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인문학
진중권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시대가 말이 아니다. 우울하고 답답하고 좌절감을 느끼다가도, 더 이상 움츠리지 않고 함께 촛불을 밝히는 사람들의 마음에 힘을 얻는다. 그래도 단시일 내에 마무리될 것 같지는 않아서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더 흘러야할까? 이 책《치유의 인문학》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아야 상처가 반복되지 않는다'는 말 때문이었다. 마음이 흔들렸다.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 일어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니, 어떻게 하면 치유할 수 있을까? 이 책《치유의 인문학》을 통해 발견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이 책은 진중권, 서경식, 박노자, 박상훈, 조국, 고혜경, 정희진, 이강서, 황대권, 문요한 등 대한민국 대표 인문학자 10인의 광주트라우마센터 강의를 담은 책이다. 광주트라우마센터는 5.18민주화운동을 비롯하여 국가로부터 고문과 폭력을 당한 분들과 그 가족을 치유하는 곳이다. 각종 상담 및 원예, 예술 치유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국가폭력 트라우마 국제회의, 심리치유워크숍 등 국가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인권증진 활동을 해오고 있다.

 

'치유의 인문학'은 2013년 7월 박노자 교수의 '타자에 대한 폭력, 우리 안의 폭력' 강의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매달 이어져 오고 있다. '폭력'과 '치유'라는 주제로 강의하는데, 결국 나와 사회를 돌아본다는 점에서 모든 강좌가 하나로 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치유의 힘은 우리 각자의 내면에, 그리고 우리를 연결하는 공동체에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인문학은 나와 공동체를 성찰하게 한다는 점에서 '인문학 공부는 곧 치유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롤로그 中)

 

직접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풀어나간다는 느낌이 든다. 강의를 들으며 마음에 드는 내용 앞에서 메모를 하듯, 책을 읽어나가며 마음에 와닿는 내용 앞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저 상처를 망각하게 해 주는 것이 힐링이 아닙니다.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고, 혼자 해결할 수 없음을 인식시키는 것, 그것이 진정한 힐링이요, 멘토링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중권 강의 中)

 

10인의 강연자마다 각각의 색깔로 다른 이야기를 펼쳐준다. 먼저 책을 펼쳐들면 집중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이야기를 잘 정리해서 엮었다는 생각이 든다. 슬슬 넘기려고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앞부터 뒤까지 물 흐르듯 술술 이어가는 이야기에 그대로 시선을 집중하고 읽어나가게 된다. 강의 하나가 끝나면 잠시 쉬어도 되겠지만, 이상하게도 곧바로 다음 장을 들춰보게 되었다.

분노는 인식입니다. 때문에 현재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마음을 다스린다'는 의미의 힐링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내)마음을 다스린다'? 누구(나)가 누구(나의 마음)의 마음을 다스릴 것인가? 자아의 분열이 올 뿐입니다. 분노는 분노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인지 반응입니다. 참거나 시간이 지나면 풀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분노에 대한 이 시대 멘토들의 조언(?)은 가관입니다. 분노를 인식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멈춰라, 마음을 다잡아라, 마음을 잡고, 분노 이후에 벌어질 일을 생각하라, 분노를 조절하라' 등의 비문 非文이 그럴듯하게 횡행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극세속의 언설과 반지성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실에 분노합니다. 이것은 억울한 사람들의 분노와 그 분노를 비난하는 기득권 세력에 굴복하는 억울한 이들을 이중으로 괴롭히는 행위입니다. (207쪽, 정희진 강의 中)

 

그동안 인문학을 세상과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다보니 우리 사회의 모습이자 우리 삶 그대로, 그 속에서 치유의 힘을 주는 것이 인문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유'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당연시 했던 어떤 이미지와는 확연히 다르게 다각도로 생각해보았다. 이 책을 읽는 독자 또한 10인의 강연자들이 풀어내는 강연을 통해 자신만의 인문학적 세상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독자의 마음속에 어떻게 해석할지는 각자의 몫으로 남겨준다.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의 작은 의식 변화를 시작한다. 어렵게 첫걸음을 떼고 함께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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