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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평점 :
워낙 유명해서 꼭 한 번 읽어보리라 결심했지만 지금껏 읽어보지 못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다음으로 미루다가 이번에 열린책들에서 새롭게 출간된 『앵무새 죽이기』를 읽어보기로 했다. 『앵무새 죽이기』는 40개 국어로 번역, 전 세계에서 4천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책이고, 현재까지도 미국에서는 매년 1백만 부 이상씩 팔리고 있는 스테디 베스트셀러이다. 1961년 퓰리처상 수상을 비롯하여, 1991년 미국 국회 도서관 선정 성경 다음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책> 1위, 1998년 미국 『라이브러리 저널』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 1위 등 화려한 수상과 유명세의 소설을 읽어보는 시간이었다.
이 책을 이제야 접했지만 오히려 지금 읽었기에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번역에 대한 글을 보고 나서였다.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는 국내에서 그동안 해적판으로 나돌다가 2003년 문예출판사가 미국의 하퍼 출판사로부터 번역 판권을 획득하면서 정식으로 출간되었고, 10년 넘게 처음 번역한 거의 그대로 시중에 유통되었으며, 한국어 번역 판권이 문예출판사에서 열린책들로 넘어가면서 거의 새로 번역하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어색하거나 부정확하다고 생각되는 어휘나 표현을 바로잡았고, 평어체 문장을 경어체 문장으로 바꿨으니, 새로 쓰여진 뜨끈뜨끈한 글을 읽는 듯한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가게 되었다.
이 소설은 6살 소녀 스카웃이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직전부터 초등학교 2학년까지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작가는 어른이 된 진 루이즈가 여섯 살에서 아홉 살이 되던 때 일어난 사건을 회상하는 수법을 구사한다. 앨라배마 주에 세운 가상의 마을 메이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지금의 독자가 읽어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읽다보면 그렇기때문에 지금껏 끊임없이 출간되고 있고, 그 명예를 지속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앵무새 죽이기』는 하퍼 리의 처녀작이자 대표작인데,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에 걸쳐 그토록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작가가 직접 겪은 체험과 그가 주위에서 목격한 사건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자전적 색채가 짙고 작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삶의 경험이 오롯이 스며들어 소설 작품으로 승화된 것이다.
우리들에게 공기총을 사주셨을 때 아빠는 총 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으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잭 삼촌이 기본적인 사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삼촌 말씀에 따르면 아빠는 총에 관심이 없으시다는 거였지요. 어느 날 아빠가 젬 오빠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난 네가 뒷마당에 나가 깡통이나 쏘았으면 좋겠구나. 하지만 새들도 쏘게 되겠지. 맞힐 수만 있다면 쏘고 싶은 만큼 어치새를 모두 쏘아도 된다. 하지만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된다는 점을 기억해라.」
어떤 것을 하면 죄가 된다고 아빠가 말씀하시는 걸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디 아줌마에게 여쭤봤습니다.
「너희 아빠 말씀이 옳아.」아줌마가 말씀하셨습니다.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 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뭘 따 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 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174쪽)
이 부분을 보면 다소 쌩뚱맞은 제목인『앵무새 죽이기』라는 제목과의 연관점을 찾을 수 있다. 천천히 읊조리며 음미하게 된다. 앵무새가 단순히 앵무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때 이 책이 나를 뒤흔들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의 묘미는 두 번째 읽을 때에 있었다. 처음에는 유명하지만 생각보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꼈는데,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처음으로 다시 가서 읽게 되었다. 두 번째 들여다보니 그제야 그 안에 숨은 행간이 보인다. 아무렇지도 않게 보면 그저 흘려읽을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의미를 파악하게 되고 놀라움에 전율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 소설읽기라는 생각이 든다. 왜 이 책이 수많은 찬사를 받으며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지 알려면 한 번의 독서로는 안 될 수도 있다. 책장에 꽂아두고 또 한 번 독서를 하고 싶어지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