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성자 한국의 서정시 (시학) 12
조오현 지음 / 시학(시와시학)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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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 조오현 시인의 시집이다. 이 책 『아득한 성자』는 2007년 정지용문학상 수상 기념시집으로 발간된 것이다. 필명은 조오현, 법명은 무산, 법호는 만악, 자호는 설악, 현재 설악산 산감이라는 시인. 스님의 시집이어서 그런지 시집 안에는 화두같은 언어들이 가득하다. 진리를 담아내는 데에는 긴 설명이 필요없다. '시인의 말'에서부터 그의 언어가 신선하다. '중은 끝내 부처도 깨달음까지도 내동댕이쳐야 하거늘 대명천지 밝은 날에 시집이 뭐냐. 건져도 건져 내어도 그물은 비어 있고 무수한 중생들이 빠져 죽은 장경 바다 돛 내린 그 뱃머리에 졸고 앉은 사공아.'

 

가을을 맞이하여 시집 몇 권은 읽어내겠다고 선택한 시집들이 마땅치 않았다. 현대시의 난해한 느낌을 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웠나보다. 읽었다고 글을 남기기 싫은 책들은 그저 다시 덮어두고 올해는 더 이상 시집을 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를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 시집이 있었으니, 바로 조오현의 시집이다. 정갈한 언어, 깔끔하게 정리된 삼라만상, 짧은 언어로도 많은 것을 품고 생각을 하도록 이끌어가는 시를 읽었다. 오랜만에 속이 확 트이는 느낌이다. 조오현의 시집을 펼쳐들면 가장 먼저 나오는 시가 <아득한 성자>. 하루살이와 인간을 비교하며 하루살이의 생각에서 인간을 본다. 가장 먼저 나오는 시인데 처음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득한 성자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조오현의 시에는 여운이 있다. 선문답 같기도 하고, 마음속에 생각할 공간을 제공해준다. 이 안에 인간이 있고, 자연의 법칙이 담겨 있고, 우주가 내포되어 있다.

오늘 아침 화곡동 미화원/ 김씨가 찾아와서/쇠똥구리 한 마리가/지구를 움직이는 것을 보았느냐고 묻는다//나뭇잎 다 떨어져서/춥고 배고프다 했다 (어간대청의 문답)

해장사 해장스님께/산일 안부를 물었더니//어제는 서별당 연못에/들오리 놀다 가고//오늘은 산수유 그림자만/잠겨 있다, 하십니다 (들오리와 그림자)

서울 인사동 사거리/한 그루 키 큰 무영수//뿌리는 밤하늘로/가지들은 땅으로 뻗었다//오로지 떡잎 하나로/우주를 다 덮고 있다 (된바람의 말)

 

겨울을 앞두고 있다. 이미 겨울이 와 있는지도 모른다. 정지용문학상 심사평을 한 김남조 시인의 말에 의하면 그의 작품 성향은 관조와 달관 쪽에 기울고 있다. 칠순의 중간쯤 연령의 시인이 읊은 시에는 그래서 마무리의 느낌이 강렬하게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꾸밈과 가식의 언어는 걸러지고 알멩이만 남아서 강하게 이끌어간다. 오히려 그것이 시에서 희망을 보게 되는 첫 걸음이 되었다. 겨울에 읽기 좋은 시집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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