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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황현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0월
평점 :
중학교에 다닐 때에 이 책을 처음 접했다. 우리 반 반장이었던 아이가 길들인다는 것에 대하여 읽어주면서 반 아이들은 『어린 왕자』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책을 잘 안 읽는 학생이었지만, 어린왕자 만큼은 다른 부분도 궁금해져서 찾아 읽게 되었다. 어른이 되고 보니 그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 왕자를 읽은 적이 있다. 어른이 되어서 읽은 책은 그 느낌이 달랐다. 어렸을 때에는 책에 그려진 어른들의 세계가 정말일까 의구심을 가졌었는데, 어른이 된 후에 읽어보니 내용이 확 와닿았다. 그 이후 몇 년이 흘렀고, 이번에 열린책들에서 출판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다시 한 번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은 황현산. 얼마 전 읽은 『밤이 선생이다』의 저자였다. 불어불문과를 졸업하고 기욤 아폴리네르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기욤 아폴리네르의 역서뿐만 아니라 샤를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스테판 말라르메의 『시집』등의 역서가 있다. 현재 한국에는 1백여 종이 넘는『어린 왕자』가 출간되어 있는데, 이 책을 네 번 고쳐 번역하면서 한국어 결정판『어린 왕자』를 상재하겠다는 생각을 내내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번역에 결정판 같은 것은 없다고도 생각했고, 어른의 언어로 어린이의 세계를 건너가기 어렵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이 번역은 때때로 <엄숙하게> 말할 줄 아는 어린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다시 읽은 어린 왕자는 나에게 어른들의 세계에 대해 돌아보도록 하고 있다. 왜 그렇게 바쁘게 살고, 왜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매달리고, 왜 그렇게 숫자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것인가. 겉으로 보이는 것만 바라보며 통찰의 힘이 부족한 채로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일깨워준다. 잊고 있던 무언가를 되살려준다. 나에게도 있던 것이지만 기억에서 당연한 듯 사라져버린 동심을 흔들어 깨운다. 그 점이 이 책의 힘이고, 지금껏 어린 왕자가 읽히고 있는 당연한 이유일 것이다.
<내가 여기 보고 있는 것은 껍질에 지나지 않아.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97쪽)
예전에는 이 문장에 대해 과소평가 했었다.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이번에 읽을 때에는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같은 책을 또다시 읽어야하는 이유가 미처 건져내지 못한 보물을 낚아채는 것이다. 그때는 알아보지 못한 소중한 의미를 마음에 새겨넣는 작업일 것이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대화할 수 있는 장이 펼쳐진다. 예전보다 조금은 더 살아온 지금의 내가 세상을 보는 시각이 한 뼘 더 성숙한 것이다.
이번에는 아침마다 이 책을 낭독하며 읽었다. 느낌이 다르다. 묵독하는 것과 또 다르게 소리내어 읽으니 강하게 다가온다. 눈으로 흘려보냈던 것들이 소리로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다. 나의 아침은 한동안 이 책으로 열렸고, 소리내어 읽기를 잘 한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번역도 매끄럽게 잘 되어서 막히는 데가 없으며 술술 읽을 수 있었다. 예전 번역본이 딱히 부족한 것은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었지만, 언어를 잊고 내용에 몰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물론 원작이 워낙 마음에 들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책장에 꽂아두고 내년쯤 다시 꺼내들어 천천히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