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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는 참 이상한 일 - 어이없고 황당하고 늘 후회하면서도 또 떠나고야 마는
한수희 지음 / 인디고(글담) / 2017년 8월
평점 :
현실이 힘들 때 여행을 더욱 강렬하게 꿈꾸게 된다. 막상 떠날 상황이 되지 않다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여행 에세이를 읽는 것이다. 나의 여행이 아닌, 다른 사람의 여행 이야기를 통해 여행의 기억을 되살려보기도 하고 들뜨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 책《여행이라는 참 이상한 일》은 제목의 수식어에 눈길이 가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이없고 황당하고 늘 후회하면서도 또 떠나고야 마는'이라는 문장은 내가 생각하던 여행과도 닮아있다. 돌아다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주기적으로 여행을 하게 되고, 여행을 하면 꼭 다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힘들었기 때문에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곳일수록 더욱 강하게 기억에 남아서 또다시 그곳으로 향하게 된다. 왠지 나의 여행과 교차점이 많으리라 생각되어 이 책을 읽어나갔다.

이 책은 어느 여행지 한 곳에 대한 것만 적어내려간 것이 아니라, 태국, 인도, 일본, 캄보디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프랑스 등의 여행지가 수록되어 있다. 여행지 자체보다는 여행지에 대한 저자의 감상이 더욱 강조된다. 물론 그 생각은 그 장소에 여행을 갔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그렇기에 여행지와 함께 여행에 대한 생각을 볼 수 있다. 내가 살아본 적 없는 인생, 참 이상한 일, 전기장판을 켜고 온 것이 분명하다, 내가 어쩌다 여기에,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혼자 여행하는 여자, 기차는 직선으로 떠난다, 두 번 다시 그곳에 갈 일은 없지만, 지도 위를 걷는 법 등의 글을 볼 수 있다.
여행을 하면서 느낀 생각의 단상을 볼 수 있다. 어쩌면 나도 여행 중에 느껴보았을 법한, 아니면 그 상황에서 나는 무슨 생각을 할지 떠올려보며 읽어나간다. 어느새 그녀의 여행 이야기에 빠져들어 여행지에서의 생각을 엿보는 시간을 보낸다. 여행을 해본 곳이든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든, 그것은 더이상 의미가 없었다. 그저 여행을 하며 느낀 생각이나, 여행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다지 그런 것만도 같지 않은 나의 취향과 너무도 비슷해 문득 멈춰서 생각에 잠기는 부분이 많아졌다.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에 불타올라 여행을 결심했지만 정작 나는 박물관도, 미술관도, 유적지에도 흥미가 없었다. 그럴 거면 대체 왜 아득바득 돈을 모아 비행기에 올라 그 먼 데까지 날아갔던 거지? 입에 맞지도 않는 음식들로 끼니를 때우고, 배탈이 나서 매번 화장실에 드나들고, 고생이란 고생은 죽도록 하고, 때로는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면서, 이름조차 생소한 도시의 낯선 침대 위에서 외로움에 바들바들 떨면서도 당장 귀국하지 않았던 거지? 실은 그건 어린 시절을 다시 한 번 살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다시 한 번 이 세계의 이방인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한없이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다시 한 번 맛보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나에게 아무것도 할 일 없는 시간을 선물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다시 한 번 이 세계를 느끼고 싶어서가, 다시 한 번 더 무럭무럭 자라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190쪽)
이 책은 말 그대로 여행이라는 '이상한' 일에 대한 생각을 적어놓은 것이다. 추억에 젖을 만한 부분만 편집한 여행의 모습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을 들려준다. '길게는 20시간씩 비행기를 갈아타고 몇 달치 생활비를 며칠 만에 탕진하고 낯선 숙소에서 외로움과 두려움에 벌벌 떨며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에 눈물을 흘리고 사기꾼과 호객꾼에게 당하고 온종일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걸어다니는 이 모든 비이성적이고 비효율적인 일들'이라는 측면에서 여행을 바라본다면, 저자의 생각과 교차점을 더 많이 찾게 될 것이다. 여행을 미화하는 책도 나름의 기분전환과 자극이 되지만, 여행의 현실을 들려주는 이 책도 진정 여행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무엇보다도 예전의 나 자신을 만난 듯한 기분에 한껏 추억 속으로 빠져드는 시간을 보냈다. "그 개고생을 해놓고, 왜 또 짐을 꾸리고 있는 걸까?"라는 물음에 공감한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