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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쁨 - 느리게 걸을수록 세상은 커진다
실뱅 테송 지음, 문경자 옮김 / 어크로스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세상의 변화는 속도에서 느낄 수 있다. 세상은 빨라지고 있다. 여행도 마찬가지로 빠른 속도로 해낸다. 많은 사람들이 짧은 기간에 도장찍고 다니 듯 이곳저곳을 오가며 보다 많은 것을 보고 오는 여행을 즐긴다. 모든 여행은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지만, 해보지 않은 여행에 대한 궁금증은 있게 마련이다. 두 발로 느릿느릿 세상을 만끽하는 여행이 우리에게 어떤 깨달음을 줄 지 궁금해진다. '느리게 걸을수록 세상은 커진다'는 이 책『여행의 기쁨』을 통해 실뱅 테송이 말하는 느린 여행에 동참해본다.
이 책의 저자는 실뱅 테송. 프랑스 문단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 불린다. 고전적인 여행자이자 자유로운 유랑자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지리학을 전공한 저자는 '지리학자는 언제나 여행자일 수밖에 없으며, 세상을 알기 위해서 걷는 자'라고 이야기한다. 실뱅 테송은 비행기도 기차도 심지어 자동차도 타지 않는다. 그는 매일매일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발길 닿는 대로 무작정 길을 간다. 사막을 걷고 초원을 달리고 숲을 헤매고 때로는 도시의 성벽을 오르면서 육체를 마음껏 움직이게 하고 정신을 자유롭게 풀어놓는다.《여행의 기쁨》은 두 발로 세상을 만끽하는 가장 느린 여행자의 기록이다. 이 책은 우리가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놓쳐버린 세상의 온갖 경이로움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던져주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인다. '여행의 법칙이라는 것은 없다. 정답도 없다. 나의 여행 방식이 다른 사람보다 좋은 것은 아니다. 그저 나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만의 여행을 생각해본다. '정당한 수단으로'하는 여행은 무엇일까. 모터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비행기와 자동차, 배 등의 운송수단을 이용할 수 없으니 여행의 폭이 좁아진다. 무작정 걷는 것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 자전거나 말의 보조를 받는 것도 힘들다. 나는 어느 선에서 여행 방식을 규정할 것인가. 생각에 잠긴다. 그저 이 책을 통해 예측해보는 수밖에.
저자는 엔진 없이, 자신의 힘이 허용하는 한도 이상으로 더 빨리 이동하는 수단 없이 자연과 대등한 조건에서 자연에 그대로 자신을 맡기는 여행을 '정당한 수단으로'하는 여행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상대적인 것이다. 저자는 라싸 시를 향해 가던 중 티베트 고원에서 기어가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왜 걸어가지 않습니까?"
"신들이 내가 편리함에 굴복했다고 비난할 것이기 때문이오."
사기가 꺾인 채 나는 그를 떠났다. 나는 그동안 내가 고대의 마지막 떠돌이 광대 중 하나이고 천상의 방랑자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막 언제나 나보다 더 철저한 사람이 있다는 생생한 증거를 마주쳤던 것이다. (21쪽)
저자는 가끔은 '정당한 수단'을 어기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수단이 목적인 것은 아니니 큰 오류는 아니지만 스스로에게는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면서 '반더러'의 삶을 직접 실행하며 유랑인이자 방랑자로서 지내는 저자의 삶을 간접경험해본다.
괴테는 이탈리아를 여행하기 몇 해 전에 "나는 산과 평원 지역 사이를 심부름꾼처럼 오가며 길에서 사는 데 익숙해졌다"라고 썼다. 먼지 풀썩이는 길 위에서만 불에 덴 내면의 상처를 진정시킬 수 있는 젊은 시인은 친구들에게서 '반더러'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 독일 단어는 다른 나라 말로 옮기기 까다로운 단어다. 이 세상에서 경이로운 것들을 발견하기 위해 매복하는 고전적인 여행자와 모든 장애물로부터 자유로운 유랑자 사이에 있는 어떤 것이다. 탐색하듯이 길을 걸어가면서 내가 자주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 반더러라는 인물이다. (59쪽)
처음에는 슬슬 넘기려고 했으나 자꾸 앞으로 되돌아가서 깊이 읽게 된다. 가벼이 넘기게 되는 것이 아니라 무겁게 끌어내리며 자신의 메시지를 전한다. 한 번에 의미가 닿지 않아서 다시 읽어보면 그 안에 들어있는 의미가 다르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옮긴이 후기에 보면 '테송의 글은 생략과 비약이 많고 문체도 시적이어서 읽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인간과 자연, 그리고 여행에 대한 그의 관점이 분명하기 때문에 강한 전달력과 환기력을 발휘한다.'고 번역자 문경자가 말한다. 천천히 하는 여행의 속도만큼 느릿느릿 읽어야 가치가 더욱 다가올 책이라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