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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데스
소피 오두인 마미코니안 지음, 이혜정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9월
평점 :
죽음 이후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각종 드라마나 영화, 소설에서 비슷한 듯 다르게 펼쳐지는 모습을 보며 얼추 비슷하리라 짐작만 한다. 누구든 죽음을 접하지 않고서야 사후세계를 알 수는 없으니 말이다. 경험해본 사람의 이야기를 보아도 그것이 실제인지 꿈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래서 소설이라는 매체를 통해 작가의 상상력을 최대한 살려서 그려낸 것을 보며 짐작만 할 뿐이다. 일단 이 소설은 '애프터 데스'라는 제목부터 무언가 심오한 파장을 일으킨다.『타라 덩컨』작가 소피 오두인 마미코니안의 새로운 판타지라는 점도 이 책에 대한 궁금증을 한껏 키웠다. 저자와 제목만을 가지고 읽어보고 싶은 소설로 점찍어놓고 기회를 엿보다가 읽어보게 되었다.
이 소설의 저자는 소피 오두인 마미코니안. 1961년에 태어난 아르메이나 왕위 계승자로, 파리 아사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열두 살 때부터 용과 뱀파이어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한 소피는 만 오천여 권의 SF소설을 읽으며 작가의 꿈을 키워왔다. 14년이라는 오랜 작업 기간 끝에 탄생한『타라 덩컨』시리즈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능가했다는 평을 받으며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제레미가 방금 숨을 거두었다.
21세기, 거대한 도시 뉴욕에서.
사무라이에게 목이 잘린 채. (11쪽)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의 시체 위에 서 있었고, 등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안녕, 젊은 천사! 죽은 자들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하오!"
스물 세 살의 젊은 금융가였고 천재 소리를 듣는 재원인 제레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제레미는 완전히 죽은 것이다.
첫 장부터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컬러풀한 색채를 이용해서.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2002년 브뤼헤에서 열린「얀 반 에이크, 초기 플랑드르파 남부 화가들」전시회에 갔던 이야기를 한다. 작품 중 장 푸케의「믈룅 성모 마리아」에 대한 것이다. 아기 예수를 무릎에 앉힌 성모 마리아가 짙푸른 드레스를 입고, 가슴 부분의 옷을 잘라 그 위로 비현실적으로 하얀 가슴 한쪽을 드러낸 그림인데, 그녀는 조형적인 표정을 한 붉은 아기 천사들과 푸른 아기 천사들에 둘러싸여 있었다고. 소피 오두인 마미코니안은 그 그림에 완전히 매혹되어 영감을 얻은 것이다. 천사들이 지닌 영혼은 붉은색과 푸른색, 두 가지 색깔이라는 것과 두려움이나 증오처럼 부정적이고 난폭한 감정들은 붉은색이고, 기쁨이나 사랑과 같이 긍정적인 감정들은 푸른색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그날의 시각적 충격이 녹아들어 이 소설이 탄생한 것이다.
안개로 옷을 만든다든지, 인간의 감정을 섭취하며 산다는 등 상상력의 끝은 도대체 어디일지 감탄하며 읽어나간다. 시체 공시소는 또 어떤 곳인지. 작가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세계를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냈다. 뜬금없는 것이 아니라 흥미진진해져서 빠져든다. 잔인한 시작 때문에 괜히 기분이 우울해질까봐 첫 세 줄만 읽고 한참을 방치해두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기우였던 것이다. 조금만 더 읽었다면 이 책을 한달음에 읽어나갔을 것이다. 다시 읽기 시작했을 때, 15페이지부터는 천사들의 색깔을 상상하며 기분좋게 빠져들었으니 이 소설을 읽겠다고 생각한다면 저녁 스케줄을 비우고 식사를 든든하게 한 후에 읽기 시작하면 좋을 것이다. 몇 페이지를 넘기고 보면 다음 전개가 궁금해서 책을 손에서 놓기 힘들 것이다.
목차도 독특하다. 죽음의 맛, 감정의 맛, 악의 맛, 죄의식의 맛, 타인의 맛, 욕망의 맛, 두려움의 맛, 광기의 맛, 무능력의 맛, 다른 곳의 맛, 아름다움의 맛, 경험의 맛, 피의 맛, 위험의 맛, 부재의 맛, 배반의 맛, 힘의 맛, 유혹의 맛, 붉은 악의 맛, 사랑의 맛 등 총 20가지 맛을 보여준다. 독특한 상상의 세계와 다양한 감각을 통해 읽어낼 수 있는 소설이어서 독자를 흥미로운 세계로 끌고 간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한 반박도 깨알같은 재미였다. 제레미가 '천사들은 형체가 없다고 누가 그랬던가? 아마도 어리석은 인간이 그랬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사후세계가 우리의 상상처럼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즉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놓고 마음껏 상상력을 펼쳐서 새로이 만들어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아인슈타인과 갈릴레이의 설전, 미켈란젤로가 죽은 뒤에도 안개를 이용해 계속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는 설정에서는 재미있게 웃을 수 있었다.
과연 제레미에게 펼쳐지는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그녀를 살해한 사람은 만날 수 있을까. 뒷 이야기를 궁금해하며 읽다보면 금세 마지막을 볼 수 있다.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는 판타지 소설이라는 것을 알고 읽기 시작했어도 좋았으리라 생각된다. 스포일러 우려 때문에 소설에 대한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 정보가 없었던 것이다. 살인사건의 무게감 때문에 살짝 당황했던 것이 아쉬울 정도로 몰입도가 상당히 뛰어났던 소설이다.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것저것 생각지 말고 그냥 선택하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