 겨우 자리가 하나 있다면
그건 내가 걸을 수 있는 데다 차도 있다는 것이고,
난방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면
그건 내가 따뜻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고,
교외에서 뒷자리 아줌마의 엉터리 성가가 영 거슬린다면
그건 내가 들을 수 있다는 것이고,
온몸이 뻐근하고 피로하다면
그건 내가 열심히 일했다는 것이고,
이른 새벽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갰다면
그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고,
이메일이 너무 많이 쏟아진다면
그건 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지요.
마음속에 나도 모르게 일궈진 불평, 불만들,
바꾸어 생각해 보면 또 감사할 일이라는 것을 -------
                 -작자 미상   366쪽


장영희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김종삼의 ‘어부’

바닷가에 매어 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인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
사노라면
많을 기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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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김훈이 <칼의 노래>로 한 참 떴을 때였다. 당시에는 그에 대해서 그리 잘 알지 못했었다.  그런데 내가 오래 전에 구입한 <내가 읽은 책과 세상>이 그가 쓴 책이라는 사실에, 전부터 잘 알아 온 것 같은 친근감을 느꼈었다.  그의 명작 <현의 노래>를 비롯하여, <남한산성>, <강산무진>등을 차례로 구입했다.

 그러나 <강산무진>을 제외하고는 그의 어느 책도 읽지 못한 것 같다. 나에게 맞지 않았다고 할까. 아니면 너무 진지하고, 감정 과잉이라 불편해서 일까. 지금도 정확하게는 말하지 못하겠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연필로 꾹꾹 눌러 쓴’그의 투혼의 작품을 보려고 그의 책을 구입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동기를 읽는데 까지 발전시키지 못한 것은, 그의 또 다른 책 <밥벌이의 지겨움>과 관계가 있다.

그는 가난했었고, 동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하여 자신이 대학을 중퇴를 했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팍팍해서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서 각종 그의 인터뷰에는 밥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그 말이 반복되었다. 그의 삶의 무게가 글에 배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작품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 왔고 부담감이 생겼었다.

한국일보 시절 그는 글 잘 쓰는 기자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그의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 본 독자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롤러코스트를 타듯이 오르락내리락 박자가 있고 탄력성이 있는 그의 글을. 또한 진지하며 참신하기까지 하다. 가히 명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유난히 그의 언어는 자극적이며 처절하다. 마음이 무겁고 울컥하는, 섬뜩한 어휘 선택이 많다고 느낀 것은 부족한 나의 괜한 트집일까. 그런 예는 <바다의 기별> 부록만 봐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는 술을 꼭 ‘차가운 술’이라고 표현한다. “객지 선창에서 찬 술 한 잔 나누어 마시던”(198쪽) 아마도 약소한 술이라는 표현 일 것이다. “저주받은 역질(疫疾)이거나 거족적 규모의 치매처럼 보였습니다.” “저 젊어서 죽은 패륜아의 생애는” “저주 받은 혼백, 패륜의 혼백” “마땅히 흘려야 할 피를 정직하게 흘려가며” “이 난폭한 말을” “눈물이나 고름처럼” “죽어버린 말의 시체였음을”그의 책 서문 또는 수상 후기의 몇 장 안 되는 글에서 뽑은 내용이다.


“광야를 달리는 말이 마구간을 돌아볼 수 있겠느냐?”라는 말을 하며 동가식서가숙하는 부친의 슬하에서  자란 저자는, 삶이 불안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래서 그런지‘무사한 나날들’에서 저자는 조용히 소박한 자신의 행복을 펼친다.

“이 진부한 삶의 끝없는 순환에 안도하였다.” “진부하게, 꾸역꾸역 이어지는 이 삶의 일상성은 얼마나 경건한 것인가. 그 진부한 일상성 속에 자지러지는 행복이나 기쁨이 없다 하더라도, 이 거듭되는 순환과 반복은 얼마나 진지한 것인가. 나는 이 무사한 하루하루의 순환이 죽는 날까지 계속되기를 바랐고, 그것을 내 모든 행복으로 삼기로 했다.”(33쪽)

<바다의 기별>은 초반부‘달리는 말’과‘무사한 나날들’외에는 별 기별이 없다. 정말로 아주 사소한 잡문을 자가 200의 넓이로, 그것도 부족해서 전에 발표한 ‘서문’ 및‘수상 소감문’을 긁어모아서 엮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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