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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쓴다는 것 - 일상과 우주와 더불어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조영렬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시를 쓰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를 쓴다는 것'이라는 제목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게다가 이 책의 부제 '일상과 우주와 더불어'라는 것을 보고 무언가 대단한 것을 기대하게 되었다. 두툼하면서도 읽어나가면서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내면의 시를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리라는 거창한 생각을 나도모르게 했나보다.
우리가 시를 모른다면 행복하지 않을 것이고
그가 시를 쓰지 않았다면
이 우주에서의 행복을 방해받았을 것이다_이병률(시인)
띠지에 있는 추천사까지 내 마음을 끌지 않은 것은 없었다. 막상 이 책이 시를 쓰는 법이 아니라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의 인터뷰를 담은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니카와 슌타로는 1931년 도쿄생인 시인이다. 1950년 『문학계』에 시를 발표했고, 1952년 시집 『20억 광년의 고독』을 출간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시작 외에 그림책, 에세이, 번역, 각본, 작사 등으로 폭넓게 작품을 발표했고, 수상 내역도 화려하다. 근년에는 장남 겐사쿠 씨와 함께 연주와 낭독 콘서트를 열고 있고, 인터넷에서 시를 낚는 아이폰 어플 '다니카와', 시를 독자에게 매달 우편으로 보내는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 메일' 등으로 시의 가능성을 넓히는 새로운 시도에 도전하고 있다.
이 책은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와의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터뷰 글을 보며 다니카와의 시세계를 짐작해볼 수 있다. 열일곱 살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어느덧 60년이 넘었고, 젊은 시절 사진이나 이혼 경험 등의 사생활도 볼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그의 시 세계를 접하게 된 점이 상당히 아쉬웠다. 좀더 익숙한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낯선 느낌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고, 번역으로만 접할 수 있는 그의 시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지 않았다는 점도 아쉬웠다.
그래도 그가 말하는 '시가 태어나는 순간 '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게 보았다. "원고 의뢰를 받으면 시가 금방 샘솟듯이 솟아나는 건가요?"라는 질문에 "샘솟듯이(웃음)......샘솟듯이 솟아나지는 않습니다만......실은 '내 안에 언어가 있다', 언제부턴가 그런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라는 솔직한 답변을 보게 된다. 자신의 안에 있는 언어가 매우 빈약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어휘도 얼마 안 되고 경험도 적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바깥에 있는 일본어를 생각하면 그것은 참 거대하고 엄청나게 풍부한 세계로구나 싶었다고 한다.
'모든 일본어의 총체'라는 걸 떠올리면 참으로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풍부하고 거대한 세계지요. 거기에서 말을 길어올리면 되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한 겁니다.(42쪽)
뭔가를 쓰려고 할 때는 가능한 한 제 자신을 텅 비우려고 합니다. 텅 비우면 말이 들어옵니다. 그러지 않고 내 안에 말이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판에 박은 표현으로 끌려가버리지만, 가능한 한 텅 비우면 생각지도 못한 말이 들어온다, 그런 느낌입니다. 호흡법과 닮은 데가 있는 듯합니다, 아마도. (45쪽)
마감 한 달 전에 원고가 완성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하고, 그 다음에 마감 직전까지 퇴고를 거듭하며 수정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마감 직전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서 곤란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그 점이 아니카와 슌타로에게서 보게 된 부지런한 시인의 모습이었다. 일흔여덟이라는 나이의 시인인 그는 이렇게 말한다.'저에게는 특별히 '젊게 살고 싶다'든지 그런 생각이 없는데도 왠지 나이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는 기분이 아주 강하게 듭니다.(132쪽)' 생애의 거의 대부분을 시와 함께 한 일본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의 인터뷰를 통해 시와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