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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맨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6월
평점 :
저스티스맨
이 소설『저스티스맨』은 제13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소설은 긴 호흡으로 읽어나가야 하기에 선택에 고민이 많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가 왜 이 소설을 읽고 있지?'하는 의문과 함께, 처리해야 할 바쁜 일들만 떠오르며 좀처럼 집중할 수가 없다. 하지만『미실』『내 심장을 쏴라』『스타일』『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등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들은 믿고 선택해도 좋을 만큼 흡인력이 있고 읽는 맛이 있는 소설들이었기에, 이 소설도 당연스레 믿고 선택하게 되었다.

먼저 이 책은 소설가의 이력이 눈길을 끈다. 도선우, 2016『스파링』으로 제22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작가이다. 8년 동안 40여 차례 문학상에 응모했다가 떨어졌다는 그는 이제야 두 번 연속 문학상을 수상하며 진가를 발휘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첫 부분 몇 쪽을 읽고 났을 때, 직감적으로 이것이 대상을 받겠구나 하고 확신했다. 그만큼 잘 짜인 스토리의 흡입력과 속도감이 빼어났다.
_임철우(소설가)
소설 첫머리에는 피살자가 두 개의 탄환으로 살해된 장면이 담긴 사진을 묘사한다. 피살자의 모습보다 눈길을 끈 것은 '이 소설의 장 제목은 모두 잭슨 폴록의 작품 제목에서 가져왔다'는 설명이었다. 구성, 잿빛 무지개, 돈키호테, 고딕, 열기 속의 눈, 아른아른 빛나는 물질, 회색빛으로 물드는 바다, 심연, 자화상, 연보랏빛 안개, 열쇠, 8번, 여덟 안에 일곱이 있었다, 비밀의 수호자들, 수렴, 불꽃, 다섯 길 깊이, 부활절과 토템 등 18장으로 구성되는데, 차례를 읽어나가며 잭슨 폴록의 작품명을 훑어본다. 피살자의 모습이 흡사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 같았다며, 폴록의 작품에서 색채와 상징을 걷어내면 분명 자신이 보고 있는 이 사진의 혈흔과 똑같은 형태의 선과 면이 드러날 것이라고 확신하는 등장인물. 그것은 인간 본성에 내재한 악의 발현이라고,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과 피살자의 모습을 연결짓는다. 머릿속에 혈흔과 물감의 작품이 오버랩되며 작품이 그려지는 생생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 이 소설의 첫 인상을 강렬하게 만들었다.
뒤통수로부터 뿜어져나간 핏줄기가 만든 인간 내면의 본성과,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진실의 눈과, 예술가의 혼을 가진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부활과 토템. 누구라도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고 있는 가식적인 자아를 내던져버린다면, 이 사진이 표현하는 본연의 순수함과 악의 정통성을 느낄 수 잇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진실한 감정으로의 각성을 깨끗하게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절정의 아름다움이 극악과 맥을 같이한다는 사실을 수용하게 되면서 잭슨 폴록 같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한층 더 밀도 높은 감성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될 터였다. 그리고 이 사진이 말하고자 하는 어떤 진실도. (10쪽)
총기에 의한 살인. 이마에 남은 탄흔 두 개. 그것이 전부였다. 살해 동기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경찰의 수사는 오리무중이었고, 국민은 더이상 대한민국 경찰을 신뢰하지 않았다. 결국 누리꾼들이 나섰고 인터넷을 통해 각종 정보가 공유되었다. 그러던 중 저스티스맨이란 닉네임을 가진 누리꾼이 운영하는 포털 사이트 카페가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가 제시하는 논리적인 사건 분석이 이제까지 인터넷에 난무하던 무분별한 정보와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오십만이 넘는 누리꾼이 그 카페의 회원으로 가입했다.
전혀 관계가 없을 듯한 오물충 사건의 전말이 공개된다. 어느 영업 사원이 술취해서 노상에서 구토와 배변을 하는 실수를 저질러서 그 장면을 목격하고 촬영한 여고생이 '오물충의 만행'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올렸는데, 그 여고생이 바로 첫 번째 피살자였다. 두 번째 피살자는 첫 번째 피살자가 올린 게시물이 한참 유포된 뒤에 그 자료들을 종합하고 정리해서 그 자리에 오물충의 고등학교 졸업 사진까지 첨부해 올린 사람이었다. 세 번째 피살자는 오물충 사건을 본격적으로 만방에 알린 인터넷 언론사의 사회부 기자… 살해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공개된다. 순식간에 열 명의 피살자에 관한 스토리를 읽어나간다.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사건들이 얼기설기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과연 저스티스맨의 추리는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추가 피살자가 또 발생하는 것은 아닌가? 궁금한 마음에 다음 페이지로 넘기는 속도가 빨라진다.
꼭두각시처럼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뜨는 기사만 수동적으로 클릭하거나, 아니면 자기가 좋아하는 기사만 취향대로 골라서 읽다 보니 그것이 오로지 그들이 아는 세상의 전부가 되었을 따름이었다. 타자의 숨겨진 사생활이나 파헤쳐 먹고사는 자들이 키보드를 두들겨 올리는 활자가 곧 이 세계의 실체라고 믿고 사는 붕어 인간들. 누구와 있든 언제 어디서나 심지어 걸으면서도, 조그만 전자기기 화면 속에 대가리를 처박고 사는 그들은 스스로 무엇을 판단하는 기능도 상실해버렸다. 마치 어느 시대엔가는 존재했었을 신체 일부가 퇴화해버린 진화생물처럼 그들은, 그런 능력 자체가 있었는지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타자의 삶, 자신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온 명사들의 개인 가치관에 기대어 자신의 현실을 위로하고 무의미한 미래를 설계했다. 말하자면 그저, 남이 살아온 발자취에 ctrl+c를 클릭하고 다시 자신의 삶에 ctrl+v를 끊임없이 붙여 넣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241쪽)
살인 사건에 대한 전말과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다가 문득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단상을 들여다보고 화들짝 놀란다. 추리소설이라는 틀에 들어 있는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지금 현재,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무슨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소설가가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메시지는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난 후 포괄적으로 다가온다. 내가 생각하던 정의가 재정립되는 시간이다. 흡인력 있는 소설,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