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여행 리포트
아리카와 히로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을 읽을 때에 미리 스토리를 알고 읽는 것만큼 김빠지는 일은 없다. 스포일러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읽고 싶은 소설이 있으면 되도록이면 책 정보나 서평을 읽지 않는다. 그래야 소설의 감동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도 제목에 있는 '고양이'와 '여행'이라는 단어, 사랑스럽게 고양이를 안고 있는 표지 그림이 읽기 전에 내가 아는 정보의 전부였다. 고양이와 여행을 떠나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되었고, 고양이의 입장에서 이야기 전개가 되기에 흥미롭게 몰입하게 되었다.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라고 말씀하신 훌륭한 고양이가 이 나라에 있었다고 한다. 그 고양이가 얼마나 훌륭했는지 모르지만, 이름이 있다는 점 하나만은 내가 그 고양이를 이겼다고 본다. 물론 그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여부는 별개 문제다. 내 이름은 성별과 너무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6쪽)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첫 문장에 나오는 말을 시작으로 이 소설 속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차장에 서있는 은색 왜건 보닛 위에서 자는 것을 좋아하는 길고양이는 사토루가 주는 간식을 먹으며 지냈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감으로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사토루는 길고양이를 동물 병원으로 데리고 가고, 몸이 나을 때까지 그의 방에서 지내도록 해주었다. 다시 길고양이로 돌아가려는 찰나, 교통사고의 트라우마는 둘 사이를 이어주었다.

"너, 내 고양이가 될 거야?"

그래. 그렇지만 가끔 산책 정도는 같이 가자.

이렇게 나는 사토루의 고양이가 되었다. (17쪽)

 

사토루에게는 '하치'라는 고양이가 있었다. 얼굴에 얼룩이 여덟 팔자 모양이어서 이름이 하치였다. 이번에는 갈고리 방향이 하치하고 반대여서 위에서 보면 숫자 7로 보인다며 '나나'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엄연한 수고양이에게 여자 이름 같은 것이 마음에 들 리가 없잖아. 아니라고 야옹거리는데 "너도 마음에 들었어?" "역시 마음에 들었구나, 그렇구나."란다. 사토루는 고양이를 키울 수 있는 곳으로 이사도 가고, 그 이후 5년 동안 사이좋게 잘 지냈다. 나나는 고양이로서는 완전히 장년이 되었고, 사토루는 서른을 넘었다. 그 둘은 여행을 떠나야 할 이유가 생겼고, 사토루는 나나를 맡길 만한 곳을 찾아 길을 나섰다. 그렇게 그들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그렇게 둘은 여행을 떠났다. 고양이 나나를 맡길 만한 곳을 찾아다닌다. 하지만 나나를 맡기지 못하고 나오며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는 분위기다. 옛 친구를 찾아다니며 예전에 사토루에게 있었던 일들, 어린 시절의 친구와 관계된 이야기가 나온다. 적당히 웃음 코드도 있고, 첫사랑의 어긋남, 우정과 아픔도 느끼게 된다. 고양이의 몽글몽글한 촉감이 느껴지는 듯하다. 고양이의 심리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에 기분 좋게 그들이 길을 떠난 이야기를 읽다가 느닷없이 허를 찔리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아, 이 책이 이런 이야기였구나! 가슴이 답답해지고, 난데없이 눈물이 흘러나온다. 아무 생각 없이 집어먹던 과자가 어딘가 걸린 듯한 느낌이다.

 

다 읽고 나서 한동안 멍한 느낌이었다. 사실 어제 서평을 남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그대로 두 번째 독서가 시작되었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에 웃고 넘어갔던 부분이 다시 읽으니 죄다 마음을 긁어놓는다. 세상 일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무게감이 180도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옮긴이의 글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이 책 『고양이 여행 리포트』를 읽은 독자들이 입을 모아 하는 얘기가 "전철에서 읽지 마세요"다. 아, 정말 혼자 있을 때 읽기를 권한다. 나는 마침 외출하는 길에 책을 택배로 받아서 잘됐네 하고 들고 나가 지하철 안에서 읽다가, 아무 예고 없이 주루륵 흘러내린 눈물에 얼마나 당황했는지. 원서 표지에는 아무런 예고도 없었던 게 함정이다.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다. 처음에 읽을 때 울고, 번역하면서 울고, 교정 보면서 울고. 하여간 진이 빠지는 작업이었다. 눈물샘을 쥐어짜는 신파 스토리도 아닌데,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문장 한 줄에 시도 때도 없이 눈물샘이 풀어졌다. (321쪽)'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문장 한 줄에 눈물이 주루륵 흐른다. 어쩌면 그 사실을 알고 읽었다면 느낌이 또 달라졌을지 모른다. 어쨌든 그동안 주변 사람들이나 책 또는 영화같은 매체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의 심리만을 생각했었다면, 이 책을 계기로 반려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주인인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을 기억하고 보호하고 즐거움을 주는 모든 행동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의 삶이 누군가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일련의 과정이라면, 그 동반자가 사람이든 동물이든 모두에게 '함께 한다'는 기억이 남는 것이다. 그런 것이 '생'이리라. 이들을 지켜보는 독자의 입장에서 함께 웃고 울었던 시간을 꽤나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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