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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타이를 세 번 맨 오쿠바
유채림 지음 / 새움 / 2016년 6월
평점 :
살아가면서 누명을 쓰는 것만큼 억울한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한 일이 아닌데도 내가 범인으로 지목되고 옥살이를 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분할까? 여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 있다. 이 소설『넥타이를 세 번 맨 오쿠바』에서는 평범한 한 남자가 여자아이 강간살인범으로 몰려 옥살이를 한 뒤 무려 39년 만에 무죄가 확정된 사건을 다룬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39년이라는 세월동안 죄인 신세가 되다니, 그가 겪었을 고난과 시련이 눈에 선하다.


이 책의 작가는 유채림. 1989년부터 작품 활동을 했다.『넥타이를 세 번 맨 오쿠바』는 계간지『작가들』에 1년 동안 연재한 장편이다. 찬사와 조언을 받자와 엄청 뜯어고쳤다는 후문이 있다.
환타지가 아닌 이상, 소설은 언제나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비록 살인누명이라는 골격을 제외하면 모든 게 상상력에서 비롯됐지만, 남원에 계신 오쿠바 어르신이 아니었다면『넥타이를 세 번 맨 오쿠바』는 나올 수 없었다. 그러니 모욕을 견뎌온 그분의 삶에 이 소설이 작은 위안이라도 되기를! (작가의 말 中)
소설은 사회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기능을 한다. 때로는 알기 불편한 일도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도리일 것이다. 이 소설을 통해 현실 세계의 불합리한 모습과 신에 대한 것까지 함께 고뇌하며 생각에 잠긴다.
이 소설에서는 1장에서 변호사 이덕열이 화자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시콜콜한 일상사를 들려주는 듯 시작되다가 갑자기 훅 빠져들게 된다. '변호사 이덕열이 만난 특별한 의뢰인'인 오쿠바의 이야기가 2장부터 전개된다. 오쿠바는 어금니라는 뜻인데, 정원탁의 별명이었다. 유년시절부터 조목조목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어느덧 독자에게 오쿠바라는 인물이 각인된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 하나가 조작에 의해 범인으로 지목되고 억울한 누명을 쓰는 과정을 보게 된다. 내무장관이 못박은 날짜 10월 10일에 맞춰 사건이 조작되고 오쿠바는 진화를 덜한 본능에 충실한 동물 수준의 살인마로 전락했다. 물론 경찰은 일계급 특진을 하는 쾌거를 누린다.
평범한 만화방 주인에서 '열흘 만에' 여아 강간살인마가 된 오쿠바
기막혀서 한 번, 숨 막혀서 한 번, 억울해서 한 번…
무기형을 받을 때마다 그는 넥타이를 맸다. (책 뒷표지 中)
'넥타이를 세 번 맨'이라는 수식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감옥에서 넥타이를 맬 일이 뭐가 있을까. 하지만 소설을 읽어나가다보니 넥타이를 맨다는 것은 목을 맨다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감옥에서 세 번이나 목을 맸다. 이 책에서는 한 사람의 사연을 읽어나갈 수 있다. 우리처럼 평범하면서 별다를 것 없는 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낀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겨우 무죄판결을 받았는데 허무하고 속상할 뿐이다.
대법원은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오쿠바의 손을 들어주었다. 1972년 10월 10일 오쿠바가 구속된 이래 40년 만에 받아든 무죄판결이었다. 오쿠바의 나이 일흔일곱이었다. (427쪽)
오늘의 무죄판결, 그건 신의 은총이 아녜요. 만에 하나, 무죄판결이 신의 은총이면 지나간 40년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요? 불행은 물물이 일어났고, 내 삶의 정원은 폐허로 변했어요. 40년을 능가하는 축복이나 은총, 인도, 그런 건 없어요. (428쪽)
이 책을 읽으며 알 수 없는 울분이 솟아오른다. 억울함, 분노, 우리 사회의 민낯 등 현실의 어두운 면모를 보게 된다. 실화라는 데에서 오는 충격, 사건 전개에 대한 호기심으로 답답한 마음을 누르며 계속 읽어나가게 된다. 오쿠바라는 인물에 감정 이입을 할수록 우리 사회의 누구도 그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좌절감에 사로잡힌다. 이 소설은 독자의 마음을 바닥으로 내리치고 신의 근원적인 부분까지 생각에 잠기도록 유도한다.

악이 신을 압도했다. 완전자인 신은 신이 창조한 세계 안에서 완전히 실패했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할 게 아니라 선악과를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그 불완전성의 신을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분노와 원망과 두려움과 슬픔을 안고 죽어가는 인간을 신은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그 무기력한 신을 왜 믿어야 한단 말인가. 그러니 밤하늘의 별 같은 표상일 뿐인 신을 두고 우리의 구세주라고 어떻게 전파할 수 있단 말인가. (254쪽)
세상이 아름답고 핑크빛으로 물들어있다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억울해도 되는 것일까?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길 만큼 철저하게 짓밟혀도 되는 것인가? 모든 것이 작가의 상상력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소설이 전개된 것은 충격적이다. 이미 <그것이 알고 싶다>라든가 다른 매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했고, 여전히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사건이다. 특히 현실의 누구든 또다른 오쿠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