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32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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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TV프로그램 '비밀독서단'에서 '사랑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책'으로 소개된 시집이다. 평소에 시집을 즐겨읽지 않아서일까. 방송에서 접한 이 시집은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가을을 맞이하여 시집을 읽겠다며 선택한 책 중 한 권이다. 방송 직후여서인지 사람들이 많이 찾아서 품절상태였고, 주문한지 좀 지나서야 이 책을 받아볼 수 있었다. 누구든 시심이 마음에 불타고 있는데 누군가가 불지펴준다면 읽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타당한 소개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냥 선택하기에는 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제목과 표지였지만, 방송에서 예지원씨가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주는 싯귀에 작가의 다른 시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제목부터 서정성의 극치를 달리는 이 시집은 가을이기에 충분히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도 이 시집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벤치에서도 먹고 버스정류장에서도 먹었다. 그래도 방안에서 우두커니 앉아서 조용히 목소리를 내어 읽는 것이 가장 맛있었다. 이 시를 맛있게 지어 먹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방송에서 이미 접해서 알고 있던 시가 가장 많이 다가왔다. 또한 상황이 그려지는 <눈썹>이라는 시가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 많은 엄마들이 눈섭 문신을 하던 모습을 얼핏 떠올린다. 유행이라는 것은 나중에 볼 때 낯설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눈썹

-1987년


엄마는 한동안

머리에 수건을

뒤집어쓰고 다녔다


빛이 잘 안 드는 날에도

이마까지 수건으로

꽁꽁 싸매었다


봄날 아침

일찍 수색에 나가

목욕도 오래 하고


화교 주방장이

새로 왔다는 반점에서

우동을 한 그릇 먹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우연히 들른 미용실에서

눈썹 문신을 한 것이 탈이었다


아버지는 그날 저녁

엄마가 이마에 지리산을 그리고 왔다며

밥상을 엎으셨다


어린 누나와 내가

노루처럼

방방 뛰어다녔다


방송에서 말한 것처럼 마지막 연의 내용이 없다면 살벌한 분위기로만 기억될텐데, 마지막에 '어린 누나와 내가 노루처럼 방방 뛰어다녔다'는 말이 붙어서 그 시절의 풍경 하나로 그려진다. 우습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한 상황이다. 그때 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후회했을까, 속상했을까. 


시집 속의 시가 모두 가슴을 울리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시인의 시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 몇 편이 강하게 마음을 흔드는 것만으로도 시집은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가을이기에 시를 읽는 맛이 더 깊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가을이 지나가기 전에 좀더 다양한 시집을 접하고 싶다. 다양한 매체로 읽을만한 시집을 알려주기를 바라는 것이 시를 잘 모르는 일반인으로서 바라는 바이다. 휴대하기 좋고 읽는 데에 부담이 없으며 가끔씩 공감할 만한 시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시집은 좋다. 시 읽기 좋은 가을날이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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