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어 - 탁재형 여행 산문집
탁재형 지음 / 김영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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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생활에 익숙해져 무덤덤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다보면 여행의 시간이 그리워진다. 여행을 하며 낯선 풍광을 보고 사람들을 만나며 평범한 나날과는 달랐던 시간을 떠올린다. 돌파구가 되었던 여행의 시간이 그리워진다. 하지만 언제나 마음대로 여행을 꿈꿀 수는 없다. 그렇기에 여행 이야기를 담은 책을 보며 간접경험도 하고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이 책《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어》는 <세계테마기행>PD이자 오지 전문 여행가인 택재형 PD의 글을 담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하나씩 들춰보며 여행의 기분을 느껴본다. 여행을 사색해본다. 그때 그 마음을 떠올려본다.

 

여행 도중에,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것보다,

비를 맞아도 괜찮은 여행이면 좋겠다.

 

비를 피할 곳을 찾다가 우연히,

당신과 만나는 여행이었으면 좋겠다. (프롤로그 中)

 

이 책은 묘한 매력이 있다. 가볍게 슬쩍 넘기다가도 어느 문장 앞에서 멈춰서게 된다. 과거의 여행을 떠올리기도 하고, 그의 말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어리벙벙해지기도 한다. 지독하게 공감한다. 나의 여행도 그러했듯이. 내 마음도 그러하듯이.

분명히 존재했던, 하지만 삶의 큰 줄거리에선 벗어난 순간들. 이 기억들이 아직껏 남아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어딘가에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내 앞에는 커피잔이 있다. 손을 뻗으면 매끈하고 단단한 질감이 따뜻한 온기와 함께 전해져 온다. 갓 내린 커피의 향이 코 안을 가득 채운다. 감각은 너무나 선명하다. 이 순간을 언제까지나 기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빛, 소리, 냄새와 감촉에 대한 기억은, 소멸한다. 기록되지 않는 이상 기억은 희미해지고, 언젠가 사라진다. (35쪽)

 

한때 여행을 많이 했지만 거기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아 '그곳에 간 적이 있었던가' 의문이 들만큼 사라져버린 곳도 많다. 나에게도 사라져버린 무언가가 너무 많다. 기록되지 않아 떠올리기조차 힘든 아쉬움을 붙잡아본다.

수첩을 덮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가봤지만 기억나지 않는 장소들을 떠올린다. 만났지만 희미해져버린 사람들을 생각한다. 기록되지 않아 존재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한다. (41쪽)

 

한두 번 여행을 다녀와 집필해낸 책이 아니라, 그동안 수많은 여행을 경험하며 있었던 일 중 거르고 걸러진 소재를 잘 담아냈다. 이것 저것 부산하게 말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압축하고 아끼고 걸러서 정제된 언어를 전달해주는 듯한 느낌이다. 한 마디 말에 수만 가지의 의미가 담긴 듯 하다. 멈춰서서 문장 속에 푹 빠지게 되는 순간들이 나에게는 또다른 여행을 꿈꾸게 한다. 그의 글은 잠자던 내 여행 감성을 깨우고 부추긴다. 묘하게 설레고 두근거리는 책이다.

 

가볍게 읽다가도 푹 빠져들고, 한참을 사색에 잠기다가 깔깔 웃으며 그의 여행을 짐작해보기도 한다. 글의 강약조절이 잘 되어 나를 푹 빠지게 한 여행에세이다. 에필로그에서 말하는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보며, 책의 마무리까지 풍덩 빠져들게 한다.

여행이라는 것은 결국, 그물을 드리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거기엔 반드시, 무엇이든 걸려 있기 마련이다...내 여행이라는 그물에 걸린 것들을 당신 앞에 내놓는다...아무쪼록 당신이 이 기억들을 맛나게 먹어주면 좋겠다. 그래서 당신도 어딘가에 그물을 드리우고 싶어지면 좋겠다. (에필로그 中)

나도 그물을 드리우고 싶다. 다음 번 그물은 알차게 잘 칠 수 있을 것 같은데…. 여행을 꿈꾸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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