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잠수함
이재량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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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집어든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원래 소설을 알고 보면 김샌 콜라를 먹는 듯 재미가 없기 때문에 최소한의 정보만 가지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지긋지긋하고 무거운 현실 속에서 그저 아무 생각없이 웃고 싶다는 목적 하나 가지고 선택했다. 왠지 이 책은 나를 웃게 해줄 것이라는 느낌, 하지만 '아님 말고'라는 가벼운 기분으로 이 소설을 읽어보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책을 선택한 것은 기대 이상의 성공이었다. 등장 인물들의 개성과 매력으로 일단 시선을 사로잡고, 그들의 행보에 주목하게 된다. 이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서 계속 읽어나가게 된다. 게다가 말 한 마디, 상황 하나 하나가 어쩌면 이렇게 웃음을 자아내는지. 비속어를 써도 경박하지 않고 찰진 느낌에 착착 들러붙는다. 생각보다 느낌 좋은 이 소설 속에 빠져드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먼저 이 소설에서 눈에 띄는 것은 평범한, 아니 평범 이하일지도 모르는 주인공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골때리는 행보. 네 명의 주인공이 육봉 1호를 타고 길을 나서는 순간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봉고차에 포르노를 싣고 다니며 파는 스물아홉 살 청년 현태. 비루하지만 평화롭던 그의 인생이 제대로 꼬이기 시작했다. 치매로 정신이 들락날락하는 만화방 주인과 하반신을 못 쓰는 동거인의 계략에 넘어가 그들을 부산까지 수송해야 하는데, 아이돌 가수가 꿈이라는 가출 여고생까지 덤으로 달라붙었다. 죽이 척척 맞는 두 노인과 한 소녀, 이들 때문에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한 청년. 그들의 폭풍 같은 질주가 펼쳐진다. (책뒷표지 中)


이런 소설을 기다려왔다. 치밀하고 탄탄하며 강력하고 아름다운.『노란 잠수함』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일상의 공간 속에 숨은 잔혹한 폭력성과 복잡하고 미묘한 욕망의 이끌림을 투명하게 그려낸다. 주저 없이 일직선으로 돌진해가는 강력한 스토리텔링, 독자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긴장감 넘치는 줄다리기, 손에 잡힐 듯 생생한 캐릭터들의 유머러스한 매력까지. 이 작품은 우리 삶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탱해주고 있는, 그늘진 존재들의 경이로운 생명력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_정여울(작가)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싶다면, 이 책이 유쾌하게 웃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살아 숨쉬는 입체적인 느낌의 캐릭터들에 매료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소설이 던져주는 메시지, '한순간'에 대해 생각해본다. 툭툭 던져지는 한 마디 말이 가슴에 훅 들어온다.

"모모야, 사람이 뭐가 되는 것은 막 몇 년씩 준비하고 애쓰고 그래서 되는 거이 아니여. 어느 한순간, 지도 모르게 지나가는 고 한순간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어야. 그 순간이 지나믄 사람은 안 변한다. 그다음부턴 만들어진 그대로 평생 사는 것이제. 대체로 보믄 그 한순간은 참말로 좋은 때여. 나쁜 것은 사람을 만들덜 못해. 좋은 것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제. 그 좋은 순간을 안 잊아불고 맘속에 품고 있으믄 되는 거이다. 그라믄 뭐이 될라고 애쓰덜 안 해도 사람은 후회를 안 하는 것이여. 좋은 때는 누구한테나 오는 것잉께. 와도 못 알아보고 지나가불 수는 있어도." (132쪽) 


작가의 말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평생을 견디는 데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나의 답은 이랬다. 한순간, 그것이면 족하다. 우리 인생의 그 한 방, 한순간에 대해 쓰고 싶었다. 한순간을 향해 돌아가려는 사람과 한순간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사람, 아직 한순간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만나 진정한 한순간을 찾아가는 이야기. (319쪽_작가의 말 中)

힌트를 준 것은 비틀스가 출연한 애니메이션 <Yellow Submarine>이었다고, 정확히는 그 작품의 배경인 '페퍼랜드', 낙원이자 이상향이라며 작가는 말한다. 불안과 불만이 없었다면 순간의 소중함을 알 수 있었을까, 웃을 수나 있었을까, 삶의 가장 빛나는 한 방, 빛나는 한 순간은 삶의 가장 어둡고 불안한 순간과 겹쳐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생각들이 계기가 되어 소설이 탄생했다는데, 독자에게도 그 메시지가 와닿는다. 읽고 난 후에 작가의 말을 읽으며 또 한 번 생각에 잠긴다. 이 소설의 묘미는 심각한 생각을 가벼운 소재로 접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띠지의 글이 눈에 띈다. '주목받는 이야기꾼, 이재량의 첫 장편소설'이라니. 이 작품이 진정 첫 장편소설이었단 말인가. 타고난 이야기꾼인가, 지금 시대에 딱 맞아떨어지는 소설가인가.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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