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승만 초대 정부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는 주장은 보수파 역사학자나 정치인들이 하는 말이었다.임정을 빌려서 정통성을 부각시키자는 의도.오히려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이들은 이런 시도에 대해 비판했다.특히 해방정국 막판의 1948년 남북협상에 나선 김구,김규식을 거칠게 비판했던 우익인사들이 당연히 이승만 지지자들이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래놓고 임정을 등에 업으려고 하느냐는 비판이 주조를 이루었다.당시 임영신이나 이범석(임영신은 그렇다 치고 임정 당시 동료였던 이범석이 김구와 손을 끊고 이승만의 진영으로 가버린 데 대해 김구 및 한독당 인사들의 심정은 착잡했으리라)은 남북협상에 나서는 것은 공산당이나 하는 짓이라고 마구 몰아붙이기도 했으니까 이런 자들이 감히 임정의 법통을 잇네 어쩌네 한단 말이냐 하는,어찌 보면 당연한 항변이기도 했다.그런데 이제 아예 현정부와 일부 보수파들이 김구 김규식은 떨쳐 버리고 그래! 임정과 제 1공화국은 상관없다.어쩔래! 하고 나섰으니 참 변해도 많이 변했다.
올해 월간조선은 건국의 아버지를 뽑는 특집을 했다.그래서 이승만 김구 김성수가 뽑혔다.김성수는 경제인으로,언론인으로 한 역할이 참작이 된 것이다.그런데 이때 독자편지란에 항의내용의 있었다.김구는 김규식과 함께 남북 협상에 나섰으니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했는데 왜 그가 건국의 아버지라는 거냐 하는 취지였다.음....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꽤 많군 하고 느꼈다.여태까지는 보수파라도 김구,김규식의 남북협상에 대해서는 애국적인 정열만은 인정한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그런데 이젠 그 정도의 인정도 못해주겠다는 것 같다.
1990년대에 솟아나오던 박정희 열풍은 21세기 들어와서 이승만 열풍으로 넘어가고 있다.박정희 재평가 작업이 정착되면서 박정희 사후에 태어난 세대들까지 그 부모 세대로부터 들어 주운 지식으로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하는 분위기가 발판이 되어 이제 이승만 차례가 된 것이다.최근 이승만 전기 중 주목할 만한 책 두 권이 나왔다.이승만 지지자로 유명한 미국학자 로버트 올리버의 이승만 전기와 조선일보 기자 이한우의 이승만 전기이다.올리버 전기의 번역본 제목은 매우 직접적이고 화끈하다.아예 <이승만 없었으면 대한민국 없다>이다.박일영 역.동서문화사에서 나왔는데 이 출판사는 상당히 오랜 역사를 지녔으며 몇 년전엔 박정희의 어록을 출판하더니 이제 이승만 전기에까지 손을 대고 있다.내가 이 출판사에 대해 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천금성<황강에서 북악까지>라는 책 덕분이다.이 책이 무슨 책인지 아는가.전두환 전기이다.천 씨는 그 뒤로 이 전기집필을 했던 전력을 매우 부끄럽다고 한 적이 있고 그래서 요즘 천금성 약력엔 이 전기 집필 사실이 빠져 있다.이한우 기자는 요 몇 년 조선의 왕 전기를 왕성히 내고 있기도 하다. 사실 이승만 전기는 이미 그가 10여 년전에 냈다.그런데 이번 전기는 더 자료를 추가하여 제목도 바꾸어 한층 두툼해졌다.요즘의 건국 담론을 연상케하는 제목-<우남 이승만 대한민국을 세우다>.이한우의 이승만 평가는 다음과 같다.....누가 뭐래도 조선과 대한제국의 멸망 그리고 식민지라는 공백을 거쳐 1948년 대한민국이 탄생하기까지 근대 혁명의 정통성을 이은 사람은 이승만이다.전근대와 근대의 모든 사상은 이승만으로 흡수되었다가 다시 이승만을 통해 후대로 전달되고 확산되었다....
이제 역사논쟁은 그동안의 분위기와도 조금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임정과의 관계도 아예 끊어버리자는 현재의 건국담론은 우리나라 보수파의 자신감일까.박정희 띄우기가 먹혀들어가니 이제 이승만이라는 결론이다.우리는 이미 김영삼 정부 때 서울의 유수한 대학생들이 여론조사에서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박정희를 꼽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지금처럼 한나라당과 정부 그리고 거대언론이 이승만 띄우기에 대대적으로 나선다면 과연 이 공세를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까.뉴라이트의 학술계간지 <시대정신>을 경총이나 전경련에서 도서관에 무료 기증하고 있고 기존의 경제 교과서가 좌익편향이라면서 기업편향적인 경제교과서를 군대에 무료배포하고 나선 단체는 대한상공회의소다.엄청난 사상공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