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솔지 소설
손솔지 지음 / 새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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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솔지의 소설은 독특하다. 때로는 한두 걸음이 아니라 세 걸음 이상의 거리를 두고 앞서나가서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독자를 뛰어넘는 상상력은 너무도 예측 가능한 뻔한 전개보다는 시선을 끈다.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도 오히려 신선하다. 제목부터 인상적이다. 학창시절이었던가. 이름에 '휘'자가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강한 바람을 불어올 듯한 혁명적인 이름. 그 이름이 소설의 제목이라는 점에서 일단 내 눈길을 잡아끌었다. '휘'라는 이름에 대해 시작했지만,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소설로 완성된 것을 보니 바람이 동심원을 그리며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네 이름에선 휘파람 소리가 나." 동그랗게 오므려진 소녀의 입안에서 바람이 샌다. "네 이름만으로 바람개비도 돌릴 수 있겠어."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의 천진한 얼굴이 동그랗게, 동그랗게 퍼져나가는 빗물의 동심원 속에 있다. 소녀는 모르고 있다.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불행해졌다. (12쪽)

 

이 소설의 작가는 손솔지. 2013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남성 중심적 세계를 살아가는 현대 여성의 내밀한 심리를 드러낸 등단작「한 알의 여자」(단편소설)를 통해 탄탄한 문장력을 지닌 작가, 감정의 절제를 통한 심리적 거리 확보와 상징, 은유와 같은 미학적 장치에 능숙한 작가라는 평을 받았다. 첫 장편 소설《먼지 먹는 개》는 부도덕한 인간의 이기심이 빚어낸 유전자 조작 약물이 이 사회를 어떻게 파국으로 몰고 가는가를 낱낱이 파헤친 문제작으로, 현대사회에 던지는 날카로운 시선과 문제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책《휘》에는 '휘, 종, 홈, 개, 못, 톡, 잠, 초'라는 한 글자 제목의 여덟 편 소설이 실려 있다. 

 

 

한글에는 한 글자마다 주문처럼 큰 힘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단하고 작은 몸 안에 아주 많은 의미를 끌어안고 있어서,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그 속에 숨은 이야기들을 상상하게 되곤 합니다. 소설은 그 글자들을 드문드문 징검다리처럼 이어 붙여, 한 발자국씩 돌을 밟고 따라올 사람들을 내가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 속으로 인도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작가의 말 中)

한 글자만으로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알 수 없다. 목차를 훑어보며 호기심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강한 인상을 준다. 소설은 소설가 혼자 쓰는 것이 아니라 독자와 함께 완성되는 것이다. 여운을 주는 것이 좋다. 제목이든 내용이든 그 무엇이든. 스스로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어야 내 머릿속에서 글을 이어간다.

 

삶에 붙잡혀 자신을 놓쳐버린 지금 여기, 우리 이야기

     휘,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모두 불행해졌다.

     누이는 집안의 유일한 계집이고 그러므로 우리의 종이었다.

     교실 안에서는 시체 냄새가 났다.

     "나는 사람이 아니야. 개야. 이 망할 놈들아."

     왜 저 여자와 결혼을 했을까.

     그때, 내가 떨어뜨린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불면증이란 고양이 같은 질병이다.

     심지가 뜨거운 초의 마음으로 꼿꼿이 선다. (책 뒷표지 中)

 

 

소설은 사실 '진실을 담은 거짓말'에 가깝다는 생각을 합니다. 반대로 현실은 '거짓을 담은 진실'에 가깝고 말입니다. 그렇게 소설과 현실은 거울을 두고 서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를 이어주는 것이 바로 글자인데, 글자들은 모두 개성이 강하고 힘이 아주 세기 때문에 왕왕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 모양과 의미를 달리하는 위험한 존재입니다. 나를 소설과 현실의 경계에서 비틀거리게 만들곤 합니다. 그래서 나는 자주, 아슬아슬하게 금을 밟고 서 있는 기분이 듭니다. (작가의 말 中)

있을 법한 세계, 존재할 듯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소설이다. 진실과 거짓을 떠나 현실 세계에서 충분히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 것이다. 여덟 편의 단편 중에서 어느 것을 먼저 선택해서 읽어도 상관 없을 것이다. 단, 무방비 상태로 읽어나가다가 마음을 훑어내리는 이야기를 만나기도 하니 마음의 준비는 해두길 바란다.

 

손솔지 작가의 소설은 읽는다는 행위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전작《먼지 먹는 개》에서도 그랬고, 이번에《휘》에서도 그렇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떠올리고 생각해내며 사색에 잠길 수 있도록 한다. 현실을 직시하며 사색에 잠기는 시간이 소설의 연장선이 되어 여운을 준다. 파닥파닥 뛰는 활어의 느낌이랄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야생마의 느낌이랄까. 소재의 신선함, 정형화되지 않은 소설이 주는 느낌은 독특한 세계로 안내한다. 한 글자가 주는 강렬함을 잘 붙잡아서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를 풀어간 소설을 보고 나니, 아무래도 작가는 계속 소설을 써내려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다음 소설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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