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약국
니나 게오르게 지음, 김인순 옮김 / 박하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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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생각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 책에 달려가는 일처럼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책은 나를 빨아들이고, 마음속의 먹구름을 지워준다."고 미셸 드 몽테뉴는 말했다. 하지만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일까. 책에 따라 나를 더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알기에 이 말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힘들고 지칠 때 책이 나를 위로해줄 수 있다면 그 책은 어떤 책일까. 샤를 드 스공다는 한 시간의 독서로 누그러지지 않는 걱정은 결코 없다고 했는데 어떤 책을 읽으면 걱정이 사라질까. '종이약국'이라는 곳이라면 이런 고민을 해결해줄 수도 있을텐데….

 

『종이약국』이라는 제목만으로도 처방전을 건네받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몸이 건강하지 않을 때에는 약을 먹고 회복을 하듯,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 책을 처방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누군가 나에게 이렇듯 구체적으로 책처방을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천천히 음미하게 된다.

"손님에게는 혼자만의 방이 필요합니다. 방은 너무 밝지 않아야 하고 손님에게 친구가 될 고양이가 있어야 하죠. 그리고 이 책을 천천히 읽으세요. 책을 읽는 틈틈이 푹 쉴 수 있도록 말이죠. 손님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어쩌면 눈물이 치솟을 수도 있어요. 자신 때문에, 지난 세월 때문에. 하지만 그러고 나면 마음이 편해질 겁니다." (21쪽)

 

이 책의 저자는 니나 게오르게. 독일 북부 빌레펠트에서 태어났다. 1992년 기자, 칼럼니스트로 시작하여 지금은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순문학뿐 아니라 미스터리, 스릴러, 로맨스 등의 여러 장르를 소화하며 다양한 개성을 지닌 작품들을 발표했다. 2013년 『종이약국』을 발표하자 100만 부를 기록한 베스트셀러 작가로 부상했다. 『종이약국』은 독일에서 출간되자마자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영미뿐 아니라 유럽 지역 출판사에서 번역본을 내기 시작하여, 현재 총 33개국의 독자가 자국의 언어로 읽고 있다.

 

먼저 이 책의 제목과 소재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책을 펼쳐들고 페르뒤 씨의 서점을 구체적으로 떠올리며 우리 일상 속에서 이상적인 서점을 상상하곤 했다.

페르뒤 씨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고통들을 덜어주기 위해 배를 한 척 샀다. 그 배는 원래 룰루라는 이름의 화물선이었다. 그는 배를 직접 개조해서 규정하기 어려운, 무수히 많은 영혼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약인 '책'으로 채웠다. (33쪽)

이 책에 담긴 문장은 생생하다. 그림을 그리듯 상황을 떠올리다보면 읽는 속도가 느려진다. 이상향을 떠올리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갔다.

"책은 의사인 동시에 약이기도 해요. 진단을 내리고 치료를 하죠. 손님이 안고 있는 고통에 맞는 적절한 소설을 소개하는 것, 바로 내가 책을 파는 방식입니다."(39쪽)

손님이 원하는 책을 파는 것이 아니다. 페르뒤 씨는 귀와 눈과 직관을 이용하여 상대방 영혼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꼭 필요한 책을 처방하는 것이다. 이런 곳이 내 주변에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 속에 이런 공간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도 이 책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이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나 만으로도 행복해진다. 고양이의 나른한 포근함과 함께 노골노골해지는 느낌으로 마음을 열고,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그러던 어느 날, 페르뒤 씨에게 의문의 편지 하나가 도착한다. 완벽할 듯한 페르뒤 씨에게 처참한 상처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면서부터 소설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며 나른한 시간을 보내다가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치는 느낌을 받는다고 할까. 사랑의 속성이 원래 그런 것이리라. 달콤하고도 격정적인 그런 것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리저리 오가는 마음으로 삶을 바라본다. 때로는 잔잔하고, 때로는 폭풍처럼 몰아치는 것이 인생일테니. 때로는 누군가를 치유하고 때로는 치유를 받아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 인간일테니. 페르뒤 씨도 그런 존재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뭉클한 무언가가 가슴을 훑어내린다. 간단히 약으로만 해결될 증상이 아니라 수술로 도려내야 해결될 듯한 느낌이다. 가볍게 읽으려고 붙든 소설에서 묵직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끼며 페르뒤 씨의 마음에 감정이입하게 된다. 이야기의 마무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했는데, 나의 기대대로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마지막에 부록으로 담긴 '페르뒤 씨의 종이약국, 애덤스에서 아르님까지'에는 두 권을 제외하고 이 책에 나왔던 책처방전을 소개하고 있다. 감정 혼란의 증상이 경미하거나 또는 어느 정도 심각한 경우에 정신과 마음을 빠르게 진정시켜주는 약이라고 한다. 복용법은 다음과 같다. 다른 처방이 없으면, 소화하기 좋은 분량으로(약 5~50쪽) 여러 날에 걸쳐 나눠 복용한다. 가능하면 발을 따뜻하게 하고 고양이를 무릎에 안거나 아니면 두 방법 중의 하나를 선택한다. 처방전을 읽어내려가는 것도 흥미롭다. 다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무렵이나, 다 읽고난 후 며칠 후에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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