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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호 열차 - 제5회 정채봉 문학상 대상 수상작
허혜란 지음, 오승민 그림 / 샘터사 / 2016년 10월
평점 :
이 책《503호 열차》는 초등학교 고학년 어린이를 위한 동화책으로 제5회 정채봉 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정채봉 문학상'은 고(故) 정채봉 작가(1946~2001)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대한민국 아동 문학계를 이끌어 나갈 동화 작가를 발굴하기 위하여 2011년 제정되었으며, '동심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정채봉 작가의 믿음을 이어 가고 있다.
1937년 구소련의 '고려인 강제 이주'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였는데, 2017년은 고려인 강제 이주 80주년이 되는 해이기에 더욱 의미 있는 책이다. 죽음 같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엿볼 수 있기에 읽고 나면 가슴 뭉클한 무언가로 마음이 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글쓴이는 허혜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동화를 알게 되었고, 2015년 중편동화 <503호 열차>로 정채봉 문학상을, 청소년 단편소설 <우산 없이 비올라>로 푸른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린이는 오승민.《꼭꼭 숨어라》로 2004년 국제 노마콩쿠르 가작을 수상했고, 2009년에는《아깨비의 노래》로 볼로냐 국제도서전 한국관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었다.
이 책은 여러 나라로 흩어진 수많은 이들을 생각하며 썼습니다. 오랜 세월 이방 땅에서 섞여 살며 많은 것을 잊었지만 문득문득 아버지의 나라, '그 땅'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들.《503호 열차》는 그들의 노랫소리에 대한 작은 응답입니다. (책 속에서)
철커덕, 철컥, 철커덕, 철컥……. 어디로 가는지 모른채 쇠바퀴 굴러가는 소리만 계속된다. 열차는 라즈돌로예 역에서 출발했고, 언제 멈출지 모르는 상황이다. 영문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연해주의 한인들은 열차를 탈 수밖에 없었다. 동물을 운반하고 죄인을 호송할 때 사용하던 열차 안에서 수송 인원의 약 4분의 1이 사망했으며, 척박한 중앙아시아의 맨땅에서 그해 겨울을 나면서 또 많은 이가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왜 열차를 타고 가는지도 모른채 사람들은 따뜻한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닐까 희망을 가져보기도 했지만, 상황은 더 나아질 것이 없었다.
"우리는 짐승이 아니야! 죄인이 아니야! 노예도 아니야! 제발 내 아기를 돌려줘, 흐흑!" (53쪽)
그래도 이 책에서 어두운 단면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볼 수 있어서 긍정적이다. 살아있는 한, 삶이 지속되는 한,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가 마음을 파고든다.
"그것이 생명이여! 그것이 희망이고. 그것이 내일이지."
"우리는 조선 사람이야. 조선 사람들은 이 씨앗을 다루는 특별한 능력이 있단다." (63쪽)
할머니는 종이에 싸인 씨앗 꾸러미를 삼촌과 사샤의 손에 쥐어주셨다. 벼, 밀, 보리, 배추, 무, 상추, 열무, 호박……. 어둠 속에서도 희망이 있고, 끝날 것 같지 않은 암담함 속에서도 내일을 볼 수 있다.
"우거덕 우거덕 파도친다. 에헤야 뿌려라……."
"씨를 활활 뿌려라. 땅의 젖을 다 먹고 와삭와삭 자라나네. 와삭와삭 자라나네……." (86쪽)
우렁찬 목소리로 음정도 박자도 틀린 목소리로 소리치는 삼촌, 거기에 한 사람, 두 사람 목소리가 더해져 노랫소리는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흩어진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사실 이들의 새로운 시작이고, 지금까지 계속되는 삶일 것이다.
"용서는 하지만 잊지는 않습니다" 저자가 수상 소감에 '야드바셈' 기념관에 쓰여있던 글귀를 언급하며 말한다.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도와야 할 이들을 도우며, 기억해야 할 것들을 기억하며.' (수상소감 中)
동화책을 보며 그동안의 무관심했던 것을 인식하게 된다. 예술 작품의 파급력을 몸소 느끼게 되는 동화책이고, 왜 이 책이 심사위원 모두를 매료시키고 감탄을 자아내게 했는지 알 것 같다. 어두운 역사적 순간을 사실적으로 생생하게 기록했다는 점에서 의미있고, 그림이 주는 효과까지 글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