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기 좋은 날 - 제136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아오야마 나나에 지음, 이영미 옮김 / 예문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일상이 단조롭고 지루하다고 느낄 때에 소설 속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보통의 소설에서는 기승전결의 구조, 특별한 사건, 매력적인 주인공이 어려운 현실을 극복해내는 장면을 보게 된다. 대부분의 소설은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인 삶과는 다른 느낌으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이 책 『혼자 있기 좋은 날』은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특별할 것 없이 너무 평범하고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담아냈는데, 그것이 눈길을 끈다. 섬세하게 담아낸 일상에서 주인공 지즈의 세밀한 심리를 잘 표현하며 독자를 이끌고 간다.

 

이 책은 아오야마 나나에의 장편소설이다. 제136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다. 1983년 사이타마 출생인 저자는 여러 차례의 수상 경력이 있는데, 2007년 수상 당시 만 23세였다. 첫장을 열면 아쿠타가와상 심사평을 볼 수 있는데, 일단 소설을 먼저 읽고 평을 나중에 읽어보기를 권한다. 소설에 대해 선입견을 가질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심사평이 아오야마 나나에가 쓴 이 소설을 잘 표현해냈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 생명경시, 빈곤, 거대 사상의 소멸 등의 풍조는 인간을 소외시키고 유대를 빼앗고, 개개인을 미약한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특히 대도시에서의 삶은 더욱 그렇다. 이 작품은 그런 도시에서 살아가는 젊은 여성의 허무감에 깃든 고독을 결코 심각하지 않게, 어디까지나 가볍게 그리고 있다. _이시하라 신타로(소설가,정치가)

-일상 속에서 양질의 감각장치를 펼쳐야만 포착할 수 있는 것들을 자연스레 다뤄 실력을 증명한다. 사계절을 따라 변화를 그리는 수법 등이 설명적이지 않고, 주인공의 외로움을 충분히 전달한다. _다카기 노부코(소설가)

 

<혼자 있기 좋은 날>은 스무 살 지즈가 도쿄에 사는 먼 친척 할머니 긴코의 집에 들어와 일년을 보내는 일상의 이야기다. 차례에도 보면 봄, 여름, 가을, 겨울, 봄의 문턱으로 계절의 순환이 일어난다. 시간은 흘러 가지만 일상은 변한 듯 변하지 않은 듯 하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하루 이틀 단기간의 삶에서는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데에 바쁘지만, 일 년, 십 년의 시간이 흐르고 보면 지금의 나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드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을 읽으니 조미료와 향신료 가득 든 자극적인 음식만 먹다가 평범한 집밥에 감동하는 느낌이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 혹은 주변 사람의 이야기처럼 현실감이 느껴진다. 외롭긴 하지만 딱히 절대고독으로 몸부림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혼자 있는 것이 정말 좋다고 예찬하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혼자 있기 좋은 날'이라는 제목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 곁에 있으면 좋겠지만 지즈는 잡지도 매달리지도 않는다. 외롭다고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을 잡으려는 의욕조차 없는 상태다.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언제쯤이면 혼자가 아닐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화들짝 놀랐다. 나는 혼자인 게 싫은 걸까. 혼자라서 싫은 건 어른스럽지 못한 감정이라며 부끄럽게 여겼었는데. (129쪽)

 

이 소설은 어느 한 부분만 읽어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지즈의 봄,여름,가을,겨울을 다 훑어보며 그녀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순간, 이 소설은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반 세기의 시차를 두고 살아가는 지즈와 긴코 사이에서 주고받는 대화에서 어느 순간 화두처럼 내 마음을 휘어감는 의미를 발견한다.

"할머니, 세상 밖은 험난하겠죠? 나 같은 건 금세 뒤처지고 말겠죠?"

"세상에 안이고 밖이고 하는 건 없어. 이 세상은 하나뿐이야." 긴코 씨가 딱 잘라 말했다.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는 긴코 씨를 나는 처음 보았다. 그 말을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곱씹자, 내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무력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169쪽)

 

이 책을 읽으며 별 다를 것 없다고 생각되는 일상에서 인식하게 되는 사소한 의미같은 것을 발견해본다. 작가의 세밀한 관찰력으로 단조로운 일상에 의미를 지어준다. 양갱을 잘라 먹으며, 누군가와 헤어지거나 멀어지며, 그냥 스쳐지나가버린 일상이 모두 소설의 소재가 될 수 있고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과도로 양갱을 잘랐다. 반달 모양 어묵처럼 얄팍하고 가지런하게. 문득 마음이 가벼워졌다. 무슨 일이든 이렇게 조용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여운 따윈 없이 매듭지을 수 있으면 얼마나 편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5쪽)

그때는 참 많이도 울었어. 세상이 다 싫어져서 평생 동안의 미움을 그때 다 써 버린 기분이었지. (56쪽_긴코 할머니의 '평생 잊히지 않는 사람' 이야기)

후지타는 전화를 해도 문자를 보내도 냉담했고, 나는 그의 세계에서 차츰 제외되어 가는 듯했다. (125쪽)

 

<혼자 있기 좋은 날>은 빨려들어가며 읽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젖어들며 동일시되는 느낌이다. 이 책에는 <혼자 있기 좋은 날>과 <출발>이라는 두 편의 소설이 담겨 있는데, <혼자 있기 좋은 날>을 다 읽은 후에는 시차를 두고 좀 쉬었다가 <출발>을 읽기를 권한다. 한 박자 쉬었다가 읽어야 머릿속에 그려지는 환경이 선명해진다. 소설 속 주인공이 건네는 이야기를 흘려듣지 않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잔잔하고 담백하게 읽으며 주변을 둘러보게 되는 소설이었다. 일본의 젊은이와 우리 나라의 젊은이, 사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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