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면에 학번 물어보는 관행이 왜 생겼을까요. 아무래도 5공화국 들어서서 대학생들이 늘어나서가 아닐까요.7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생들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고,대학생들의 학번을 내세우는 386이니 하는 단어도 없었습니다.시국사건 명칭을 따서 4.19세대, 6.3세대, 긴급조치 세대 등이 있었지요.이런 단어엔 대학생만의 것이란 느낌이 없었습니다.이승만의 부정선거에 반대한다든가 굴욕적인 한일회담 반대, 긴급조치의 폭압성은 전국민이 함께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 대학생임을 내세우는 학번을 내세우는 단어는 없었습니다.
90년대에 들어서서 사용되기 시작한 386세대라는 단어는 대학 경험이 없는 사람들을 배제해 버림으로써 세대론에서 새로운 기원을 이룹니다.그리고 이 단어가 쓰임으로써 그 전엔 학번을 내세우지 않았던 그 앞의 대학물 세례받은 이들까지 475세대라는 이름표를 붙이게 되었습니다.그러면서 90년대에 30대였던 이들은 학번을 물어보는 관행을 퍼뜨립니다.하지만 그 세대들 중 대학 나오지 못한 이들이 더 많으니 곳곳에서 어색한 장면이 일어납니다."저 학번이 어떻게 되세요?" 하고 물어보자 상대방은 "나 대학 안 나왔는데요..."하고 답해서 말을 이어가기가 곤란한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특히 60년대 출생자들 중 여자들의 대학진학률은 더 낮았으니...
오렌지족이니 불륜족이니 해서 비호감 집단을 나타내는 oo족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런 식으로 학번을 물어보는 이들을 학번족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이런 식의 질문은 한국특유의 연령주의에 학벌주의가 중첩된 고약한 관행이라 할 수 있겠지요.나이와 학력이 다르면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철칙을 깔고 들어가는 서글픈 사고방식이기도 합니다.사람을 사귀는 데에도 그 폭이 좁아집니다.
4.19세대는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5.19세대가 되지 않습니다.6.3세대도 마찬가지입니다.하지만 이제 386세대는 486이 되었고 곧 586도 멀지 않았습니다.이 386이라는 단어를 누가 발명했는지 참 이상스럽기도 합니다.이렇게 10년 단위로 바꿔야 하니까요.
학생운동 사상 가장 노동자 농민 등 민중을 많이 거론했던 세대들이 대학생들만이 공유하는 학번을 내세워 자기 정체성을 규정한 것도 찜찜한 역설입니다.그렇게 학번 물어보고 해서 돈도 벌고 행복해졌는지...이곳 호남지방에서는 이런 비호감을 이를 때 '느작없다' 혹은 '느자구없다'는 표현을 씁니다.간단히 "아이고...저 느자구..."라고도 합니다.나는 학번족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느자구도 되고 싶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