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사월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유정희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엄청난 소설을 만나게 된 것은 역시 책을 통해서이다.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에 공동 필자인 소설가 김진규는 이 책을 읽고 그렇게 울었다고 한다. 이 책의 무엇이 그녀를 눈물까지 흘리게 만든 것일까.  궁금해졌다. 소설가라면 어느 정도 감정의 기복을 다스리는데 이골이 나지 않았나. 그런데 무엇이 그녀를 이 책에 빠지게 했나 호기심이 갔다. 아울러 김진규의 책 <모든 문장은 나를 위해 존재 한다>를 읽으며, 어떤 책이 그녀를 소설가의 길로 가는데 영향을 주었나 알아보고 있는 중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비와 안개에 싸인 알바니아 고원지대에서 벌어지는 인간 실존의 비극적 서사시’ ‘삶은 죽음 앞에 주어진 짧은 휴가였다.’ 로 이 소설을 소개하고 있다. 책 표지의 이 문구는 강렬하면서도 읽는 이를 허무하게 만든다.  옛 관습법에 따른 피의 복수, 피의 회수라는 문장은 사람의 소름이 끼치게 만든다.

 알바니아는 코스보라는 나라와 동시에 언젠가 뉴스에 소개된 적이 있었다. 그래도 어디에 붙어 있는 나라인지는 알기 어려웠다. 검색해 보니 발칸반도에 있는 나라로 대충 짐작이 갔다. 종교가 70%가 이슬람교라고 한다. 간간히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에서 남자들이 그들의 가문을 위해 자기의 여동생을 총으로 쏴 죽였다는 외신을 본 적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갑자기 떠오른 기억이다.

이슬람교도들의 인상은 나에게 야만적으로 각인되어 있다. 남존여비가 철저하다 못해 폭행과 살인을 예사로 하고, 여자를 자신들의 하나의 부속물로 여기는 사람들. 이 책에도 딸이 시집갈 때 총을 챙겨서 보낸다고 한다.  나는 그들의 딸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는 차원으로 그러는 줄 알았다. 그것이 아니었다. 자기의 딸이 잘못하면 사위가 총을 사용하라고 처가에서 예물로 보낸다니 놀라울 일이다. 그리고 침대에서 생을 마감하느니, 총을 맞아서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안다니 다분히 호전적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오래된 과거의 이야기겠지만, 척박한 땅에서 어렵게 살아서 그런지 삭막하기만 하다.

 이 책은 그조르고라는 주인공이 자기 형의 복수로 다른 가문의 피를 회수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카눈의 전통이 주요 소재라고 하는데 어찌 보면 정교한 관습법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그러나 끔찍스럽다. 서로 번갈아 죽이고, 시체 옆에 총을 놓아두어 사자를 모욕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해자가 피해자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음식을 먹는 장면은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이 책은 고귀해야 할 인간의 생명을 명예를 위해 파리 목숨 다루듯 한다.  현대 문명의 관점에서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산업화에 따른 물질문명의 시대의 도래는 도덕이나 명예 같은 우리의 기본 윤리를 급속히 퇴색시키고 있다. 좀 야만적이라 그렇지 그런 관습법이 그들이 삶아가는 최선의 선택이요, 지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실정법을 어겼으면서도 뻔뻔스럽게 용감히 살아가는 고위층 인사들이 많다. 최소한의 도덕심도 지나가는 개에게 주어버렸는지, 경제만 살리고, 정치만 잘하면 된다고 설치고 있다.    

이 책에는 미쳐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알바니아 특유의 관습이 소개된다. 왜 이들은 손님을 그렇게 우대했는가.  심지어 손님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담보해야 할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알바니아인은 왜 혈연관계를 포함한 인간의 다른 모든 관계를 넘어서는 위치에 손님을 올려놓는 관습을 만들어냈느냐고 재차 질문했다.”(98쪽)

이 책은 작열하는 태양아래 사막을 걷듯이 팍팍한 느낌이 든다. 인간의 숙명과 고통스러운 삶에 대해 눈물을 흐리게 할 정도로 기괴하다. 건조한 문체에 기상천외한 사건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언제 총성이 들릴까. 어디서 비극이 찾아드나 긴장하면서 읽게 한다.  
“끔직하고 터무니없어! 그리고 뭐랄까, 숙명적이야----
그가 대답했다.
사실이야 이건 끔찍하고 부조리하고 숙명적이야. 다른 모든 위대한 것들처럼“(92쪽)

검색해 보니 이스마엘 카다레를 ‘일단 한 권 읽고 나면 전작을 읽고 싶어지는 작가’로  소개하고 있다. 나도 그의 책을 모두 읽고 싶어 준비하고 있다.
<돌에 새긴 연대기>, <아가멤논의 딸>,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광기의 풍토>, <꿈의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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