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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ㅣ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평점 :
주변에 있는 식물에 관심을 두는 것은 늘상 있는 일이 아니다. 한 박자 쉬어가는 느낌으로 자연을 바라볼 때에야 바로소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이 눈에 들어오곤 한다. 어쩌다가 관심을 가져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식물에 관심이 많은 과학자는 나와 어떻게 다를까, 궁금했다. 그것도 여성이라면? 여성 과학자의 성장기 같은 책이라는 글을 보고 이 책을 읽고 싶었다. 자연에서 삶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읽으면서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기대되었다. 이 책《랩걸: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을 읽으며 식물에 비추어 세상을 바라보는 호프 자런의 통찰력을 배운다.

이 책의 저자는 호프 자런.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조지아 공과대학과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부교수로 재직했다. 풀브라이트 상을 세 번 수상한 유일한 여성 과학자로, 2005년에는 젊고 뛰어난 지구물리학자에게 수여하는 제임스 매클웨인 메달을 받았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하와이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동위원소 분석을 통한 화석삼림 연구를 왕성하게 수행했다. 2016년《타임》이 선정한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한 그녀는 현재 오슬로 대학교에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이제 창밖을 보자. 초록색이 보이는지? 보았다면 당신은 지금 세상에서 사람들이 만들지 못하는 몇 남지 않은 것들 중 하나를 본 것이다. 당신의 시야에 들어온 그것은 적도 근처에서 4억 년 전에 발명된 물건이다. 운이 좋은 사람은 어쩌면 나무를 봤을지도 모르겠다. 그 나무는 3억 년 전에 고안된 물건이다. 대기 중에서 필요한 물질을 빼내서, 세포 쌓기, 밀랍으로 틈 메꾸기, 배관하기, 페인트 칠하듯 색소 먹이기 등을 하는 작업은 길어야 몇 달 정도면 끝나고 그 결과 이파리라는 거의 완벽한 물질이 만들어진다. 나무에 달린 이파리의 숫자는 우리 머리에 난 머리카락 숫자와 비슷하다. 정말이지 인상적이다. (10쪽_프롤로그 中)
저자는 아버지의 실험실에서 자랐다고 이야기한다. 그것부터 인상적이었다. 어린 시절에 화학 실험 도구가 늘어서 있는 실험대에서 놀았다니 그 시절의 추억이 지금의 그녀를 만들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과학자'라는 느낌보다는 문학적인 분위기가 풍겨나 '여성'이라는 면이 부각된다. 눈앞에 그녀의 어린 시절 모습이 생생하게 그림처럼 펼쳐진다. 왜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그 안에서 무엇을 볼 수 있었는지, 그녀의 기억을 따라가본다. 어린 시절의 '내 나무'라고 말한 '은청가문비'에 대한 이야기도 꿈을 탄탄하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기억이었을 것이다. 글에는 식물과 함께 식물을 사랑한 그녀의 마음이 담겨있고, 거기에 대한 사색이 잘 표현되어 있다.
호프 자런이라는 여성 과학자의 자서전이라고만 하기에는 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잘 어우러져 있고,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고만 하기에는 그녀의 삶이 도드라져서 표현된다. 사실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일 것이다. 한 분야에서 전문가의 반열에 오르려면 그저 좋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하게 된다. 그녀도 한 권의 책, 나무도 한 권의 책처럼 거대하게 느껴진다.
이 책을 읽으며 한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것도 흥미롭고, 새롭게 알게 되는 놀라운 사실에도 시선을 집중한다.
최근 10년 사이에 우리는 나무가 자신의 유년기를 기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노르웨이의 과학자들은 찬 기후와 따뜻한 기후에서 자라는 가문비나무 '형제들'(유전자의 절반을 공유했다는 의미)에서 난 씨를 모았다. 그리고 수천 개에 달하는 이 씨들을 동일한 조건에서 발아시켜 살아남은 나무들을 한 숲 안에서 다 자랄 때까지 키웠다. 모든 가문비나무는 가을마다 똑같은 일을 한다. 첫서리가 내릴 것에 대비해 성장을 멈추는 '버드 세트'를 실행하는 것이다. 노르웨이 과학자들은 유전적으로 동일하고 묘목 시절부터 같은 숲에서 나란히 자라난 이 수백 그루의 나무들 중 찬 기후에서 배아 시절을 보낸 나무들은 어김없이 다른 나무들보다 2~3주 먼저 버드 세트를 시작해서 더 길고 더 추운 겨울에 대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연구의 대상이 된 모든 나무들은 동일한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씨앗이었을 때 겪었던 차가운 기후를 기억한다는 결론이다. (330쪽)
이 책을 읽다보니 이 글은 그녀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쓸 때에는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누구나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삶을 글을 통해 적절히 풀어내어 자신만의 색깔을 담아냈다. '뿌리와 이파리, 나무와 옹이, 꽃과 열매'라는 3부에 걸친 이야기를 통해 담담하게 펼쳐낸다. 한 그루의 큰 나무 같은 과학자로 성장한 어느 여성의 삶과 사랑, 과학에의 순수한 열정을 담았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꿈을 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왠지 모르게 두근거리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