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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의 시민들 ㅣ 슬로북 Slow Book 1
백민석 글.사진 / 작가정신 / 2017년 7월
평점 :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으레 하는 질문이 있다. "어느 나라가 가장 좋았어요?" 그런데 한국인이 아닌 다른 국적의 사람들 중 의외로 '쿠바'라는 답변을 여러 차례 들어보았다. 한 번 듣고, 두 번 듣고, 여러 차례 듣다보니 더 이상 생소한 곳이 아니라 언젠가 한 번 가보고 싶은 나라로 점찍어 두게 되었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이 책을 읽으며 쿠바에 대한 호기심을 극대화 시켜본다. 이 책은 백민석 작가의 글과 사진으로 구성된 쿠바 여행 에세이인데, 2인칭으로 쓰인 단편소설 같은 글이다. 쿠바라는 곳에 대한 호기심에 더해 얼마 전 읽은 소설『죽은 올빼미 농장』의 작가 백민석에 대한 기대감에 이 책『아바나의 시민들』을 더욱 관심 있게 펼쳐보았다.

이 책의 저자는 백민석.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5년《문학과사회》여름호에 소설「내가 사랑한 캔디」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소설집『16믿거나말거나박물지』『장원의 심부름꾼 소년』『혀끝의 남자』와 장편소설『헤이, 우리 소풍 간다』『내가 사랑한 캔디』『불쌍한 꼬마 한스』『목화밭 엽기전』『러셔』『죽은 올빼미 농장』『공포의 세기』가 있으며, 미술 에세이『리플릿』이 있다.
보통 짧은 글이든 긴 글이든 쓰고 나면 소모된 느낌을 받게 된다. 단편을 쓰고도 그 공허한 감정을 며칠이나 추슬러야 하고, 좀 긴 글을 마치고 나면 실제로 욕지기질을 하기도 한다. 언제나 그랬다. 안 그랬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아바나의 시민들』을 쓰고 나서는 오히려 충만한 감정을 가졌다. 믿기지 않게도 내 안에서 무언가 샘솟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고, 우울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소모된 것이 아니라 글을 쓰면서 무언가 내 안에서 생산된 느낌이었다. 작가가 되고 나서 처음 경험한 신기한 느낌이었다. (334쪽_작가의 말 中)
저자가 직접 사진도 찍고 글도 썼다. 여느 여행기처럼 무심코 나가다보면 어느새 이야기의 주인공이 나 자신이 되어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말레콘의 산책길을 거닐기도 하고, 아바나의 연인들 사진도 내가 찍은 듯, 어느새 저자의 여행이 나 자신의 여행이 되어버린 양 분주해진다. 사진과 함께 짤막한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는데, 직접 가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곳의 상황을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듯 상상하며 읽을 수 있도록 표현했다. 그래서 읽다보면 어느새 내가 이야기를 하고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되나보다.
말레콘은 중독성이 있다. 아바나에 짐을 푼 지 이틀 만에 당신은 중독된다. 아침을 먹고 옷을 차려 입고 숙소를 나와 지정된 스케줄이라도 되는 양 말레콘을 떠돈다. 당신의 고개는 늘 말레콘을, 말레콘에 와 부딪는 파도를, 파도를 밀어내는 플로리다 해협의 바다를 보느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돌아가 있다. 매 순간 스펙터클한 풍경이 펼쳐진다. 하지만 중독은 스펙터클함에 의한 것이 아니다. 쉴 새 없이 와 부서지고 포말을 날리는 파도들 때문도 아니다. 당신은 끝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보면서, 실은 당신 자신을 보는 것이다. 당신의 실존에 끊임없이 그어지는, 그러면서도 금세 스러지곤 하는 주름을 보는 것이다. 상념. 행복했던 한때이든, 불행했던 한때이든, 또 미래의 행복이나 불행에 대한 불안까지 드리워진 상념에서 당신은 헤어날 길이 없어진다. 말레콘에서 당신은 상념에, 당신 자신에 중독된다. (55쪽)
'삶이 주는 옅은, 희박한 고통'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여행을 할 때에도, 여행에서 돌아온 후 일상에 적응한 다음에도, 죽을만큼 고통스럽다고 생각된 순간에도 삶은 계속된다. 이상하게도 고통의 한가운데에서 조금만 지나가면 약간은 옅은 고통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삶의 고통은 아직 참을 만하고, 심지어 적당히 즐길 만하다.'라는 표현 앞에 멈춰서서 한참을 생각에 잠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잘 몰랐지만, 읽고 나면 아바나의 곳곳을 탐색한 듯한 느낌이 든다. 저자가 들려주는 여행기는 저자 자신의 여행이 아닌 독자의 여행인 듯 표현해냈다. 생소한 곳이지만 어느새 나에게 특별한 여행지로 탈바꿈된다. 쉽게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시간에도 책은 상상속에서 어디든 갈 수 있게 만든다. 이 책으로 아바나를 마음속에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