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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
한승원 지음, 김선두 그림 / 불광출판사 / 2018년 3월
평점 :
제목부터 느낌이 있다. 목차의 제목을 하나하나 읊어본다. 나의 눈빛이 하늘의 별을 만든다, 모래의 시간을 생각하다, 꽃향기를 귀로 듣다…. 예사로운 느낌이 아니다. 화두처럼 나에게 훅 다가온다. 어느덧 나의 눈빛이 하늘의 별을 만든다는 느낌이 들고, 모래의 시간을 생각하기도 한다. 꽃향기를 귀로 듣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제목만 접했을 뿐인데 내 마음은 글이 주는 이미지를 고스란히 만들어내고 있다. 제목마저도 차근히 음미하면서 읽게 되니,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해서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되는 책이었다. 어느새 벚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나른한 봄날, 이 책《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한승원. 소설가와 시인으로 수많은 작품을 펴내며 한국 문학의 거목으로 자리매김했다.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 한국 문단에 큰 궤적을 남겼다. 1996년 고향 장흥으로 내려간 작가는 바닷가에 토굴(해산토굴)을 짓고, 그 자신을가둔 채 오롯이 인간 성찰의 도구로써 글을 써왔다. 안과 밖, 세상과 자연의 경계에서 작가는 소박한 일상과 우주적인 사유를 오가며 겸허한 인간론을 펼쳐왔다. 이제 땅의 끝이자 바다가 시작되는 곳에 다다른 작가는 지난 삶을 반추하며 이별 연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죽음마저도 삶으로써 살아내겠다는 다짐이며, 그 치열한 능동적 삶의 태도가 이 책에 깃들어 있다.
이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된다. 1장 '나의 눈빛이 하늘의 별을 만든다', 2장 '모래의 시간을 생각하다', 3장 '꽃향기를 귀로 듣다', 4장 '태양은 언제나 문 밖에 있다', 5장 '풀 베고 책 읽고 글 쓰고 명상하고', 6장 '차는 식었지만 맛은 달다', 7장 '내 콧구멍 속 어둠 밝히기', 8장 '빈 그릇 흔들기', 9장 '내 영혼에 드리운 그윽한 그림자들'로 나뉜다. 물은 도전적으로 흐르고 꽃은 공격적으로 핀다, 겨울 나목 앞에서 옷깃을 가다듬다, 삶은 산보다 무겁고 사랑은 새털보다 가볍다, 파도를 보고 모래의 시간을 생각한다, 봄꽃은 순간이고 여름은 길게 출렁거린다, 내 얼굴은 하나의 새콤한 관념이다, 철없는 나의 몸은 봄을 노래하는 한 편의 시, 바람이 불자 여신의 달빛 옷자락이 날리고, 마음에 거울 하나 지니고 살아간다, 해야 김칫국에 밥 말아 묵고 얼릉얼릉 나오너라, 섣달 그믐밤에 잠자면 굼벵이가 된다, 경계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 그 오솔길 양쪽에 전혀 다른 향기로운 삶이 놓여 있다, 차와 깨달음의 색깔, 늙어가지만 낡아지지 않는다, 생각의 가지치기, 우리 집 꾀꼬리는 장흥 안양의 사투리로 운다, 꽃 지면 열매 있고 달 지면 흔적 없어라, 강아지풀 얼마나 대단한 경전인가, 사람들은 속이 텅 빈 그릇 하나를 흔들고 있다 등의 글을 볼 수 있다.
제목만 보아도 마치 화두처럼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그래서일까. 서문 '늙은 감나무와의 대화'에서부터 생각의 깊이가 내 존재를 깨운다. "선이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내 마음을 우주적인 시각으로 넓혀놓는다.
"선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순리'이다. 밤이면 별들과 교통교감을 하고, 해 뜨면 햇살 속에서, 달이 뜨면 달빛에 흠뻑 젖은 채, 안개 끼면 안개에 젖은 채 춤추는 우주 너울에 스미어 흐르는 것이 선이다. 울퉁불퉁하고 꺼끌꺼끌한 쇳덩이 같은 관념(논리)이 더 나아가지 못하고 끊어지는 길에서 새로운 길(진리)이 만들어진다." (17쪽)


쉽게 읽히되 너무 가볍지 않고, 진지하되 너무 무겁지 않으며, 아웅다웅 좁아 터진 시야를 확 넓혀주는 책이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마음 쓰지 않고 좀더 크고 넓게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던 나의 마음을 산들바람처럼 건드려주는 책이다. 어루만져주는 손길에서 내공을 느낀다. 이런 책, 참 괜찮다고 느껴지는 봄날이다. 책장에 꽂아두고 문득 생각날 때 꺼내들고 싶은, 소장가치가 있는 책이다. 어느새 나를 사색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책이기에 이 봄날을 이 책과 함께 기억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