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삼성출판사 세계문학전집 중 너무 낡은 것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왔어요.하드커버에 종이질도 좋은 것을 구했거든요.그래봤자 80년대에 나온 것이지만 깨끗한데다 값도 쌌습니다.한 권 500원이니까  2000원에 네 권.겉모습만 보면 호화양장본이니 서재에 꽂아놔도 맵시가 있군요.또 이런 책은 누워서 읽기에도 좋아요.카슨 매컬러스<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헨리 제임스<대사들>,귀스타브 플로베르<감정교육>,토마스 하디<비련의 주드>가 그 책들이랍니다.

 

  그렇게 값싸게 책을 살 수 있는 곳이 어디냐구요? <아름다운 가게>라는 곳이에요.사회적 기업을 표방하며 공정무역 커피나 유기농을 재료로 하는 과자 같은 것을 팔기도 합니다.나는 군것질을 거의 안 하니까 책만 사는데 헌책방 중 가장 책을 싸게 살 수 있는 곳이라 종종 이용합니다.세로줄로 된 40여 년 전의 전집류부터 최신간까지 골고루 마련되어 있습니다.특히 어린이 청소년 도서가 많고, 절판된 소설류도 꽤 있습니다.

 

  헌책방에 잘 안 가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일반 헌책방은 책방에 따라 값이 들쑥날쑥합니다.나처럼 그쪽에서 흥정하는 법을 나름대로 잘 안다고 하는 사람도 예측불가입니다.헌책방에 잘 나오는 책들도  있는데 이럴 땐 평소 더 싸게 파는 곳에 가서 삽니다.헌책방들은 대체로 한 지역에 몰려있는데 바로 붙어있는 가게인데도 똑같은 책의 값이 다른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이런 형편에다 흥정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니 헌책방이 사양업종이 되는 것이죠.겉으로는 헌책방을 살려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막상 책 구입할 땐 가만히 앉아서 인터넷 거래로 책 받아 보는 사람이 많죠.입으로는 골목상권을 살려야 한다면서 실제로는 자가용 타고 마트 가서 물건 사는 것과 마찬가지 심리 아니겠어요?

 

  고물상은 헌책방보다는 더 싸게 책을 구입할 수 있지만 여기도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곳이 따로 있습니다.어디가나 유독 비싸게 부르는 업소가 있지요.나는 우리 동네에 한 군데, 시내 중심가에 한 군데 단골 고물상이 있습니다.고물상 입구에서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하면 "어서 오쇼."하고 인사 받아주는 그런 곳입니다.주인들에 의하면 폐지를 전문적으로 매매하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사러 일부러 고물상에 들르는 나같은 사람은 거의 없답니다.하긴 폐지가 산더미처럼 쌓인 꼭대기까지 올라가 여기저기 헤치며 책을 찾는 게 약간 노가다 같은 것도 사실입니다.맨손으로는 상처가 나기 때문에 나는 꼭 작업용 장갑을 끼고 책을 찾습니다.여러분도 한 번 고물상에 가서 책을 찾아보면 왜 장갑이 필요한지 알 것입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서도 어떤 것은 1000원 이하로도 괜찮은 책을 구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아무래도 1990년 이전 것은 안 나오는 게 흠이죠.예전에 얼핏 보니 80년대 책인 조진경<민족자주화운동론>이 나와있던데 이런 경우는 드뭅니다.내 경험으로는 일반 헌책방과 비교해 가격대비 만족도가 어떤지는 명확히 답하기가 힘듭니다.단, 검색기능을 비롯한 편의는 알라딘이 제일 낫죠.주인 눈치보며 흥정할 필요도 없고 몇 시간씩 책 본다고 직원이 쫓아내지도 않고요.

 

  모처럼 마음먹고 고물상을 찾아가도 전혀 헌책을 못찾을 때도 있습니다.그런가 하면 새 책이 무더기로 들어오는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사실 고물상의 산더미 같은 폐지더미 대부분은 신문뭉치입니다.그 사이사이 책들이 박혀 있지요.그러고 보면  갈 때마다 괜찮은 책을 싸게 살 수 있는 곳으로는 아름다운 가게가 제일 나아요.절판본도 꽤 있고 그리 낡지 않은 것도 1000원짜리가 많으니까요.

 

  도시의 편리함에 중독된 사람들은 일반 헌책방이 불편해요.골목상권 살리자는 사명감으로 뭉쳐봤자 헌책방 특유의 분위기에 적응하기 힘듭니다.더군다나 고물상에서 책 사는 건...사실 도시사람 옷차림으로 노가다 하는 기분을 내고 싶은 사람은 어쩔 수 없겠지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어색할 거에요.특히 여자가 폐지더미에 올라가서 책 찾기는 힘들 겁니다. 책을 찾으려고 끈에 묶인 신문더미나 광고지 더미를 계속 들었다 놨다 해야 하는데 이게 거의 웨이트 트레이닝 수준입니다.

 

  결국 깔끔한 정장을 입고 세련되게 책구경하면서 살 수 있는 곳은 알라딘 중고서점이나 아름다운 가게밖에 없군요.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겐 고물상에서 책 사는 것을 권합니다.물론 낯가림이 심하거나 공주병 왕자병 환자에겐 결코 권하고 싶지 않은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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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4-01-26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러 볼 계획이에요. 그래서 위치를 알아놨답니다.
팔아야 할 책 몇 권 가지고 가 보려고요.
책 구경도 실컷 할 수 있으니...

아름다운 가게, 고물상에 대한 정보... 님의 글을 읽으니 정보는 힘인 것 같아요. ^^

노이에자이트 2014-01-26 20:21   좋아요 0 | URL
알라딘 중고서점의 장점은 책을 현금과 교환해 준다는 것이죠.

아름다운 가게는 의외로 지명도가 약한 것 같아요.

transient-guest 2014-01-28 0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곳에서는 고물상은 모르겠지만, 헌책방외에 더 싸게 랜덤한 책을 만날 수 있는 곳은 구세군 마트입니다. 보통 창고와 함께 매장이 있는데, 온갖 물건을 다 기부받아서 되파는 수익으로 구세군 사업을 운영합니다. 친한 선배가 유학하면서 이곳에서 상당량의 재즈 LP를 구입했지요. 저는 작년 11월인가 12월인가에 동네 구세군에서 퍼언연대기로 유명한 앤 맥카프리의 1st Edition을 여러 권 구한 기억이 나네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고물상은 난이도가 높다고 생각되네요. 하지만 헌책방은 그 특유의 구수한 분위기와 꽉 찬 책이 정겹기 그지 없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4-01-28 13:39   좋아요 0 | URL
구세군에서 그런 판매도 하는군요.옛날 엘피도 팔고...

고물상 폐지더미...처음 보는 사람은 올라갈 엄두가 안 납니다.완전히 노가다입니다...

외국의 헌책방 구경도 가보고 싶군요.

세실 2014-02-02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쉽게도 청주에는 알라딘 중고서점이 없어요.
서울에 갈때 들려야지 하지만 시간에 쫓겨 그냥 내려옵니다. 언제쯤 청주에 생기려는지......
아름다운 가게는 있으려나.......요.

노이에자이트 2014-02-02 16:23   좋아요 0 | URL
전주에도 있는 걸 보면 광역시가 아닌 지방 도시에서도 운영하는 것 같던데 청주는 아직 안 들어왔군요.

자하(紫霞) 2014-02-02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제가 아름다운 가게에서 일했었지요.
초기에 광화문 아름다운 가게 헌책방은 책이 들어오는 날이면 주변의 헌책방에서 책 사러 많이 왔었다고 하더라구요. 요즘은 아름다운 가게 책도 가격이 예전보다는 올랐어요.
아동도서는 세트로 많이 파는데 알라딘 중고서점보다 싸다고 생각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4-02-04 12:22   좋아요 0 | URL
오호...거기서 일했군요.

헌책방에서 아름다운 가게 책을 사러 오기도 했군요.광주는 아름다운 가게 주변에 헌책방이 없어서 그런 일이 없어요.

저는 수십년 전 책을 주로 구하러 가요.새 책은 확실히 알라딘 중고점보단 아름다운 가게가 좀 싸더군요.

버벌 2014-03-15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라 아름다운 가게에도 책이 있나요? 집근처 들러봐야겠어요. 오랫만입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4-03-15 23:11   좋아요 0 | URL
반가워요~

예. 오래된 것부터 비교적 최근 것까지 다양하게 팔아요.들른 다음 방문기를 올려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