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골방
이명행 지음 / 새움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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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7주기를 맞이했다. 믿기지 않는 비보를 접한지 벌써 7년이나 흐른 것이다. 그 후로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세월이 흐르고 있다. 대통령 선거도 하고 국가 정책은 이어지며 세상은 어제와는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 소설은 잠들어 있던 세포를 흔들어 깨우는 매개체가 된다. 정치에 대해 무감각해져버린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오래 방치해놓은 서랍을 열어 먼지 쌓인 일기장을 꺼내 들춰보는 듯하다. 소설을 매체로 현실을 인식하며, 애써 외면했던 세상을 들여다본다.

 

 

이 소설의 작가는 이명행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만나는 자리에서 "대통령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라는 유언 같은 말을 들었다고 한다. 작가는 실제 퇴임해 고향으로 돌아간 노무현 대통령과 마주하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내용을 소설의 주요 모티브로 삼아 이 작품을 완성했다. 실제 노무현 대통령의 이야기는 아니고, 읽다보면 여러 대통령이 떠오른다. 소설을 통해 인간적인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 특징이다. 대부분의 정치소설이 그렇듯 팩트와 픽션을 혼합한 팩션을 소재로 삼았지만, 소재 자체의 진위여부보다는 어떤 상황에 맞닥뜨린 인간의 심리를 들 여다보는 점에 초점을 맞춰 읽게 된다.

 

이 책의 제목에는 두 가지 핵심 단어가 있다. 바로 '대통령'과 '골방'이다. '대통령'이라는 단어를 통해 현실 속 대통령을 생각해본다. 무엇이든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절대권력이 아닌,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함께 보는 것이 이 책에서 다루는 '대통령'의 현실일 것이다.

그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집요한 욕망들이 들끓는 터널 속에 갇힌 존재다. 가끔 그는 그 터널 속에서 짓뭉개진다. 그러나 그가 짓뭉개지는 이유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대통령이 누군가에게 짓뭉개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9쪽)

'존엄한 지위에 있으면서 동시에 굴욕의 대리인'이었던 모습을 보며 독자의 입장에서도 한없이 무기력해진다. 하지만 나약한 모습만으로만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기에 소설을 읽으며 희망을 건져낸다.

 

또 하나의 단어는 '골방'이다. 대통령은 골방을 만들어 알몸으로 그곳에서 춤도 추고 담배도 피우고 고뇌도 하면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낸다. 자신만의 비밀의 공간, 자신만의 동굴인 것이다. 이 소설에서 꼭 필요한 장치인 것이다. 장소 뿐만 아니라 마음의 공간인 셈이다. 방해받지 않는 혼자만의 공간이다.

그는 보고를 끝내고 일어서려는 박에게 골방을 만들어야겠으니 도와달라고 말했다. 처음에 박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종이를 꺼내 그림을 그려 그것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가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그것이 왜 필요한지를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187쪽)

이 책의 제목에 나오는 '골방'을 보니 생각나는 시가 있다. 골방은 자신만의 성찰을 위한 공간,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색의 공간일 것이다.

함석헌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 / 이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 이 세상의 냄새가 들어오지 않는 / 은밀한 골방을 그대는 가졌는가? / (…) 님이 좋아하시는 골방 / 깊은 산도 아니요 거친 들도 아니요 / 지붕 밑도 지하실도 아니요 / 오직 그대 맘 은밀한 속에 있네 / 그대 맘의 네 문 밀밀히 닫고, 세상 소리와 냄새 다 끊어버린 후 /  맑은 등잔 하나 가만히 밝혀만 놓면 / 극진하신 님의 꿀 같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네.

 

이 소설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답살'이다. 짓밟아 죽인 것을 뜻한다. 남녘의 안남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일흔다섯 살 노인이 답살을 당했다. 피살자 노인과 일곱 명의 가해자,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노인을 둘러서서 밟아 죽이고도 그 노인이 불쌍해서 울었다니 왜 그런 것인가. 하나의 사건으로만 생각되던 것이 얼키고 설켜 전체를 연결시킨다. 이 책이 뒤로 갈수록 독자를 끌고 가는 힘이 있는 것은 사건에 대한 실마리가 조금씩 풀리면서 독자 스스로가 짐작하도록 하는 것이다. 스스로 답을 찾도록 유도한다. 소설가 혼자만이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이 소설을 읽는 독자 또한 소설에 참여해서 함께 소설을 쓰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소설을 읽고 나니 생각이 많아진다. '대리인으로서의 삶'을 살아냈던 대통령의 존재를 들여다보는 것이 소설 전반을 아우르는 하나의 생각이었다면, 이 책에서 던지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적용해서 곱씹어보는 것이 또 다른 질문이었다. 국민으로서 원하는 이상적인 대통령은 어떤 모습인지, 현실 속의 대통령은 어떤 고뇌 속에서 흔들리고 있을지, 나는 무엇이며 인간이란 어떻게 존재해야할지 등등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 질문들이 소설의 연장선이 되어 5월의 어느 날을 짓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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