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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노인 그럼프 ㅣ 그럼프 시리즈
투오마스 퀴뢰 지음, 이지영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보면 떠오르는 책이 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된다. 특이한 할아버지의 등장으로 한 때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인기몰이를 한 소설『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나『오베라는 남자』가 먼저 생각난다. 『괴짜 노인 그럼프』는 그 소설들보다 먼저 나왔다면 충분히 시선을 잡아끌 매력적인 책인데, 이제야 출간되었다는 점이 아쉽다. 이 소설을 읽으며 까칠한 괴짜 노인 그럼프의 매력에 푹 빠져본다.
이 책의 저자는 투오마스 퀴뢰. 1974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태어났다. 2001년 소설『가죽점퍼』로 데뷔한 후 소설, 희곡, 만화 등 다양한 작품 활동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2005년 소설『관계』로 매년 촉망받는 젊은 작가에게 주는 칼레비 얀티 상을 수상했고, 핀란드의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인 핀란디아 상의 후보에 오르며 스타 작가의 반열에 들었다. 이 책『괴짜 노인 그럼프』는 2009년 핀란드 공영 라이도 방송에 작가가 연재한 단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까칠한 괴짜 노인 캐릭터에 독자들은 열광했고, 이후 세 권의 책으로 출간된 그럼프 노인 이야기는 인구 560만의 핀란드에서 35만 부 이상이 판매될 정도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2014년에는 영화로 제작되어 최다 관객 동원이라는 기록을 세웠고, 영어로도 번역된 이 책은 '2015년 최고의 유럽 소설'로 권위를 인정받으며 작가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럼프 노인의 매력에 빠져드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매일 요양원으로 아내를 만나러 가는 그럼프 노인. 그는 치매에 걸린 아내를 간호하며 자기 또한 병원 침대에 누워 지내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아내는 내가 돌보지만 누가 나를 돌볼 것인가? 아들이 내게 음식을 떠먹일까? 아닐 것 같다. 아들이 나를 돌보는 것을 내가 원할까? 정녕 아니다. 간호조무사가 침대 위에서 내 힘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굴리면서 내 몸 구석구석을 보게 될 것인가? 샤워하는 것을 도와주면서 퇴근 후 마트에서 무엇을 사야 할지, 고양이 사료가 남아 있나 생각하다가 문득, 이 노인네 인생도 다 끝났다고 생각하겠지. (25쪽)
기저귀는 용납할 수 없다. 다른 것은 어떻게 하지? 그럼프 노인은 천 가게를 방문하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장례식 준비를 시작한다.
직접 관을 짜고, 추도문을 쓰고, 나무 묘비를 만들고…. 그럼프 노인은 훌륭하고 깜짝 놀랄 만한 유언장을 쓰기로 작정했지만, 잉크가 없다.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양질의 종이에, 고인이 되신 아버지가 당신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으신 딥펜, 즉 잉크를 찍어서 쓰는 펜으로 작성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유언장을 꼭 쓰셔야 하면, 컴퓨터로 하시면 어때요?" 아들은 다른 방법을 조언했지만 어림없다. 결국 마을에 나가서 잉크를 새로 사기로 했다. 어찌된 일인지 사무용품점이 있다고 알고 있던 자리에는 사무용품점은 없었다. 과연 새로 잉크를 사서 훌륭한 유언장을 쓸 수 있을까?
이 소설은 피식 웃게 하기도 하고 눈물이 고이게 만들기도 한다는 점이 장점이다. 웃음 코드가 중간중간에 있어서 웃으면서 읽을 수 있으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죽음'이라는 소재가 있기에 강약을 조절하며 읽게 된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기에 죽음이라는 소재는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지만, 우리는 늙거나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까칠한 투덜이 그럼프 노인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바라보며 이 소설이 던져주는 의미에 잠겨본다. 이 소설을 읽으면 문학평론가 황현산이 말한 '비장한 코미디이며 해학으로 위장한 비장함의 서사'라는 표현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보니, 책 뒷날개에 추천사가 눈에 띈다.
이 책을 읽어본 사람들은 모두 투오마스 퀴뢰가 핀란드식 유머의 제왕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울 것이다. 퀴뢰는 자신의 독백에 완벽한 리듬과 목소리를 불어넣어 독자가 웃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든다. _「헬싱인 사노맛」 (핀란드 최대의 일간지)
이 소설로 핀란드 소설가 투오마스 퀴뢰의 가능성을 엿본다. 2014년에 영화로 제작되었다니 그 작품도 우리나라에 들어오기를 기대한다. 동세대 작가 중에서 가장 다재다능하다고 평가받으며 '핀란드 유머의 제왕'이라는 찬사를 받는 투오마스 퀴뢰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