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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양장) - 개정증보판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한 가지 언어만 접하고 살아가는 환경은 제한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누군가가 짚어주지 않으면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존재 자체를 모르기도 한다. 이번에 새움 출판사에서는《이방인》,《어린 왕자》다음으로《위대한 개츠비》의 새 번역본을 출간했다. '지금까지 당연한 듯 알고 있던 고전번역본이 사실은 왜곡되었다면?'이라는 무시무시한 화두를 던져준다. 외국 작가의 책을 지금껏 번역본으로만 접하고 있었으니, 오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기는 하다. 신랄하고 정밀한, 67군데의 오역을 지적한《위대한 개츠비》를 읽어보며, 진정으로 '위대한' 개츠비를 만나는 시간을 가져본다.

《위대한 개츠비》의 지은이 F. 스콧 피츠제럴드는 1896년 9월 24일 미국 미네소타 주 세인트폴에서 태어났다. 1913년 프린스턴대학교에 입학했지만 1917년 제1차세계대전의 발발로 대학을 중퇴한 후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전쟁에서 죽기 전에 작품을 남기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1920년 첫 장편소설《낙원의 이쪽》을 발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25년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위대한 개츠비》를 발표하였다.
옮긴이는 이정서. 2014년 기존 알베르 카뮈《이방인》의 오역을 지적하며 새로운 번역서를 내놓아 학계에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노이즈 마케팅'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출판계와 번역계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오며 자성을 이끌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2015년 생텍쥐페리의《어린 왕자》의 정밀한 번역을 시도해 기존 번역에서 놓쳤던 문제들을 바로잡았다.
사실 고전소설을 읽겠다고 집어들었다가 중도포기한 적이 많다. 이 책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오는 영화를 보고 난 후에 한 번 읽겠다고 결심만 하고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한 번 읽다가 멈춘 후에는 자꾸 뒤로 미루곤 했다. 유명하고 익숙한 제목 때문에 궁금한 생각이 들면서도 피부에 와닿는 계기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번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떤 계기로 번역을 시작하였는지, 이 책에서는 '역자의 말'을 소설의 앞에 두어 번역에 돌입한 계기를 알려준다.
작가(혹은 출판사)는 왜 이 책의 제목을 <위대한 개츠비>라고 한 것일까? 아니 왜 '개츠비'를 '위대하다'고 한 것일까? 이 번역은 그러한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나로서는 기존 번역서를 읽고 도저히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호기심에 원본을 찾아본 나는 그간 읽은 번역서들과는 너무나 다른 느낌을 받았고, 결국 전체 번역을 해보자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역자의 말 中)
섬세한 표현과 문체로 인간 본성을 아주 솔직히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언젠가 한 번은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알맞은 시기에 읽을 기회를 만든 듯하다. 연휴라는 점이 책에 집중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게다가 어떤 번역본을 접하느냐에 따라 끝까지 읽어나갈지 중도포기를 하게 될지 판가름이 나는 듯하다. 집중해서 읽어나갈 수 있었다는 점, 오역을 줄였다는 믿음 등이 이 책의 장점이다.
290페이지로 이어지는 번역이 끝나고 나니, '역자노트'가 기다린다. 책 전체의 1/3 정도 분량인 역자노트에는 번역을 하면서 있었던 과정, 고뇌,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낸 부분 등을 살펴보게 된다. 특히 마지막 문장에 대한 일화가 인상적이다.《위대한 개츠비》번역을 시작한 걸 알고 전문가 한 분이 '마지막 문장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 질문을 받을 당시에는 당황했다고. 그도 그럴 것이 번역이 한참 진행 중이라는데 마지막 문장을 물어보았으니 뜬금없다고 여길 만하다. 그런데 번역이 반쯤 진행되었을 무렵 또 다른 한 분이 똑같이 물어왔다고 한다. 왜 사람들이 마지막 문장에 집착하는 건지 그땐 몰랐지만, 번역을 끝내면서는 그때와 달리, 끝 문장에선 거의 주저함이 없었다고 한다.
정말이지 닉의 마지막 회고는 시처럼, 아포리즘처럼 직유와 은유가 적절히 배합된 난해하면서도 아름다운 아주 긴 문장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뚫고 나오자마자 만난 저 까다로워 보이지만 단순한 문장은 오히려 너무나 당연해서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의미가 새겨져 왔던 것이다. 역시 직역 그대로가 답이었으며, 앞 문장에서 물 흐르듯 흘러 와야 했던 문장이었다. 떼어 놓고서는 결코 해석이 되지 않는……. (443쪽)
역자가 다음 번역 작품으로 어떤 것을 선택할지 궁금해진다. 특히 이 책에는 '역자노트'가 첨부되어 기존의 문제점과 함께 비교해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번역이라는 것이 의역의 문제도 있고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기존의 번역을 비난한다기보다는 기존과는 다른 의견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번역본은 특히 전체적으로 물흐르듯이 읽을 수 있도록 틀을 잡아주는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이 책으로《위대한 개츠비》를 접한 것은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번역 작품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