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의 꽃
김옥숙 지음 / 새움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세상에는 모르고 있던 고통이 훨씬 더 많다. 이 소설 속 이야기가 그렇다. '원폭'하면 '히로시마'가 떠오르고 그 지역 사람들만 피해자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나라에도 원폭 피해자가 있다고? 이는 허를 찌르는 의문이 되어 나를 의구심에 몰아넣었다. 사람들에게 미처 알려지지 않은 현실 고발성 소설은 그 책을 읽고 그 사실을 널리 퍼뜨리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소설《흉터의 꽃》을 읽으며 지금껏 알지 못했던 세상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보낸다.

 

 

이 책의 저자는 김옥숙. 2003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낙타」가 당선됐고 같은 해 전태일문학상에 소설「너의 이름은 희망이다」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내게는 꿈의 공간으로 남아 있는 황강이 앞서간 나의 선조들에게는 눈물의 강, 한의 강, 상처의 강, 흉터의 강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이 소설을 쓰기 전까지 알지 못했다. 내 고향 합천이 '한국의 히로시마'라고 불린다는 사실도, 한국의 원폭 피해자가 합천에 가장 많다는 사실도, 합천에 원폭복지회관이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내 아버지의 고향이 일본 히로시마인데도. 내 아버지가 원폭 피해자인데도. (작가의 말 中)

  

이 소설을 접하고 나서야 우리나라에도 원폭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뉴스를 검색해보니 '원자폭탄 피해' 한국인 첫 실태조사를 지난 5월 말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었고, 특별법은 지난 1945년 일본 히로시마 및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피폭된 우리 국민의 실태를 파악하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5월 제정되었다고 한다. 국내에 생존해 있는 원폭 피해자 2500명이 대상이다.

 

쓰라린 고통의 삶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온 원폭 피해자와 그 후손들.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정점선님께 이 책을 바칩니다. (5쪽)

우리나라에 원폭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서 이 책을 읽기 시작하니 시작부터 남다른 느낌이다. 소설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인데도, 작가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원폭 피해자와 후손들의 고통이 거대한 불길이 되어 눈앞에 펼쳐진다. '알아야 한다. 한 명이라도 더 실상을 알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이 소설을 읽어나갔다. 

 

소설가 정현재는 어느 날 친구 K를 만나 술을 마시다가 우연히 뉴스에 전두환 비자금 추징에 관한 뉴스가 방송되는 것을 보았다. 전두환의 고향이 합천이라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정현재의 고향 합천이 '한국의 히로시마'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언급한 K, 뜬금없이 원폭에 관한 소설을 써보라고 제안을 한다. 사실 정현재는 자신의 고향 합천이 한국의 히로시마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독재자 전두환의 고향, 합천댐, 천년 고찰이자 삼보사찰 해인사로도 유명한 합천이, 한국의 히로시마라고 불린다고? 그런데 왜 그 사실을 나는 모르고 있었을까? 의문에 의문을 거듭하다보니 소설을 써야할 필연적인 운명을 느끼며, 늘 도망치고 싶었던 땅, 합천을 20년 만에 찾는다. 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잠깐 뵈었던 강분희 할머니가 처음에는 취재 이야기에 싫다며 단칼에 거절했지만, 모든 걸 털어놓고 싶으시다는 연락이 왔다. 결국 합천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이 소설은 경남 합천과 일본의 히로시마를 오가며 삼대에 걸친 원폭 비극을 송곳처럼 파헤친 책이다. 역사적 사건 속에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곳에 원폭 피해자 한국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렇게 짚어주니 비로소 알게 된다. 먹고살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온 조선인 일가족, 학도병이라는 이름으로 군대에 끌려온 학생, 징용으로 공장에 끌려온 스무 살의 새파란 청년, 나물을 캐거나 우물에서 물을 긷다 끌려온 앳된 얼굴의 근로 정신대 소녀들이 히로시마에 있었다. 그들도 원폭 피해 현장에 함께 있었던 것이다.

 

원폭 투하 상황을 눈앞에 펼쳐지듯 생생하게 그려냈다. 온몸이 불타는 듯 뜨거운 불길과 통증, 아프고 쓰라린 비명들, 순식간에 아우성치는 아수라장을 상상하며 읽어나가니 고통은 배가된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아버지였고 아들이었고 딸이었고 친구였을 사람들이 끔찍한 형상을 한 귀신들처럼 우글거리고 있는 지옥. 그곳에 분희도 있었다.

히로시마에 폭탄이 투하되고 난 사흘 뒤 8월 9일 11시 11분 항구도시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폭이 투하되어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히로시마 인구 33만 명 중 14만 명이 사망하고 나가사키에서는 7만 명이 사망했다. 히로시마에 살고 있던 7만 명의 조선인들 중 3만 명이 비참한 죽음을 맞았고 2만 명이 피폭을 당했다. 나가사키에서는 1만 명의 한국인이 죽임을 당했다. 일본 천황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해방된 조국에서는 동포들이 해방의 감격에 취해서 거리로 뛰쳐나와 기쁨의 함성을 지르고 있을 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살고 있던 조선인들은 지옥의 한가운데를 헤매고 있었다. 생지옥이었다. (55쪽)

 

생지옥의 모습, 그것은 고통의 시작이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가슴속에 무언가가 치밀어오른다. 그러면서도 분희를 생각하는 동철의 마음을 보며, 생지옥 속에서도 살아가는, 살아내는 이유는 사랑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비참함으로 울컥한 마음이 바닥까지 내려앉지만 독자의 그런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은 이들의 사랑이라는 요소 덕분이다.

동철이 진달래 꽃가지를 분희에게 내밀었다. 꽃 한 송이를 따서 분희의 흉터에 살짝 갖다 댔다. 꽃잎이 흉터에 닿았다. 나비의 날개가 스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분희는 눈을 가만히 감았다. 마치 동철이 흉터에 약을 발라주는 것만 같았다. 꽃으로 만든 약. 동철의 마음으로 만든 귀한 약이었다. 분희는 비로소 온전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233쪽)

 

원폭의 피해는 당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 대에도, 또 그 다음 대에도 비극은 이어졌다. 담담하게 그려냈지만 읽는 마음에는 온갖 감정이 끓어올라 불타오른다. 분희가 딸 인옥의 앞날에 돌덩이 하나는 치우고 가야겠다며 인터뷰에 응한 그 마음이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 소설을 읽으며 함께 울분을 토하고 이들의 마음을 나누어 진다는 생각만으로도 이들에게 힘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