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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측 죄인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세상이 험악해지고 있다는 것은 신문지상에서 보게 되는 사건들이 나날이 포악하고 잔인해지는 것에서 볼 수 있다. 요즘들어 평소에 눈길이 가지 않던 사건들에 주목하게 된다. 살인사건의 진범이 아니면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나온 사람과 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유유히 개명까지 하고 살고 있는 진범의 이야기를 얼마전 알게 되었다. 공소시효가 끝나가고 있다는데 공소시효라는 법적인 테두리가 억울한 사람을 만들게 된다는 점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 이후에는 바로잡을 수도 없는 일이 될 것이다. 또한 얼마전에는 고3 친형을 살해한 고교생이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되어 논란이 일고 있다는 뉴스까지 보게 되자 내 마음이 요동친다. 이 판결이 적합한 것인가. 법은 과연 만인에게 평등한 것인가. 개개의 사건이 범죄의 무게에 맞게 판결을 받는 것인지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졌다.
이 책 『검찰 측 죄인』이 나의 시선을 사회문제로 끌어당겼고, 그에 대한 생각에 잠기도록 만들었다. 사회가 어수선해서 자꾸 관심에서 멀리했는데, 이번 기회에 소설 속 이야기를 매개로 우리 사회의 '법'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무엇보다 이들의 이야기를 지켜보며 우왕좌왕하는 나의 마음을 바라보며, 내가 생각하는 정의가 혼란스러워짐을 느끼게 된다.
공소시효 뒤에 숨은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은 가능한가?
구제불능의 악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은 정당한가?
법률이라는 검으로 퇴치할 수 없는 악은 없는가?
이 책에서 던지는 질문은 내내 내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내가 내리는 결론이 정답인 것은 아니기에 마음이 복잡해진다. 이런 기분은 뜬금없지만 판검사를 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사람의 일이라는 점에서 완벽한 판결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그렇고, 사건을 알았을 때 속으로 울분이 터지더라도 개인적인 정의감으로 처벌할 수는 없는 문제일테니 말이다.
이 책을 읽을 때에는 최소한의 정보만 가지고 읽어나가는 것이 좋다. 스토리를 따라가며 읽다보면 마음이 마구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검사 모가미에 격하게 공감하다가도 새내기 검사 오키노의 생각도 맞는 것 같고 우왕좌왕 휩쓸리면서 읽어나가게 된다. 궁금하다면 이 책의 줄거리는 책 뒷표지에 있는 정도만 알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문학평론가 고하라 히로시의 '법률 서스펜스의 새로운 이정표!'라는 추천만으로 믿고 읽어보기를 권한다.
잔인하게 살해당한 70대 노부부 사건을 조사하던 베테랑 검사 모가미는 용의자 목록을 보고 경악한다. 대학 시절에 자신이 무척이나 귀여워하던, 기숙사 관리인의 딸 유키 살해 사건에서 마지막까지 범인으로 지목됐던 마쓰쿠라의 이름을 발견한 것. 그러나 원통하게도 유키 사건의 공소시효는 이미 만료된 후였다. 지금에야말로 23년 전의 죄를 묻기로 굳게 결심한 모가미는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마쓰쿠라를 노부부 살해사건의 범인으로 몰아간다. 정의감 넘치는 검사 모가미를 존경해 검사를 지망한 새내기 검사 오키노는 모가미의 무리한 취조에 반기를 들고......(책뒷표지)
이 책을 읽는 것은 기나긴 여정이었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인데다가 주제도 가볍지 않아서 뒷골이 당기는 무게감을 느낀다. 읽으면서 울컥한다. 생각에 잠기기에 부담스러운 주제이기에 자꾸만 머뭇거렸다. 처음에는 모가미의 입장에서 이해하며 읽어나갔는데, 읽다보니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혼돈, 그 자체이다. 마음 속에서는 이미 시끄럽게 내 안의 내가 떠들어대고 소용돌이에 휘감기는 느낌이다. 오키노처럼 "우오오오오오오오!" 온몸의 힘을 쥐어짜내 울부짖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사회에 적용되는 법률은 명쾌한 해답을 가진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중재를 하는 것이기에 이렇게 책을 읽으며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불편하지만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었다.
이 책을 읽을 때의 내 마음은 카드 게임을 할 때 같았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잔혹한 사건들은 카드를 뒤섞으며 모든 것을 엎어버리는 듯했고, 법률의 잣대는 항상 좋은 패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패에 따라 결과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동네마다 게임의 규칙이 다르 듯 어떤 사건을 볼 때 그에 대한 대응도 달라진다. 그래서 모가미나 오키노처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내가 그 위치에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게 될지 생각해보게 된다. '정의의 윤곽마저 흐릿해진 세상에 파문을 던지는 뜨겁고 진한 검사 소설'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