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파리
목수정 지음 / 꿈의지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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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 책 저 책 기웃거리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파리를 저자인 목수정의 시선으로 훑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저자는 여기 모아놓은 장소들이 12년 동안의 파리 생활에서 마주친 위로와 떨림, 환희와 기쁨의 공간들이라고 고백한다. 내가 가본 곳과 가보지 못한 곳 모두, 그녀에게 어떤 시선으로 그려질지 궁금해서 이 책《당신에게, 파리》를 읽어보았다.

 

 

이 책의 저자는 목수정. 첫 책이《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이었다.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며 글을 짓거나 옮기고 있다.

긴 호흡으로, 파리란 도시를 둘러보고 싶은 사람들, 직접 내발로 가지 않더라도, 머릿속으로 '거기'를 그리며 여행하고 싶으신 분들 앞에 드리고 싶다. 변신을 위해선 두 개의 세계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건너갈 '저기'가. 변신을 꿈꾸는 분께, 당신의 '거기'를 선사한다. 2016년 8월 22일 목수정 (7쪽_프롤로그 中)

 

이 책에는 파리의 마흔 가지 장소에 대한 글이 담겨있다. 그녀의 글은 좀더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좋다. 글을 읽다보면 가본 곳도, 가보지 못한 곳도,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천천히 산책하며 주위를 둘러보는 듯, 어쩌면 내가 직접 갔더라도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그런 소소함이 있다. 결코 사소하지 않은, 그러면서도 짚어주어야 비로소 보이는 상세함이 있다. 글에 몸을 맡기고 집 앞에 마실을 나선 듯한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가면, 마술램프의 요정 지니가 보물창고를 보여주기도 하고, 바스티유 장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는 상상에 빠져들기도 한다. 일요일 오후의 햇살 내리쬐는 정원을 거닐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번 파리 여행 때 숙소를 잡은 곳이 보쥬 광장 근처였다. 그래서 그런지 보쥬 광장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그때의 감정이 오롯이 되살아났다. 유명하다는 다른 곳에 애써 찾아가기보다 내 방식대로 그곳에서 조용히 산책하던 시간을 좀더 가졌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 기억에 더 오래 남는 것은 그런 시간이니 말이다.

낮에 이글거리던 해가 나뭇가지 사이에 걸려, 포도주빛의 달짝지근한 흥분을 전할 무렵, 우리 일행은 이 신비스런 광장을 빠른 걸음으로 가로질러갔다. 사각으로 된 광장을 둘러싼 아치형 통로가 마치 궁전 안쪽의 긴 회랑처럼 걸쳐 있었다. 그 아래를 휙 지나가는 동안 어디서도 마주친 적 없는 매혹적 아우라에 사로잡혔다. 여러 세기에 걸쳐 묵직한 역사를 켜켜이 쌓아왔을 법한 이 공간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여러 겹의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는 듯했다. (47쪽)

저자는 불어,한국어 회화 교환 모임에서 사람들과 파리 시내 곳곳을 산책하던 중 보쥬 광장을 처음 접하게 되었고, 그곳에 다시 가게 된 것은 9년 뒤였다고 한다. 공부를 마친 후 파리를 떠났고, 한국생활 5년 만에 다시 세 살배기 딸아이와 함께 파리로 돌아왔는데, 아이 아빠가 살던 집이 보쥬 광장에서 직선거리로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고. 아이는 3년 간 보쥬 광장에 있는 공립유치원에 다녔고, 유치원이 끝나고 나면 광장에 있는 놀이터에서 놀았다고 한다. 때로는 강렬한 느낌과 함께 기억속에 남은 듯한 공간이 애써 찾지 않아도 언젠가 다시 발걸음을 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살아가면서 경험하지 않았던가. 이 글을 읽으며 나만의 기억속에 있는 어떤 공간을 떠올려본다.

 

테러에 관한 파리지앵들의 생각도 인상적이다. 또한 그에 대한 생각을 술술 풀어내는 저자의 글도 전해주는 메시지가 분명하고 힘이 있어서, 어느 부분을 따로 떼어내어 적어내려가기가 고민된다. 뉴스로만 만나는 것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테러가 벌어진 골목골목들이 인산인해가 되어 넘쳐나고 테러현장은 금세 초와 꽃다발들로 둘러싸였다. 거리에 나온 그 어느 누구도 증오를 말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더 필요한 건 '사랑'이라고 모두가 입 모아 말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한다면, 일어나리라. 그러나 우린 그때까지 우리의 삶을 즐기리라." 파리 사람들의 머릿속을 관통한 한 가지 생각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었다. 카페 테라스에 앉아 와인을 마시다가 총에 맞아 죽는다 해도, 난 다시 카페 테라스에 가 앉는 걸 포기하지 않으리라.…(중략)…두 번째 테러가 파리를 휩쓴 뒤, 석 달 동안 갑자기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던 책은 젊은 날의 가난한 문학청년 헤밍웨이가 쓴 '파리는 날마다 축제'였다. 카페 테라스에 가기, 다시 극장에 가기, 다시 거리를 활보하기가 파리를 사랑하는 시민들의 미션이 되었다. 2016년 2월, 86퍼센트의 파리지앵들은 테러 전과 테러 후의 삶에 아무런 태도의 변화도 없었다고 답했다. (309쪽)

 

시적인 문장이 시선을 끈다. 표현력이 좋아서 이 책을 계속 읽어나가게 한다.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술술 읽게 표현해낸 글을 읽다보면 파리에 가고 싶게 만든다. 물론 이미 갔던 곳이어도 새롭게 보여서 또 가고 싶게 만든다. 공동묘지마저도 가보고 싶게 하는 책이다. 책을 통해 새로운 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닫는다. 파리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다른 책들과는 또다른 감성을 얹어주는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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