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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독특한 제목 때문이었을까, 에쿠니 가오리의 최신작이어서였을까. 이 책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을 접한 순간 이번 추석연휴에 읽을 책으로 찜해놓았다. 그동안 읽었던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도쿄 타워』등을 보면 섬세한 감정을 잘 표현해놓은 것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들을 일상 속에서가 아니라 여행 중에 읽었다는 점이 나에게는 특이사항이다. 여행 중에는 너무 무겁거나 재미없는 소설을 읽게 되면 여행의 기분까지 망치게 된다. 하지만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여행 중 휴식 시간에 읽으면서 여행의 피로를 날려주었고 나에게 활력을 주었다. 소설 속의 캐릭터가 매력적이었고 그들의 섬세한 감성이 내 감성을 일깨웠다. 책과 나만 있는 순간, 책 속의 글들이 나에게 빨려들어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나에게 그런 기억을 선사했다. 여행지의 기억과 뒤섞여 자리잡고 있다. 적당히 얇은 두께와 약간은 감상적으로 변하는 여행지에서의 마음이 결합해서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 나의 감성을 부활시켰다.
추석 연휴를 맞이하여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을 들고 길을 나섰다. 사실 이 책은 함께 길을 나서기에는 두꺼운 분량이어서 처음에는 살짝 망설여졌다. 하지만 예전부터 계획한 일이니 그대로 실행하기로 했다. 결정적인 요인은 책 표지에 있는 글에 공감하게 되었기도 하고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줄 알았다.
지금껏 우리 가족 이외의 다른 가족들이 어떻게 사는지,
상상도 안 해봤다.
지은 지 70년 가까이 되는 서양식 대저택에 살고 있는 야나기시마 일가.
러시아인 할머니, 이모와 외삼촌까지 한집에 사는 대가족.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공부시키는 교육 방침.
게다가 아이 넷 가운데 둘은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다르다.
독특한 이 가족들에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3세대, 100년에 걸친 '언뜻 보면 행복한' 가족 이야기.
옮긴이의 말을 보면 이 소설에 대한 핵심적인 사항을 파악할 수 있다.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은 일본 여성 월간지 『슈프르SPUR』에 4년 넘게 연재되었던 글을 책으로 묶어낸 것이다. 600페이지에 가까운 장편소설로 1960년부터 2006년까지 3세대를 아우르는 야나기시마 일가의 인생이자 역사가 담겨 있다.
특이한 것은 각 장의 이야기가 시계열 순으로 전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령 1987년 여름에서 1960년 가을로, 1990년 초여름에서 1972년 5월로 시간과 계절을 넘나드는가 하면 화자 또한 매번 바뀐다. (582쪽)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스타일이 나에게는 여행지에서 먹혔기 때문에 일부러 휴일을 택해 일상에서 벗어나 읽게된 것이었는데, 이번 책은 그전과 다른 느낌을 주었다. 첫 째, 분량이 거창했기 때문에 주는 압박감이었다. 또한 화자가 자꾸 바뀌기에 소설 속에 몰입하게 되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소설 속 이야기를 읽어나가며 앞부분에 있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반복해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낯선 이름이 대량으로 나올 때에는 익숙해지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여전히 섬세한 묘사로 시선을 사로잡고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기에 끝까지 읽어나갈 수 있었다. 연도를 오가며 바뀌는 화자에게 적응하며 이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시간이다.
이 소설에 대한 감상은 분명 취향 차이다. 하지만 전체를 다 읽고 평가했으면 좋겠다. 앞부분만 읽다 말면 한 단면만 보다가 마는 것이지만, 계속 읽어나가다보면 어느 순간 야나기시마 일가의 삶이 큰 그림으로 그려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 아닌 듯한 외모의 책이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에쿠니 가오리의 필력이 느껴지는 책이다. 글을 이끌어나가는 필력이 돋보이고, 3세대를 아우르는 인생을 담았다는 점에서 커다란 시야를 제공해주는 소설이다. 재미있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