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떨어진 주소록
팀 라드퍼드 지음, 김학영 옮김 / 샘터사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우리 삶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 대부분은 바로 눈앞에 펼쳐진 것들만 바라보며 아등바등 살아가게 된다. 가끔 보다 멀리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여행을 떠날 때이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바라보면 삶의 무게나 걱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좀더 범위를 넓혀 우주적인 시점으로 본다면 어떨까. 책을 통해 다른 관점으로 현실의 나를 바라보고자 이 책 『우주에서 떨어진 주소록』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너무도 익숙해서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던 질문, '나는 어디에 있을까?'에 대해 미시적인 시각에서부터 거시적으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팀 라드퍼드. 처녀자리 초은하단, 국부 은하군, 은하수은하, 태양계, 지구라는 행성의 북반구, 유럽, 영국의 잉글랜드 지역, 서식스 주, 헤이스팅스 마을의 웨스트 힐에 위치한 18세기 주택에 거주한다고 적혀있다. 편지봉투에 주소를 적을 때 보면 좀더 넓은 부분은 당연히 잘려있는데, 이렇게 보니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 중 지구라는 별에 함께 살고 있는 같은 부류의 생명체라는 생각이 들어 반갑다. 팀 라드퍼드는 《가디언》에서 예술, 문학, 과학 분야 편집자로 32년간 근무했고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영국 과학저술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재해 감소를 위한 국제협력기구의 영국 위원회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 책의 '차례'를 보면 번지와 거리에서 시작하여 마을, 주, 지역, 국가, 대륙, 반구, 행성, 태양계, 은하, 우주로 시각이 점차 넓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책의 내용도 마찬가지로 미시적인 관점에서 거시적으로 흘러간다. 어렸을 때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해서 장소에 대한 고찰을 통해 독자들을 동참하게 한다. 물론 처음부터 공감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같이 공유한 장소가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그만의 장소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만의 장소를 다시 돌아보고 생각하도록 해준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과 자라온 환경, 공간에 대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정리하게 될 것이다.

 

어찌보면 전혀 다른 나라의 사람인 저자와 교차점이 없을 듯한 느낌도 들지만, 크게 보면 우리는 같은 행성에 살고 있고, 같은 은하계에 발붙이고 있으니 이 책을 읽으면서 점점 교집합을 찾아가게 된다. 앞부분을 읽으며 들었던 낯선 느낌이 점차 익숙함으로 뒤덮이며 이 책의 가치를 새로이 부각시키는 것이다. 그동안 생각지 못했던 '공간'에 대한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안경이 되어주는 책이다.

우리는 차용 기간이 제한된 가건물에 살고 있다. 이 건물은 짓는 데 1억년 이상이 걸렸고, 앞으로 수십억 년 후면 부모별의 열기로 바삭하게 구워져서 파괴될 운명이다. (263쪽)

안드로메다는 우리의 과거 속에서도 구름 같은 존재였듯, 우리의 미래에도 구름을 드리운다. 안드로메다는 우리에게 가까운 이웃이 있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항변하고 있었다. (335쪽)

가장 최근에는 밤하늘에 빛나는 무수한 빛들이 실은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추측도 제기되었다. 살아 있는 별들과 죽은 별들, 아직 형성되지 않은 별들의 구름, 오래전에 폭발한 별들의 먼지, 이것들 사이에는 또 다른 형태의 우주 건축 자재, 즉 신기하고 희박하면서도 탐지되지 않는 검은 물질이 존재하고, 이 물질이 은하의 5분의 4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357쪽)

 

이 책을 마지막까지 읽고나면 '감사의 말'이 눈에 들어온다. 한 사람의 눈에 비친 세상을 묘사한 글이라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한 심도있는 통찰을 하지 않고 눈앞에 닥친 일상속의 일을 처리하느라 하루 24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나자신에 대해 반성하게 된다.

이 글은 회고록이 아니다. 한 사람의 눈에 비친 세상을 묘사한 글이다. 비록 수대에 걸친 과학적 연구들을 바탕으로 쓰긴 했으나, 과학책을 쓰려는 의도는 없었다. 주소의 본질에 대한 책이기 때문에, 이 공간을 나와 공유하고 나와 더불어 가족을 이루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큰 신세를 졌다. 더욱이 작은 방에서 시작해서 우주에서 끝나는 이 작은 주소 책이 완성되기까지는 실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398쪽)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 대한 생각부터 정립해야겠다고 느꼈다. '내가 누군지 알려면 먼저 내가 어디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이 책의 메시지에 귀기울여보는 시간이다. 이 책이 내가 있는 공간에 대해 눈뜨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하늘에서 바라본 지구' 풍경 사진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경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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