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해변
크로켓 존슨 글.그림, 김미나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짧은 글에 긴 여운을 남기는 글을 읽고 싶었다. 말 그대로 떠먹여주는 책이 아니라 나 스스로 생각하고 행간을 읽는 맛이 있는 책을 만나고자 했다. 어쩌면 이 책이 그런 역할을 해주리라 생각되었다. '상상력을 잃어버린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점에서 이 책이 끌렸다. 그런데 이 책, 묘하다. 정말 금세 읽을 수 있다. 뭐 이렇게 금세 끝나버리는지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책은 얇긴해도 얇기만한 책은 아니다. 단순한 스케치로 그려나갔지만 생각할수록 복잡하다. 세상을 담고 있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주만큼의 무게로 다가오기도 하고, 깃털 하나 만큼의 가벼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은 요즘에 나온 책이 아니다.

『마법의 해변』에는 크로켓 존슨의 모든 작품과 마찬가지로 신선하고 현대적인 템포와 절묘한 풍미가 담겨 있다. 그런데 이 세계의 진지하면서도 흥미로운 투영이었던 이 책은 시대를 너무나 앞서갔다. 그래서 출판사는 크로켓 존슨이 내민 원본을 그대로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모래 위의 성』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1965년 판에서는 그의 삽화를 볼 수가 없다. 이미 오래전에 부활하여 세상에 나왔어야 마땅한 그의 스케치들과 완성된 원고로 만들어진 원래 견본이 마침내 빛을 본다는 건 기적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리스 센닥 추천사 中)

 

옮긴이의 말도 눈에 띈다.

크로켓 존슨의 『마법의 해변』은 동화라기보다 어른들을 위한 한 편의 시詩와도 같다. 무릇 시라는 것은 행간을 읽고 은유를 곱씹는 것이 맛이다. 그런데 이 책이 딱 그렇다. 그 단순한 행간에 무수한 의미가 자리잡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맛은 그 행간을 나름대로 해석하는 재미이다. 그 여러 가지 가능성 중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것이 유년기를 벗어나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상상력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61쪽)

 

『마법의 해변』의 이야기는 앤과 벤이 해변 산책을 하며 시작된다. "우리가 진짜로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도 되면 좋겠어." 앤의 말에 벤은 대꾸한다. "이야기 속에서 진짜로 벌어지는 일은 아무 것도 없어. 이야기란 단어들을 늘어놓은 것일 뿐이야. 단어는 글자에 불과해. 글자들은 그저 기호의 일종이고." 그 다음에 해변에는 마법같은 일이 펼쳐진다. 벤이 모래 위에 '잼'이라고 쓰면 젖은 모래톱 가장자리에 잼이 가득 들어있는 은접시가 놓여있고, '빵'이라고 쓰면 두껍게 자른 신선한 빵이 가득 담긴 금쟁반이 나타난다. "이야기를 읽는 것보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편이 훨씬 재미있어."라는 앤의 말에 "그건 결말이 어떻게 되느냐에 달린 거지."라고 벤이 말한다.

 

나무, 사탕에 이어 벤은 모래 위에 '왕'이라고 썼다. 여기가 마법의 왕국이라면 당연히 왕이 있어야된다고 하면서. 어른인 왕이 나타나고 왕국이 완성되고 나니 왕은 늦지 않게 저기에 도착해야한다고 말한다. 빛나는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왕을 기다리고 있으니 왕좌에 가야 한다며. 왕은 급히 떠나고 아이들은 따라 간다고 급히 서둔다. 밀물이 들어와 모래톱은 사라지고 아이들은 쉬지 않고 달렸다.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어땠을까." 앤이 말했습니다.

"무슨 시간?" 벤이 말했습니다. "행복한 결말을 위한 시간 말이야." 앤이 말했습니다.

"파도가 너무 순식간에 들이닥쳤어." 벤이 말했습니다.

마지막 성탑마저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저 평화롭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봅니다. 갑자기 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녀가 외쳤습니다. "우리가 해변을 떠나던 순간 거기서 그냥 멈춘 것뿐이라고!" (책 속에서)

 

이 책의 이야기를 읽으며 독자는 이야기의 주인공을 꿈꾼다. 앤과 벤처럼 진짜로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던 시절도 겪었을 것이다. 다만 그 시절을 잊고 지내고 있는 것 뿐이다. 왜 그래야하는지도 모른채 바쁘게 달려가는 모습이 마법의 해변을 떠나는 앤과 벤의 모습과 닮아 있다. 마법의 해변에서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잊었던 것을 마법의 해변에서는 살려낼 수 있다. 진정으로 원하면 꿈은 현실이 되는 법, 살아있는 한 누구든 꿈꿀 수 있다. 잊고 있었을 뿐인 것이다. 엔딩은 해피엔딩으로, 행복한 결말을 맺을 시간은 충분하다. 그 사실을 깨달으며 꿈을 다시 그려본다. 이 책을 읽는 어른들은 시간이 좀 더 있다고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 그것은 우리가 삶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아이들을 위한 동화가 아니라 어른을 위한 동화, 특히 상상의 힘을 잃어버린 어른들이 읽으면 좋을 동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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