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자와 남는 자의 마지막 수업 - 91세 엄마와 아들이 주고받은 인생 편지
앤더슨 쿠퍼.글로리아 밴더빌트 지음, 이경식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가까우면서도 잘 파악하기 힘든 것이 가족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영재발굴단>을 보다가도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얘기를 하지! 얘기를 안하면 모를 텐데….' 하지만 가족은 생각보다 대화를 깊이 나누지 못한다. 함께 있는 시간이 많으면서도 진정한 대화부족에 시달리는 것도 가족이기에 그럴 것이다. 이 책에서는 말한다. 더 늦기 전에 사랑하는 이와 대화하라고! '91세 엄마와 아들이 주고받은 인생 편지'라는 점에서 이 책《떠나는 자와 남는 자의 마지막 수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그로 인해 이들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해서 얼른 책장을 넘겨보았다.

 

이 책에는 CNN의 간판 앵커인 아들 앤더슨 쿠퍼와 1924년생인 어머니 글로리아 밴더빌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아흔한 번째 생일을 몇 주 앞두고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자, 앤더슨 쿠퍼는 어머니에게 이제까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모두 다 해야겠다고 마음먹는데, 어머니가 보낸 이메일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1년여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고, 이 책에서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그들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다.

 

어머니는 아흔한 번째 생일 아침에 나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그것이 어머니가 나에게 보낸 첫 번째 이메일이었다.

91년 전 이날, 나는 태어났다.

거트루드 고모님이 보내 주셨던 쪽지가 생각나는구나. 오래전 생일에 받은 편지였는데, '놀라워라! 네가 태어난 지 벌써 17년을 꽉 채웠다니!'라고 적혀 있었지.

그래, 오늘 나는 91년을 꽉 채웠다. 그때에 비하면 아마도 무지무지하게 더 현명해졌겠지. 하지만 어쩐지 나는 여전히 열일곱 살 같은데…… 어떻게 된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뭘까?

거기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그런 게 있기나 할까?

이 이메일과 여기에 담긴 세 개의 질문이 대화의 출발점이었다. 이 대화는 마침내 우리 사이의 관계를 바꾸면서 우리 두 사람을 더 가깝게 해 주었다. 많은 부모와 장성한 자식들이 나눔 직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 대화는, 지나간 우리의 날들을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으로 만들어주었다. 우리 모자 사이에 가로놓여 있던 침묵의 벽을 깸으로써, 예전에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방식으로 어머니와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13~14쪽)

 

사실 어머니 글로리아 밴더빌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록펠러, 카네기와 어깨를 나란히 한 미국의 철도왕 코닐리어스 밴더빌트의 5대손으로, 막강한 사교계의 여왕이자 대부호인데,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영화감독 시드니 루멧, 작가 와이어트 쿠퍼 등과 총 네 번 결혼했다. 배우 말론 브란도,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 등과도 염문을 뿌렸다. 작가, 모델, 디자이너, 미술가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평범한 엄마와 아들이라고 생각했다가, 아들도 엄마도 평범하지는 않아서 화려한 이력에 대한 낯선 느낌이 들었다. 이 점에서 초반에는 집중력이 떨어졌다. 하지만 읽어나갈수록 이들 모자의 진솔한 대화에 이끌렸고,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도 있었다. 글로리아 밴더빌트라는 인물에 대해 아들 앤더슨 쿠퍼와 함께 하나씩 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들 모자는 어머니가 91세가 되어서야 대화의 물꼬를 트게 되었다. 그것도 이메일을 시작으로. 그런 것을 보면 가족 간의 대화는 '오늘부터 대화를 하자'라고 시작을 한다고 금세 막혀있던 모든 것이 풀리는 것은 아닌가보다. 하지만 영원히 통하지 않는 사이도 없는 것이다. 어떻게든 대화가 시작되면 일단 이전보다는 나아진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둘 사이의 장벽을 조금씩 허물며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을 보니 뭉클한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 영원히 모를 수도 있었을 이야기를 언어로 풀어가며 나눈 것 자체만으로도 이들의 인생은 바뀌었다고 생각된다.

윌라 캐더가 이렇게 썼단다. "다른 사람의 마음은 아무리 가까이 다가간다고 해도 늘 어두운 숲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두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적어도, 밝은 빛이 비추어졌으니 예전보다는 좀 더 가까워졌을 것이라고는 말할 수 있겠지. (373쪽_어머니의 메일 中)

 

감동적인 이야기. 마음을 열수록 친밀감이 어떻게 깊어지는지를 증명한다. 가족과의 관계를 변화하기에 늦은 때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

_「퍼블리셔 위클리

어머니가 91세에 아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았다는 것과 이들의 이야기가 이토록 진솔하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가족 간에 나누지 못할 말이 무엇이며, 서로 마음의 벽을 쌓아놓을 것은 무엇이랴. 이들 모자의 글을 보다보면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부모님께 말 한 마디 건네고 싶어질 것이다. 그럼 그렇게 가족 간의 대화는 새로이 시작될 것이다. 어머니 혹은 아버지의 옛 시절에 관해 들어보자. 부모님도, 옛 이야기도, 사라지기 전에. 그렇게 하고 싶어지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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