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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아니지만 살 만한 - 북아일랜드 캠프힐에서 보낸 아날로그 라이프 365일
송은정 지음 / 북폴리오 / 2017년 8월
평점 :
여행을 하다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이곳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모든 곳에서 살아볼 수는 없고, 머무는 시간이 짧고 기회가 적기 때문에 더욱 그립고 아득해진다는 생각도 든다. 이 세상의 모든 곳을 다 가볼 수 없어서 안타깝지만 책을 읽으며 한 걸음씩 가까워지는 느낌도 받고 궁금증을 해소하기도 한다. 그래서 여행 책자를 통해 다른 나라의 풍광과 다른 사람의 감상을 함께 엿보며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좋다. 이 책에는 언젠가는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인 '북아일랜드'의 캠프힐에서 보낸 시간을 담고 있다.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지 궁금해 이 책을 읽어나가는 속도가 빨라진다.

이 책의 저자는 송은정. 서울의 낡은 골목에서 여행책방 일단멈춤을 운영했고, 지금은 매일 안방 옆 '집업실' 책상으로 출퇴근하며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짓고 있다. 무엇이 되었든 글 언저리에서 오랫동안 살아가고 싶다.
한국을 벗어나 산다는 건 단순히 물리적 이동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특히나 그곳이 발달장애인들과 생활하는 시골의 작은 공동체라면 더더욱 그렇다. 캠프힐에서 나는 지금껏 으레 믿고 따른 방식과 가치관을 잠시 뒤로 밀어둔 채, 나를 둘러싼 모든 '다른' 것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했다. 장애, 성별, 인종, 국적, 언어, 문화, 사고방식, 하다못해 날씨와 식습관에 이르기까지 일상 전체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5쪽_프롤로그 中)
캠프힐을 처음 알게 된 건 어느 온라인 커뮤니티의 호주관련 게시판이었다고 한다. 영국 곳곳에 장애인과 함께 일하며 무료로 숙식을 제공받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단체의 이름은 캠프힐, 캠프힐은 루돌프 슈타이너의 철학을 기반으로 1940년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장애인 공동체이다. 저자는 그 중 북아일랜드에 위치한 몬그랜지 커뮤니티에서 승낙 메일을 받았고, 그곳에서 보낸 365일을 이 책에 담아냈다.

"여긴 파라다이스는 아니야. 하지만 살기에는 꽤 괜찮은 곳이지." (30쪽)
고단했던 서울살이를 위로해줄 지상낙원이길 기대했지만, 어떤 곳에 살든지 다 비슷비슷한 것은 아닐까. 이 책을 보며 약간 어설프기는 해도 다른 곳에서 적응하며 살아나가는 모습에서 내 안의 또다른 나를 바라본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던 캠프힐에 관해서 하나씩 알게 된다. 직접 그곳에 가보지 않아도 머릿속에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사진과 글을 통해 서술해나가서 한껏 가깝게 느껴진다. 특히 그곳에서의 생활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먼저 그곳에 다녀온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당연히 귀기울이게 되지 않을까.

수요일 아침의 노랫소리, 카푸치노, 기도하는 시간, 탐스러운 사과나무, 크리스틴의 헬로우, 창문 너머로 비친 달, 안나의 바짓단 소리, 한낮의 티타임, 조의 벤조 연주, 지긋지긋한 빵, 어슴푸레한 새벽 공기, 니콜의 엉터리 댄스, 크리스마스 편지, 따뜻한 해영의 부엌, 그리고 우리가 나눴던 모든 눈 맞춤들. 방금 전까지 선명하게 빛나던 순간들이 과거를 향해 뒷걸음질쳤다. (295쪽)
어딘가 새로운 곳을 향해 가서 적응하고 정착하다가 다시 그곳을 떠나 되돌아온다는 것,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간접 경험해본다. 좀더 긴 여행, 그것도 캠프힐이라는 생소한 곳에 대해 경험담을 풀어주는 책이다. 우리 인생이 자신만의 파라다이스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저자는 한 걸음 다가가는 경험을 하고 돌아온 것은 아닐까. 천천히 음미하며 삶을 누리는 저자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