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뷔똥
김윤영 지음 / 창비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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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작가들을 제외하고, 우리나라 대부분의 소설들은 너무나도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를 지닌다. 특히나, 여성작가들의 작품들은 그 강도가 더 센편인데,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즐거운 일이 있어야 쓸 것 아닌가 말이다. 재벌남자들에게 선택되어 팔자 한번 화끈하게 고치는 신데렐라류 드라마가 판을 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다 본다.

이런 현실을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도저히 나아질 것 같지 않은 한국인의 모습을 그려낸 것이 '루이뷔똥'이라는 단편이다. 명품의 대명사인 루이뷔똥 가방을 사재기하는 (사실, 별로 부끄러워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기 돈 쓰는데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문제는 없는 주제에 갖고 싶어하고, 무리하게 되고, 때문에 점점 상태가 악화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짝퉁문화는 그들이 만들어낸 차선책일 수밖에 없다.)주인공에게 있어서 한민족끼리 돕고 살자.는 말은 우습지도 않다. 나라보다는 내가 먼저이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같은 민족에게 사기를 치는 것 쯤은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정도로 쉬운 일이다. 타인보다 못한 관계에 대한 한탄이라기보다는, 우리 이렇게 살면 안된다.라는 교훈을 주려는 것이 아닌, 이왕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어떻하겠어.라는 자조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이 외에도 다단계판매를 하던 한 여자의 죽음을 다룬 '거머리', 학생운동으로 인한 고문으로 인해 정신이 이상해져버린 한 남자의 불분명한 고백이 담긴 '음치 클리닉에 가다.', 경찰을 피해 도망치던 중 화학약품을 몸에 부어 고무인간이 되어 버린 오빠의 어긋난 집착을 다룬 '풍납토성의 고무인간', 그리고 창비문학상수상작인 '비밀의 화원'이 함께 실려있다.
가벼운 읽을거리로는 적당하지 않지만,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드는 공감을 느끼기도 어렵겠지만, 최소한 알고는 있어야 할,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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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영웅전설 - 제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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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 배트맨, 로빈, 원더우먼 등 어린이들을 TV앞에 불러모았던 추억의 영웅들이 무더기로 등장하며 시작되는 이 소설이 전세계를 주무르는 미국을 빗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데는 중반부에 이르렀을때이다. 엄마가 일하는 빌딩 옥상에서 뛰어내려 죽으려던 주인공은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슈퍼맨을 만나게 되면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나, '바나나맨'로 불리워지게된 주인공이 의미하는 것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노란 황인종은 미국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무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던 슈퍼맨에 이어, 돈으로 약소국가들을 매수하는 배트맨, 환락산업으로 대중의 눈을 가리는 원더우먼, 대량소비라는 흐름을 나타내는 아쿠아맨, 이 모든 캐릭터들은 미국의 지배전략을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들이다. 억지로 만들어진 바나나맨은 이들의 심부름을 해주는 들러리에 불과하다. 불분명한 정체성을 가진 채로 한국에 돌아온 바나나맨은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며 이제나 저제나 슈퍼맨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의 재기발랄함과 위트로 가득찼던 그의 재능은 어디로 간 것일까. 뚜렷한 결말도 없이, 말장난으로 일관하고 있는 탓에 몇장을 넘기는 것조차 힘겹다. 가벼운 소재를 통해 무거운 주제를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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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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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라는 창녀를 통해 성과 사랑, 그리고 인생의 빛을 재발견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지친 영혼들의 이야기다.라고 말할수밖에 없는 것이 책전체가 온통 그런 컨셉이다. '마리아라는 창녀가 있었다.'로 시작되는 바람에, '오호라, 연금술사는 청소년판, 이건 성인판인가보다.'라고 지레짐작하고 즐겁게 읽기 시작했으나, 매일 손님이랑 춤추고, 마시고, 호텔가는 것이 일상사가 되버린 마리아의 생활이 재밌을리 없지 않은가.

뻑하면 '내게 있어 사랑은 사치인가봐요'같은 유행가 가사같은 소리만 하고 있고, 창녀이긴 하지만, 직업에 귀천은 없는 것이니 짧은 기간에 바짝 벌어서 금의환향하겠다는 기막힌 자기합리화, 이런 와중에 특별고객인 S/M 매니아를 만나 새로운 환희에 정신 못차리는 그녀에게 젊고, 잘생기고, 부자인 킹카 화가가 나타나 사랑한다고 매달리는 모양새를 보고 있노라면, 뻔한 드라마의 대명사인 파리의 연인도 깨갱할 지경이다.
과거에 만났던 창녀를 실제 모델로 했지만, 절대 그 쪽에 무게중심이 있는 것은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던 작가는 줄창 야한 이야기만 써대다가, 작품 맨 끄트머리에 이르러서야 사랑이야말로 유일한 구원의 도구라는 결론을 내린다. 늙은 삵괭이 같은 놈. 내가 네 책을 또 읽으면 조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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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4-08-24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늙은 삵괭이 같은 놈. 내가 네 책을 또 읽으면 조류다.'
이런 생각을 갖고있는 독자가 저말고 또 있었군요. 평론가, 독자 모두들 극찬을 아끼지 않아서 정말 거북했습니다.

hanicare 2004-08-26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늙은 삵괭이 같은 놈. 내가 네 책을 또 읽으면 조류다. 이 서재의 주인께서는 이를 뽀드득 갈았을텐데 읽는 나는 왜 이리 유쾌한지요. 간결하게 할 말 다 하셨군요.원작은 꽝 리뷰는 왕입니다.


fujisai 2004-08-26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너무 웃겨요; 조류같은 놈에서 뒤집어짐-_-;
저도 분노할 정도는 아니지만 부풀려진감이 참 많은 작가다라고 생각해요 하하

bittersweet 2004-09-01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재밌다고 느낀 적은 처음이네요^^
 
외면일기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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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기뻐하는 미셀 투르니에의 일상은 조용하면서도 그윽한 향기가 배어난다. 1월부터 12월이라는 글자로 구분된 글들은 계절의 변화뿐만 아니라, 그의 기억과 느낌의 자잘한 흔적을 차분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여행지에서 느꼈던 사소한 감동, 주변인과의 짧은 조우들, 신과 자연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기쁨, 풍부한 문학적 지식에 걸맞는 위트와 엉뚱함, 통속적이지 않고 잘난체하지 않는 현명하고 아름다운 언어들로 채워진 주옥같은 작품이다.

책 뒷부분에는 이 책을 번역한 김화영 교수가 미셀 투르니에를 직접 찾아가 대화를 나눈 에피소드가 실려있다. 기차역에서 그를 마중나온 미셀 투르니에는 전과는 달리 다리를 절고 있었지만 친절하고 활기찬 그의 성격은 변함 없는듯 보였다. 자신의 삶에 대해 감사하는 작가의 생각은 그의 글에 그대로 드러난다. 반드시 소장해야 할 책 중의 하나로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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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판 사나이 열림원 이삭줍기 3
아델베르트 샤미소 지음, 최문규 옮김 / 열림원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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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나 물처럼, 그림자 또한 가장 근원적이고 소중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평소에는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시작되고 있는 이 작품은 그림자라는 존재가 인간의 본질(혹은 양심) 그 자체를 나타내며, 경제적 가치와는 비할수 없이 값진 것임을 말하고 있다.

주인공은 악마로부터 무한대로 금화가 나오는 주머니를 받는 대신, 자신의 그림자를 팔게 된다. 풍족하고 안락한 생활을 얻은 댓가로 그는 항상 어둠속에서만 머무르며 숨어 지내는 고통을 겪게 된다. 사람들은 그림자가 없는 그를 피하고, 경멸하며, 심지어는 교활한 속임수를 쓰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욕심과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기에 가슴을 치며 슬퍼할뿐이었다. 이때, 그에게 다시 다가온 악마는 그가 영혼을 판다면, 다시 그림자를 돌려주겠다는 제안을 건넨다. 이미 불신과 고통으로 엉망이 된 그는 더이상 악마를 믿지 않지만, 그가 그토록 갈망했던 자신의 그림자를 보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어떻게 보면 파우스트와 비슷한 악마와의 거래장면은 주인공이 악마의 제안을 뿌리치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기 위해 떠나는 부분에서 확연하게 구분된다.

누구라도 뿌리치기 힘든 악마의 유혹은 현재 우리 주변에도 얼마든지 널려있지만, 과연 이에 당당히 맞설수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그림자를 파는 것은 일도 아닌 것처럼 여겨질 정도니. 어른을 위한 동화처럼 노골적인 교훈을 주려는 것이 아닌, 독자의 결정에 따른 결말을 자연스럽게 보여줌으로서 스스로 깨달은뒤,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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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심이 2004-05-28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자에 관한 얘기들이 작가들을 흥미롭게 하나봐요..아마 인간의 본성에 대한 호소를 하고 싶은 걸까요? 글 잘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