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들꾸들 물고기 씨, 어딜 가시나
성석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성석제의 글을 집어들었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을 계기로 성석제의 글에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다가, 제목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 어떤 책 한 권에 그의 글을 멀리한 적이 있다. 그 책을 읽지 말았어야 했다. 기대하다가 잔뜩 실망하고는 한동안 그의 글을 찾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은 기억을 희미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이제야 또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드는 책을 만났다. 『꾸들꾸들 물고기 씨, 어딜 가시나』라는 제목을 한동안 읊조렸다. '꾸들꾸들 물고기씨', 꼼지락거리며 어디론가 향해가는 물고기의 싱싱한 항해를 머릿속에 떠올린다.

 

이 책의 저자는 성석제. 소설가이자 산문작가이다. 1995년 산문집《위대한 거짓말》을 펴내며 산문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 책은 작가의 일곱 번째 산문집이며 더러 허구가 가미된 '이야기'이다. 여행, 장소, 시간, 음식, 그리고 사람에 대한 글을 담고 있다. (책날개 中)

이 책은 삽화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독특한 그림체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뻔한 그림이 아니라 오히려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고 마음에 각인된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민혜의 작품인데《무서운 날의 그림책》《내 맘대로 할래》《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등에 그림을 그렸다. 

 

이 책은 2부로 나뉜다. 1부 '세상에 이런 맛이'와 2부 '오, 육체는 기뻐라'로 구성된다. 이 책을 읽다보면 후각과 미각을 자극하는 맛깔스러움이 있다. 앞부분에 나오는 맛있는 이야기를 보면서 독서를 멈추고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그냥 읽어나가기에는 맛있는 음식이 떠올라 꿀꺽 침을 삼키며 허기를 달래야했다.

내 기준에 단골 음식점은 최소한 다섯 번 이상 반복해서 간 곳이다. '손님(소비자)은 왕'이라는 값싼 자본주의식 구호는 단골 음식점에는 통하지 않는다. 손님은 단골 음식점에 왕으로 군림하러 가는 게 아니고 자기 좋아서 자발적으로 간다. 이미 알고 있는 단골 음식점의 맛, 그에 대한 기대는 어떤 화학조미료보다 뛰어난 천연의 환상적인 조미료다. (75쪽)

작가는 단골집들을 떠올리다 보니 우연히도 국수를 파는 곳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한다. 그 중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단골집 뚜리바분식에서 먹었다는 비빔국수 이야기를 보며 냉면의 첫맛을 공유한다.

 

고향 음식에 대한 글도 인상적이었다. 본적이 상주시 낙양동. 그곳에 있다는 골곰짠지를 설명을 보며 떠올려본다. 이름도 처음 들었으니 어떤 음식인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이럴 때에는 글을 읽으며 짐작할 뿐이다. '골곰짠지는 국물이 겉에만 밴 무말랭이보다 훨씬 촉촉하고 깊은 맛이 난다. 한겨울 새벽 눈 내린 마당을 건너가 김치움에서 골곰짠지를 한 보시기 꺼내오면 그것만으로 밥 한 그릇을 비울 수 있었다.'(255쪽) 골곰짠지를 씹으면 눈 밟을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한 '꼬드득(오도독)'소리가 난다는데, 소리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오감을 자극한다. 곶감, 칼국수, 된장과 시래기, 배추전 등 고향 음식을 소개해주는데 글을 통해 상주의 식문화를 접하는 즐거움이 있다. 상주에 태어나 머물렀던 시간은 15년도 되지 않지만 성석제의 소설은 절반 가까이가 상주를 무대로 한 것이라는 글이 마음에 맴돈다.

 

이 책에는 성석제가 여행한 곳이나 고향 등 어떤 공간에서 접한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아주 쏙 마음에 든 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실망한 책도 아니었다. 이 책을 읽고서는 성석제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독자인 나에게 또다시 '성석제'라는 이름 만으로 책을 선택하겠다는 의지를 심어준 책이다. 읽다보면 배가 고파지는 책이다. 그만큼 맛깔스럽게 꾹꾹 눌러담았고, 오감을 살려 풍미를 전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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