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천하 대한민국 스토리DNA 13
채만식 지음 / 새움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대한민국 스토리DNA' 시리즈 중 13번째 이야기『태평천하』이다. '대한민국 스토리DNA'는 옛날 민담에서부터 현대소설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전해지는 이야기는 무수히 많지만, 그 가운데 스토리가 풍부하고 뚜렷한 장편소설을 선정해 과거와 현재, 신화와 역사가 공존하면서 서로 대화하는 형식으로 100권을 채워나가려고 하는 새움 출판사의 야심 프로젝트이다.『태평천하』신랄하면서도 능청스러운 풍자소설의 대가 채만식의 대표작이다. 조금만 읽어보아도 이 책이 왜 포함되어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학창 시절, 교과서를 통해 시험을 위한 공부로 만났던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일제강점기 왜곡된 사회상을 풍자적으로 비판한 1930년대의 기념비적인 작품『태평천하』를 만나는 시간이다.

 

 

먼저 본격적으로 소설 읽기에 들어가기 전에 '일러두기'를 통해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모두 여섯 가지가 있지만, 이 중 세 가지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언제적의 소설인지 알아야 하고, 맞춤법 표기가 어떻게 맞춰졌는지 파악해야 할 것이다. 이 소설은 큰 틀은 유지한 채, 현재의 우리와 간극을 줄이고자 조절되어 있다.

1.『태평천하』는 1938년 1월부터 9월까지《조광(朝光)》에 연재된 작품이다.

2.원본: 1948년 동지사에서 출간된『태평천하』를 원본으로 삼았다.

3.맞춤법 표기는 작품의 원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2016년 현재의 원칙에 따랐다. 다만, 작가의 의도가 담긴 일부 표현, 방언이나 속어, 대화체의 옛 표기 등은 되도록 원본을 살렸다.

 

이 소설에 대해서는 학창 시절에 지겹도록 줄거리나 문체 등 전반적인 정보를 배우고 익히고 외웠을 것이다. 읽어나가다 보면 예전에 외웠던 지식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다 잊어버린 줄 알았던 것이어서 그런지 신기할 정도다. 제목 자체에서부터 물씬 풍기는 반어적 느낌에 더하여, 판소리사설체이기에 반어적 풍자효과가 더 와닿는다. 그 시절 윤직원 삼대의 실상과 몰락을 제 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부조리한 사회적 현실과 오버랩시킨다. 그때나 지금이나 태평천하인 것인가. 단어 그대로의 의미를 담은 태평천하가 아니라, 한없이 비꼬며 헛웃음을 짓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태평천하' 말이다.

 

소설을 읽을 때에 그림을 그리듯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면 읽는 맛이 있다. 이 소설은 계동의 이름난 장자[큰 부자] 윤직원 영감이 인력거를 타고와 대문 앞에서 내려선 데에서 시작한다. 이십팔 관, 하고도 육백 몸메(107.25kg)의 거구인 윤직원 영감, 그를 인력거꾼이 젖 먹던 힘까지 아끼지 않고 겨우겨우 목적지까지 끌고 간 모습이 눈 앞에 선하다. 소설 속 표현에 의하면 '허파가 터질 뻔 한 오늘'이라는 인력거꾼의 고충과 차마 말하지 못한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재미와 있는 자의 횡포를 보는 씁쓸함이 있다.

윤직원 영감은 인력거꾼을 짯짯이 바라다보다가 고개를 돌리더니, 풀었던 염낭끈을 도로 비끄러맵니다. 인력거꾼은 어쩐 영문인지를 몰라 뚜렛뚜렛하다가, 혹시 외상인가 하고 뒤통수를 긁적긁적하면서, "그럼, 내일 오랍쇼니까?" "내일? 내일 무엇 하러 올랑가?"(11쪽)

 

이 소설은 언어 사용의 구수함에 맛깔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도 특징이다. 이야깃꾼이 멋들어지게 술술 풀어나가면 시선을 고정하고 푹 빠져들게 되는, 그런 분위기를 연상하면 된다. 막장드라마를 보는 듯, 연기 잘 하는 악역 배우가 출연한 장면을 보듯, 쯧쯧쯧 혀를 차며 읽게 되는 것도 이 소설의 문체가 주는 매력이다. 독자의 이해가 쉽도록 낯선 단어를 해설하여 괄호 안에 넣은 것도 이 책을 막힘없이 읽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한바탕 이야기에 빠져들어 읽다보면, 책뒷표지에 있는 말이 뼈가 되어 들어와 박힌다.

윤직원 일가의 행태에 실소를 보내던 우리는 멈칫하게 된다.

그들이 보여주는 욕망의 맨얼굴이 현재의 우리와도 몹시 닮아 있기 때문이다. (책뒷표지 中)

 

 

"화적패가 있너냐아? 부랑당 같은 수령들이 있더냐……? 재산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요,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넌 다 지내가고오……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한 정사,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남은 수십만 명 동병을 히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히여 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 제 것 지니고 앉아서 편안허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고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 그런디 이런 태평천하에 태어난 부자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 지가 떵떵거리구 편안허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 놀 부랑당패에 참섭을 헌담 말이여, 으응?" (310쪽)

윤직원이 손자가 사회주의에 가담하여 경시청에 피검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주먹으로 방바닥을 땅- 치면서 성난 황소가 영각을 하듯 고함을 지르는 장면은 전체 소설을 다 읽고 마지막에 만나야 한다. 지금껏 시험을 위해 이 부분만을 읽고 문제를 풀었지만, 앞부분부터 읽어나가니 그 맛이 다르다.

 

인간 삶의 한 단면인데다가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소설이지만, 그 시절의 시대상을 담아냈기에 의미 있는 소설이다. 삶에 대해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해보게 된다. 옛 소설로 들려주는 메시지를 현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전달 받아 의미를 파악해보는 시간이다. 이런 점이 문학의 생명력이자 소설의 힘인가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