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 아파트는 이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도 저소득층이 사는 곳입니다.가끔 가다가 공공근로사업 할 사람을 모집하는 광고가 경비실 입구에 붙는 것이 그 증거지요. 공시지가도 이 부근 아파트에서 최저에 속한다고 합니다.이미 은퇴한 노인부부가 많이 살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내가 사는 아파트보다 조금 더 허름한 아파트가 바로 옆에 있습니다.그 아파트를 편의상 홍길동 아파트라고 합시다.내 이웃에는 그곳 아파트에서 이사온 사람이 있는데 한 번은 그 집 아줌마와 이야기를 하게 되다가 인류학이나 사회학 연구자들이라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홍길동 아파트에 살 때 여기 아파트에 사는 애들이 학교에서 우리 애를 얼마나 놀렸는지 몰라요.거지들이 사는 아파트에서 산다고...애가 어떤 날은 울고 오기도 하고 그랬다니까요." 사실은 이 아파트도 저소득층이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자기보다 더 가난한 아파트가 그 곳 한 군데라는 것을 어린이들이 아는 것이죠.어린 나이지만 이미 그런 것으로 구별짓고 차이짓는 마음이 들어서 버린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저소득층 아파트끼리 거의 붙어있는 상황에서 3년 전 고급아파트가 바로 이 부근에 생긴 것입니다.광주에도 이제 저런 고급아파트가 들어서는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그 유명한 XX 파크 아파트입니다.면적도 넓고 산에서 가장 전망좋은 곳에 들어선 3개동으로 된 아파트.제일 작은 동이 제일 뒤, 그보다 조금 큰 동이 바로 앞, 제일 큰 동은 앞이 툭 트인 전망좋은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멀리서 보면 그 아파트 바로 옆의 내가 사는 아파트가 참 대조적입니다.아마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 아파트에 사는 어린이들이 학교에서 이웃의 홍길동 아파트에 사는 어린이들을 놀리는 것을 보고 "우리 눈엔 다 똑같거덩!" 하는 반응을 보일 것 같습니다.
예전 흘러간 영어교재에 <안현필 영어실력기초>라는 책이 있었습니다.거기에 저자의 어린 시절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닭들을 키우는데 강한 놈이 약한 놈을 못살게 굴어서 그 약한 놈을 보호하고 강한 놈을 쫓아냈더니 그 도움 받은 약한 놈은 자기보다 더 약한 놈을 괴롭히더라는 겁니다.그 이야기를 어렸을 때 읽을 때는 그런 못된 일은 닭이나 저지르나 보다 했지요.하지만 저소득층이 대부분인 이 아파트의 일부 어린이들 역시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