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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부신 친구 ㅣ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평점 :
새해를 맞이하여 좀더 긴 호흡의 소설에 도전하게 되었다. 이번에 읽은 책은 나폴리 4부작 제 1권『나의 눈부신 친구』이다. 2011년 '페란테 열병'을 일으킨 '나폴리 4부작' 제1권『나의 눈부신 친구』를 출간하고, 이어서『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잃어버린 아이 이야기』까지 총 네 권을 출간해 세계의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나폴리 4부작'은 이탈리아와 영미권을 비롯해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 총 43개국에서 번역, 출간되고 있다니 궁금증을 더한다.

이 책이 호기심을 갖게 하는 데에는 저자에 대한 미스테리한 이미지가 한몫했다. 이 책의 저자는 엘레나 페란테.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출생한 작가로, 나폴리를 떠나 고전 문학을 전공하고 오랜 세월을 외국에서 보냈다는 사실 외에 알려진 바가 없다. '엘레나 페란테'라는 이름조차도 필명이다. 작품만이 작가를 보여준다고 주장하는 페란테는 어떤 미디어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서면으로만 인터뷰를 허락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여전히 작가의 정체와 관련된 여러 가지 소문이 떠돌지만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다.
"책 자체가 어떤 가치를 충족한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나는 어떠한 토론이나 컨퍼런스 초청에도 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상을 받게 되더라도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탈리아 또는 해외에서 나의 책을 프로모션하기 위해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서면으로만 인터뷰에 응할 것이며 이것도 아주 필요한 상황으로 제한할 것입니다. 책은 한 번 출간되고 나면 그 이후부터 저자는 필요 없다고 믿습니다. 만약 책에 대해 무언가 할 말이 남아 있다면 저자가 독자를 찾아나서야겠지만 남아 있지 않다면 굳이 나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엘레나 페란테_책 뒷날개 中)
먼저 이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 '등장인물'에 대해 보게 된다. 구두수선공네 가족인 체룰로 집안, 시청 수위네 가족인 그레코 집안, 돈 아킬레 가족인 카라치 집안, 목수네 가족인 펠루소 집안 등 세 페이지에 걸쳐 집안과 등장 인물들이 간단히 요약되어 있다. 이 부분은 본문을 읽으면서 틈틈이 짚어보게 된다. 아무래도 인물의 이름과 배경이 낯설기 때문에 꼭 필요한 조치일 것이다.
이 소설은 리노의 전화를 받은 것으로 시작된다. 리노는 자기 어머니가 사라졌다고 했다. 그런데 "부탁인데, 한 번쯤은 네 어머니가 바라시는 대로 해주렴. 어머니를 찾지 말아라.", "어머니를 찾아봤자 소용없을 테니 그만두고 이제 제발 혼자 사는 법을 배워. 이제 내게도 연락하지 않으면 좋겠구나."라며 전화를 끊는 주인공. 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 소설의 시작은 호기심을 제대로 찔러주어 이들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리노 어머니의 이름은 라파엘라 체룰로다. 하지만 나만 빼고 모두 그녀를 '리나'라고 불렀다. 나는 그녀를 '라파엘라'라고도 '리나'라고도 부르지 않았다. 지난 60년 동안 내게 그녀는 '릴라'였다. 만약 내가 그녀를 갑작스레 리나나 라파엘라라고 부른다면 그녀는 우리의 우정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릴라는 30년 전부터 내게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사라진다는 말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중략)...릴라가 바라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릴라는 말 그대로 증발하기를 원했다. 그녀를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가 뿔뿔이 흩어져서 그녀에 대한 그 어떠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나는 릴라를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잘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녀가 이 세상에 머리카락 한 오라기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17~18쪽)
그저 사라지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살아온 66년이라는 세월을 통째로 지워버리려고 하고 있었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 질문은 이 소설을 계속 읽어나가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이 소설은 나폴리 4부작의 제1권으로 유년기와 사춘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 속 화자 레누와 그의 친구 릴라는 같은 반 동갑내기 친구인데, 우정의 시작부터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소설에서는 독자가 직접 머릿속으로 장면을 떠올릴 수 있도록 묘사가 세밀하게 잘 되어 있어서, 그림은 물론 그 장면의 향기까지 감각을 활용하여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다. '나는 아직도 은은한 보랏빛으로 물든 뜰과 따스한 봄날 저녁 공기에서 느껴지던 다채로운 향을 기억하고 있다.(25쪽)' 라든가 '어디선가 마늘 볶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날 태양은 잔뜩 낀 구름 위에 떠올랐고 어디선가 강한 탄내가 났다.' 등의 문장은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이들의 이야기에 빠져들기에 충분했다.
소설을 읽다보면 어린 시절의 친구가 떠오른다. 나와는 정반대 타입이었던 그 친구가 떠오른 것은 이 소설의 주인공 릴라와 레누의 모습을 보고 나서였다. 조용한 모범생 타입이었던 나는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날 시도조차 하지 않았지만, 나와 정반대의 그 친구는 나에게 인생의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릴라가 레누에게 '나 혼자서는 도저히 실행에 옮길 만한 용기를 내지 못했을 또 하나의 일을 제안했다. 학교 수업을 하루 빼먹고 동네 밖으로 나가보자는 것이다.'라는 식의 제안을 했던 것처럼 그 친구도 그랬다. 굳이 순종적이지 않아도 세상이 무너지거나 주저앉아버리는 일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어쩌면 릴라와 레누처럼 나는 그 친구를 좋아하는 만큼 나와 다른 모습에 경쟁과 의존을 했던 것이리라.
이 소설은 덤덤하게 읽어나가다가 어느 순간 훅 치고 들어오는 감정이 있다. 평범한 일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 것도 아닌 밋밋한 과거라고 여겼는데, 소설을 읽다보니 세상 모든 일이 충분히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을 보니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모아놓고 깎고 다듬고 보듬어놓은 결과물을 보니 누구나 쉽게 빠져들 수 있는 매력적인 소설이 탄생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이야기가 떠올라 감정이입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감정을 건드려주는 것이 소설가의 능력이다. 이 소설을 향한 찬사는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나폴리 4부작은 절대적인 명작이다. 나는 이 책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 줌파 라히리
강력하고 매혹적이다. 모험과 놀라움으로 가득 찬, 우정에 관한 잊을 수 없는 서사시. - 르몽드
당연스레 2권으로 바로 손길이 뻗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