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팍 도사>에 낯이 익은 이가 나오더군요.사진작가 김중만.아...이제 저런 인물도 무릎팍 도사에 나오는 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혹시 신상옥이나 오수미 이야기도 할까...하고 지켜보았는데 살짝 언급하더군요.사실 그로서는 괴로운 상처를 덧나게 할 사람들일지도 몰라서 자세한 이야기 하기는 힘들었을 겁니다.그런데 인터넷에선 그 이야기 덕에 오수미 검색순위가 1위가 되기도 했다는군요.새로 올라온 오수미 관련 정보를 보니 그다지 새로운 것은 없었어요.그리고 인터넷에 나오는 정보라는 게 누군가 올려놓은 게 계속 퍼지고 퍼지고 하는 거잖아요.그래서 오류도 계속 퍼지고...그 중에 눈에 띄는 오해 하나...
70년대에 전성기였다가 80년대에는 B급 에로물만 출연하여 빛을 못보았다는 평이 많이 나오던데 글쎄요...저로서는 인정 못할 평입니다.새로 오수미를 검색해 본 이들은 주로 10대 20대들일 것이고 그래서 자세한 사정 알기가 쉽진 않았겠죠.그리고 재미있는 건 댓글에 오수미의 20대 미모에 대해선 대단하다고 해놓고도 80년대 사진에 대해서는 미모가 급속도로 사그라 들었다는 글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하지만 오수미의 진짜 매력은 오히려 30대에 있다고 봅니다.그것도 나이에 따라서 매력을 보는 눈이 좀 달라지기 때문에 그럴까요...
예전에 마광수 씨가 오수미를 최고의 매력을 지닌 여자라고 평한 글을 읽은 적이 있었어요.그때 알게 된 단어가 '퇴폐미'입니다.오수미에게 퇴폐미라는 게 있다는 겁니다.하지만 제 생각에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는 서글픈 혹은 우울한 에로티시즘이었습니다.그것은 그녀가 43세라는 젊은 나이로 하와이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1993년 이후에 그녀의 작품을 비디오로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특히 저는 오수미 하면 임성민을 생각하게 됩니다.어나운서 출신 연기자 말고 남자 임성민 말입니다.<색깔 있는 남자>(1985)<몸 전체로 사랑을>(1986)에서 오수미와 공연한 그 멋진 사나이 임성민.6척 장신에 건장한 상체,굵고도 그윽한 음성,세련된 매너의 바로 그 임성민.남자인 내가 봐도 반했던 남자.내가 여자로 태어난다면 저런 남자와 사귀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한 바로 그 남자 임성민.
오수미나 임성민이나 멋있으면서도 어딘지 우울한 어두운 구석이 있는 연기자였습니다.그래서 둘이 공연한 그 두 작품이 유독 기억에 남은 모양입니다.임성민은 체격이 좋은 데도 당시 역시 체격좋은 남자배우로 일세를 풍미한 마흥식의 야수같은 수컷 냄새는 없었습니다.어딘지 애잔한 분위기를 풍겼지요.여인의 가슴에 안겨 뭔가를 하소연하면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1995년에 38 세로 사망했으니 오수미 사망하고 얼마 안 된 시기입니다.말년엔 텔리비전 드라머 <폭풍의 계절>에서 김희애와 공연하여 불꽃을 사르기도 했지요.
저는 외국 배우 중에서 제니퍼 존스와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나오는 <종착역>(1953)을 오수미와 임성민 주연으로 다시 만들어 봤으면...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약간 불건전한 사랑...몽고메리 클리프트는 체격이 작은 배우이지만 어딘지 임성민 같은 분위기가 있었습니다.제가 감독이라면 오수미가 비오는 쌀쌀한 밤에 한적한 나이트 클럽을 찾아 들어가는 장면을 넣을 겁니다.옷차림은 단정한 투피스 정장.야하다거나 노출이 심하지 않고서도 매력을 풍기는 그런 여자니까...무대에선 청바지 입은 흑인여성이 색소폰을 불어야 합니다.왜 흑인여성이냐고요? 제가 직접 봤는데 색소폰 부는 흑인여성이 얼마나 멋있는지 안 보면 말을 마십시오.아름다운 여자라고 하면 으레 백인의 금발 여성을 생각하는데 이 세상에 제일 멋진 여성은 흑진주 비너스입니다.여하튼 오수미는 색소폰 연주를 들으면서 혼자 술을 마시는데 이때 임성민이 다가가면서 줄거리가 시작된다...뭐 이런 겁니다.그 흑인여성의 색소폰 연주곡은 배호가 불렀던 <안개 속에 가버린 사랑>이어야 하구요.이 곡을 색소폰으로 멋지게 불면 성인군자나 열녀도 바람나게 되어 있습니다.안 들은 사람은 말을 마세요.그리고 이 곡은 나규호 작곡, 전우 작사인데 전우는 이혼의 슬픔을 못이기고 행려병자 생활을 하다가 40대 초반에 객사해 버린 불운의 사나이입니다.배호도 30세에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말지요.요절한 이 슬픈 영혼들을 저승에서 다시 불러서 위로해 주고 싶은 생각에 이런 엉뚱한 생각도 해봅니다(소설가 배수아가 배호 노래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신상옥과의 만남에 대해 인터넷에는 1973년 작 오수미가 주연한<이별>을 그 계기라고 하던데요....예전에는 인기가요 제목을 영화제목으로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이 영화도 패티 김의 동명 노래 제목을 그대도 썼지요.파리 로케를 간 영화인데 이때 둘이 나이를 초월해 가까와 졌다 이런 이야기입니다.그런데 묘한 것은 오수미는 이보다 전인 1971년 무협영화<천마산의 결투>에도 나왔는데 감독이 최은희 남동생 최경옥입니다.여기선 당시로서는 드물게 여성 무술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김지수가 주연인데 오수미는 악역으로 나와서 대결을 펼칩니다.고전 활극물을 좋아하는 이들은 꽤 아끼는 영화지요.아마 이 작품을 통해서 오수미가 신상옥 최은희 사이에 끼어들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결국은 신상옥은 딸같은 오수미에 홀딱 반해 살림을 차리고 아이까지 생깁니다.최은희는 버림을 받지요(최은희는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또 최은희도 신상옥과 결혼할 때 남편이 있었습니다.간통사건이라서 꽤나 떠들썩했지요).그리고 그 후 신상옥 최은희의 납치,귀국...김중만과의 결혼과 이혼 등은 인터넷에도 다 나오는 이야기...그리고 또 불행한 이야기...그녀의 여동생도 모델 겸 연기자였는데 1985년엔가 86년엔가 실종되어 지금도 생사불명입니다.오수미도 1986년 이후에는 영화계에서 손을 떼버리지요.아마 <몸전체로 사랑을>이 마지막일 겁니다.이 영화 포스터가 당시 남편이던 김중만 작품이지요.그리고 그녀는 1987년 4월 연예인 마약투약사건 기사에 등장합니다.(이때 그녀와 대마초 피우던 연기자 중에 당시 한창 인기있던 전세영도 끼어있습니다.<지옥의 링>아시죠? 나중에 드라마<야인시대>에서 시라소니 역하던 조상구가 복서로 나온 영화인데 전세영이 조상구 애인으로 나왔지요).온갖 불행이 겹치고 겹쳐 술과 마약으로 달랠 수밖에 없었을까요... 그 무렵 엄청나게 폭음했다던데...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권상우를 유혹하는 아줌마로 나오는 김부선이 오수미 소개로 연예계로 들어왔어요.<토요일은 밤이 없다>에 같이 나오기도 하고, 3대 애마부인으로 이름을 떨치기도 합니다.<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도 살짝 나오지요.김부선도 부침이 심한 인생을 경험합니다.그녀도 마약복용으로 체포된 일이 있지요.
오수미와 오수비를 많이 혼동하더군요.제 친구들은 오수미는 모르고 오수비는 알더라구요.오수비는 안소영을 뒤이어 2대 애마로 신일룡과 <애마부인>에서 공연하면서 유명해집니다.또 <서울에서 마지막 탱고>를 이라는 작품으로도 유명하지요.80년대에 오혜림,오수미와 함께 3오시대(내가 만들어 낸 용어)의 신화를 이뤄낸 섹시스타입니다.그런데 오수미와 오수비가 같은 영화에 나온 적이 있습니다.이문열의 대표작을 영화화한 <사람의 아들>에서였습니다.보통 이 영화라면 하명중의 명연기가 기억에 남는다고 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 두 매력녀가 함께 나오니 관심있는 이들은 다시 한번 꺼내 보세요.
어찌보면 오수미로서는 김중만과의 짧았던 결혼생활이 그녀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한때 저는 그녀의 별명으로 불행수집가라는 용어를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이젠 저승에서 임성민은 물론 3년전에 저 세상으로 간 신상옥도 만났겠지요.천편일률적인 인터넷 특유의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저의 이 글이 그나마 우리 오수미 씨를 또달리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