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말들의 위로 - 흔들릴 수는 있어도 쓰러지지 않는 인생을 위해
유선경 지음 / 샘터사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다른 이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는 책에 대한 관심을 키워준다. '이 책 궁금해지는군. 읽어봐야지.'라고 생각하거나. '나도 이 책 읽었는데 그속에 이런 문장이 있었나? 이렇게 보니 이 문장 참 괜찮네.'라는 느낌이 생길 수 있다. 세상은 넓고 쏟아지는 책은 많은데, 하루는 24시간으로 한정되어 있고, 하루종일 책만 읽더라도 다 읽어낼 수 없으니, 당연히 책을 통해 또다시 책의 세상을 만날 수 있는 작업은 필요하다. 그리고 흥미롭다. 저자의 눈을 빌려 책을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아주 오래된 말들의 위로》는 저자의 가슴에 남아 인생의 길이 된 문학 속 명문장들을 들려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라디오 방송을 듣는 듯, 조곤조곤 들려주는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책 속의 책에 마음을 담아본다.

이 책은 KBS 클래식FM <출발 FM과 함께> '그가 말했다'에서 소개된 방송 원고를 바탕으로, 현대인의 가장 큰 고민인 상실, 불안, 고독, 자유라는 네 개의 주제에 어울리는 책을 각 열 권씩 추려 새로 쓴 것이다. 오랜 세월 곁에 두고 읽어온 책 속에서 시간의 지혜를 품은 말들을 뽑아냈다. 거기에 살아오며 터득한 깨달음을 더했다. 막막함을 안고 인생의 질문 앞에 선 이들이 용기를 내기바라는 마음을 이 책 안에 담았다. (책날개 中)

 

이 책의 저자는 유선경. 1993년부터 KBS, SBS, EBS 라디오에서 시사, 문화, 다큐멘터리, 음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의 글을 썼다. 지은 책으로《문득, 묻다》시리즈,《꽃이 없어서 이것으로 대신합니다》,《소심해서 그렇습니다》가 있다.

위로(慰勞),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주거나 슬픔을 달래준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위로,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해결해주거나 슬픔을 덜어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읽는 이의 이해와 도량, 선택과 결정에 달린 일입니다. (10쪽)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된다. 1장 '상실, 너의 허기와 구멍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너의 삶을 살아라', 2장 '불안, 앞을 살펴 재난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믿을만한 동맹군', 3장 '고독, 나로 결정된 시간이 아니라 나를 결정할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4장 '자유, 움직여봐야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로 나뉘어 총 40권의 문학 작품 속에서 건져낸 명문장들을 들려준다. 이 책과 나의 코드가 잘 맞았다고 할까. 마음에 간직하고 싶은 문장을 많이 발견했다. 인용한 책들만 좋은 것이 아니라, 언급한 문장을 자신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저자의 글솜씨도 내 마음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하다.

 

황순원의 단편소설《링반데룽》에서 주인공은 친구가 공수병으로 오늘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다. 그는 친구의 벌겋게 광채를 띤, 초점을 잡으려고 애쓰면서도 못 잡는 듯한 시선이 하나의 뜻을 지니고 가슴에 와 부딪치는 걸 느끼며 '링반데룽'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짙은 안개나 세찬 눈보라를 만났을 때 제일 안전한 방법은 이미 자리 잡고 있던 데서 그냥 날씨가 호전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일정 관계나 식량 사정으로 부득이 다음 목적지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될 경우가 생기는 수가 있다. 그때 보통 등산자는 자기가 목표한 곳을 향해 곧장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은 자신도 모르는 착각에 의해 어떤 지점을 중심으로 둘레를 빙빙 돌기가 일쑤인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링반데룽이라는 것으로, 사람에 따라 왼편으로 돌기도 하고 오른편으로 돌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 세찬 눈보라나 짙은 안개 속에서 대개 등산자는 이 환상방황을 하다가 종내는 조난을 당하게 마련인 것이다."(p.13)

죽음에 이르러서야 목표를 향해 걸어갔다고 믿은 행위가 사실은 어떤 지점을 중심으로 둘레를 빙빙 돈 것에 불과했음을, 그래서 결국 이렇게 조난당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얼마나 허망할 것인가. 지금까지의 생을 모두 잃어버린 셈이나 마찬가질 테니. 자신의 뱃속에 든 허기와 가슴에 난 구멍의 정체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결코 채울 수 없는 것을 채우기 위해 그 주변을 빙빙 도는 링반데룽, 환상보행을 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허기와 구멍의 정체란, 내가 가졌으나 잃어버린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땅히 가져야 했으나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것이기도 하고, 또한 갖고 싶어 미치도록 열망하는 것이기도 하다. (43~46쪽)

이 책을 읽으며 원작을 직접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황순원의 <소나기>말고 다른 작품을 아직 접하지 못했기에 이번을 계기로 관심이 생긴다. 다른 책에 대해 흥미를 유발시켜주는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저자가 언급한 문학 속 문장과 내가 직접 읽고 뽑아낸 문장을 비교하고 싶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책 속의 책을 읽는 일부터 시작해야할 것이다. 이 책은 독서의 욕구를 불타오르게 하는 힘이 있다. 그저 나긋나긋 속삭이는 듯한 어감이면서도 후폭풍은 강렬해진다. 별 이야기가 없다면 대충 보려고 했지만 새벽까지 붙잡게 되는 책이다. 어쩌면 고요한 시간이 더 어울릴 책이다.

 

 

* <아주 오래된 말들의 위로> 책미리보기 http://goo.gl/W2uZ3N 
 
* <아주 오래된 말들의 위로> 함께하면 좋은 책 : <하루 명화 하루 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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