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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도서관 - 황경신의 이야기노트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12월
평점 :
50만 독자가 선택한 『생각이 나서』를 읽은 기억을 떠올린다. 그 책을 통해 황경신 작가의 글을 처음 접했다. 사진과 함께 작가의 글이 짤막하게 펼쳐지는데, 별 생각 없이 펼쳐들었다가 의외로 눈길을 멈추게 되었다. 구석에 쳐박혀 먼지 풀풀 날리는 나의 옛 일기장을 우연히 꺼내보는 듯한 느낌으로 공감의 시간을 보냈다. 그 다음에 읽은『한 입 코끼리』는 독특한 소설이었는데, 여덟 살 소녀가 보아뱀을 만나 열여덟 편의 동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어린 시절 읽은 동화의 희미한 기억을 떠올리며 창의적인 상상력의 세계로 들어가보았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은 황경신 작가의 책이기 때문이었다. '황경신의 이야기노트'라는 설명을 보고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어떠한 편견 없이 읽어보려고 다른 설명은 일부러 외면했다.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선택하고 싶어지는 책이었으니 말이다. '국경의 도서관'이라는 제목 밑에 '38 True Stories & Innocent Lies'라고 적힌 부분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나에게는 제목보다 강렬하게 다가온 메시지였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에 시선을 모아본다. 그것이 소설이든 에세이든 어느 한 분야에 규정짓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황경신의 이야기는 독특하니까 믿고 맡겨보기로 했다. 이번에도 역시 독특한 상상으로 내 사고의 틀을 깨주었고 책 읽는 맛을 느끼게 했다.
책을 읽는 것은 평범한 일상의 흐름을 깨고 나와 다른 세상을 맛보는 것이다. 가끔은 내 입맛에 맞지 않는 책도 있지만 이렇게 착착 감기는 책을 읽을 때에는 뿌듯한 생각이 든다. '이런 상상을 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게 만드니 계속 읽어나가게 된다. 짤막한 이야기에 갖가지 인생의 맛이 녹아들었다. 때로는 작가의 목소리로, 때로는 등장 인물의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갔다. 뜬금없는 상황 설정이지만 이상하게도 현실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일상에서 누구나 느낄 법한 생각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통통 튀는 매력을 발산한다. 가능하다면 저자의 상상력을 조금만 얻어오고 싶을 지경이다.
이 책 속의 이야기는 어느 하나 더하고 덜하고를 따질 수 없이 푹 빠져들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물론 좀더 글 속의 세계에서 느껴지는 여운에 머뭇거리게 되는 글은 있다. 특히 커피를 마시며 읽을 때에 본 글이어서 더 인상적으로 남는 부분이 있었다.
"그렇게 하면, 이별을 좀 더 잘 견딜 수 있나요?"
당신은 웃지도 않고, 천천히 커피를 마시는 속도로 대답했어요.
"이별은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일과 같아. 너무 성급하게 마시면 마음을 데고, 너무 천천히 마시면 이미 식어버린 마음에서 쓴맛이 나. 이별을 잘 견딜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없어. 하지만 겁먹을 필요도 없어. 지금 네가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그 마음을 다하면, 시간이 흐른 후에도 향기는 남는 거니까." (182쪽)
커피를 마시는 속도로 이별을 생각해본다.
처음에는 짧아서 아쉽다고 생각되던 글이 다 읽고 보니 오히려 짧아서 강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여운을 주고 머릿속에서 다음 이야기를 상상하게 된다. 작가가 상상력의 물꼬를 트며 독자를 이끌고 나가면, 밋밋한 일상에서 벗어나 상상의 세계로 초대받는다. 긴 소설을 읽기에는 부담스러운 독자 중 한 사람으로서 황경신 작가의 글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앞으로 신간이 나오면 찾아 읽어보고 싶어진다. 독자의 기대에 부담갖지 말고 지금처럼만 상상력을 조금씩 보여주기 바란다. 마음에 드는 책이고 틈틈이 아껴가며 읽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