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하이든
사샤 아랑고 지음, 김진아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맛비가 며칠 째 내리고 있다. 이런 때에는 밖에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가만히 있는 것이 좋다. 이왕이면 푹 빠져드는 책을 읽고 싶어지는데, 이 책『미스터 하이든』을 읽으며 인간 본성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 작품의 대략적인 설명만 보고는 헨리 하이든이라는 인물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왜 아내를 죽이고 내연녀마저 없애버리려고 했던 것일까? 하지만 소설을 읽어나가다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이 없지만 이미 벌어진 일. 어느새 헨리의 심리 속으로 들어가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인간의 사악한 밑바닥까지 파헤치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사샤 아랑고. 1959년 베를린 태생으로 독일에서 가장 저명한 시나리오 작가 중 한 명이다. 다수의 연극, 방송 대본을 집필했으며 독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방송 상인 '그리메 상'을 비롯해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이 책은 그의 소설 데뷔작이다. 독일 내에서는 물론 런던도서전에서 크게 화제가 되어 유럽과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도 러브콜을 받으며 20여 개국에 저작권을 수출하였다. 각종 미디어에서 "심리 묘사가 훌륭한 걸작 스릴러, 아름다운 누아르이자 훌륭한 페이지 터너"라는 호평을 들었다.

 

이 소설은 헨리 하이든의 내연녀 베티가 임신을 하여 헨리가 태아의 초음파 사진을 보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시작부터 찌질하고 솔직한 헨리의 심리 묘사가 압권이다. 타인의 속마음을 읽지 못한다는 것은 다행인 것인가? 헨리는 아내 마르타를 생각하며 앉아있었지만, 헨리의 눈에 눈물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베티는 그가 기뻐서 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은 첫 장면부터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스토리가 전개된다.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면서 읽다보면, 사실은 커다란 비밀이 숨겨져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헨리 하이든.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의 처녀작 <프랭크 엘리스>는 전 세계적으로 천만부가 팔려나갔고 학교 교과서에도 실렸으며 연극무대에도 올려졌다. 그런데 거기에는 놀라운 사실이 있다. "헨리가 그 소설 중 단 한 문장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 자신과 마르타뿐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헨리의 아내 마르타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그녀는 선천적 공감각의 소유자였다. 그녀에게는 모든 냄새와 소리에 각각의 색깔과 무늬가 존재했다. 어린 시절 알파벳들이 뿜어내는 신비로운 빛에 대한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말했다가 바로 병원으로 가게 되었고 약을 처방받았다. 그 이후로 헨리를 만나기 전까지 그건 그녀만의 비밀이었다. 그녀는 밤새 글을 쓰지만 자신의 원고를 자랑스러워하지도 않고 다시 읽지도 않는다. 그냥 글 쓰는 게 좋을 뿐이다. 신비롭고 매력적인 캐릭터여서 헨리가 실수로 베티 대신 마르타를 죽인 것이 안타까웠고, 혹시나 마르타가 살아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져서 책장에서 손을 뗄 수 없었다.

 

헨리는 살인을 잘 하는 사람이다. 그냥 잔혹한 성향이 있기 때문에 살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으로 포장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법 중에 살인도 포함되는 것이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그의 거짓말이 들켜버릴 상황이 왔고 더 이상 발뺌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 보게 되는데, 어찌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방어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잔혹한 살인마의 이중적인 모습으로 인간 본연의 사악한 면모를 드러내기도 한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한다. 디테일은 그의 적이다. 생각 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 깜빡하고 빠트린 사소한 정황,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실수 하나가 모든 것을 망친다. 살인자는 자신이 한 행동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기억을 돌이켜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침묵해야 한다. 그러나 침묵은 인간의 본성에 위배된다. 비밀을 지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다 평생 비밀을 지켜야 한다면 그것은 고통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볼 때 살인자는 살인을 한 순간부터 벌을 받는다고 봐야 할 것이다. (책 속에서)

 

심각한 것인데 평범하게 술술 풀어나간다. 어느 부분에서는 웃음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냥 읽어나가다가 문득 생각을 해보면 깜짝 놀라고 오싹하게 된다. 무섭다고 대놓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할수록 잔인한 느낌이다. 그런 점이 이 책의 매력이다. '무서운 책을 읽어야지'가 아니라 '인간 심리의 내면을 밑바닥까지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읽는다면 헨리의 독백이 더욱 와닿을 것이다.  

거짓말쟁이들은 잘 알겠지만 거짓말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으려면 아주 약간의 진실이 들어 있어야 한다. 한 방울만 들어가도 충분할 때가 많지만 중요한 것은 거짓말 속의 진실은 마티니 속의 올리브와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책 속에서)

 

소설을 읽을 때 등장 인물에 대한 이해와 앞으로의 사건에 대한 궁금증은 독자를 끝까지 끌고가는 힘이 있다. 이 책에는 그런 힘이 있었다. 과연 헨리 하이든의 거짓말은 밝혀질 것인가. 그의 아내 마르타는 죽은 것일까, 혹시 살아있지는 않을까. 헨리가 베티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 옌센 형사는 그의 범죄를 밝힐 것인가. 헨리의 자료를 샅샅이 모은 기스베르트 파쉬는 앞으로 어떤 일을 펼칠 것인가. 일단 책을 펼치면 의문투성이다. 뒷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쉽게 손에서 놓지 못할 것이다. 궁금한 생각에 결국 할 일을 미룬 채 끝까지 읽어나갔다. 바쁜 일정이 있는 사람은 일단 일을 마치고서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밥도 배불리 먹고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중간에 끊는 것이 싫었으니 말이다. 개성 넘치는 등장 인물과 탁월한 심리 묘사가 압권인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