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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로의 행복한 비행
구이도 콘티 지음, 임희연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때로는 어른들에게도 동화같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동화 한 편을 읽고 나면 마음에 윤활유를 칠한 듯 포근해지는 느낌이다. 잊고 지내던 무언가를 떠올리기도 하고, 내 안의 소리를 듣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 책 속의 글과 그림을 보면서 마음을 정화시키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황새 닐로의 여행 이야기를 보며 인간의 삶과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석양이 벽돌 공장 굴뚝 위에 자리 잡은 둥지를 비추었다. 둥지 안에는 엄마 황새가 아기 황새를 바라보고 있다. 엄마 황새는 아기 황새에게 동방의 공주라는 뜻의 '닐로'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5쪽)
이 책에는 닐로의 탄생부터 생의 여정을 담아냈다. 자라나서 첫 날갯짓을 할 때의 두려움과 성취감, 무서움을 떨쳐보고 둥지를 떠나는 용기를 보게 된다. 좀더 강해진 닐로에게 엄마는 이젠 도시를 떠나야 할 때라고 한다. 닐로는 또래 황새들과 함게 있으니 즐거운 것은 사실이었으나, 혼자 조용히 있고 싶기도 하고, 태어나서 지금껏 지내온 편안하고 아늑한 둥지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 울적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더욱 더 먼 길을 떠나야 했다.
"근데, 우린 언제 출발해요, 내일요? 어떻게 길을 안 잃어버리고 가죠? 만약에 길을 잃으면 어떻게 다시 찾아가죠?"
"네 가슴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들어보렴. 그것이 너를 항상 자연스럽게 이끌어줄거야. 두고 보렴." 닐로가 계속 궁금해하자 엄마 황새가 대답했다.
닐로는 낯선 세상을 향해 날아갈 힘이 마구 솟구쳐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두려움보다 훨씬 더 강했다. 황새 닐로의 아프리카 비행 여정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여행길에서 머리깃털이 선 황새 '미안'을 만났다. 그곳은 닐로의 엄마가 자신의 짝을 만났던 곳이고, 그때와 똑같은 순간이 지금 반복되고 있는 것이었다. 미안은 남쪽 나라에 도착하면 닐로와 함께 둥지를 짓고 싶다고 용기내어 말을 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겨 서로 떨어지게 되더라도 다시 만날 수 있는 운명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시련이 닥쳐왔다. 폭풍우가 지나간 숲, 닐로는 길을 잃고 무리에서 떨어져나왔다. 엄마와 미안을 찾아 외롭고도 힘든 여정이 시작된다. 하지만 그 길은 혼자만의 외로운 투쟁이 아니었다. 중간중간 만나게 되는 길동무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시련이 눈앞에 닥치기도 했다. 말로만 듣던 아프리카 동물들을 직접 만나보기도 하고, 위험천만한 모험이 펼쳐지기도 했다. 닐로는 엄마와 미안을 만나게 될까? 이들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궁금한 생각에 끝까지 책장을 손에서 떼어놓을 수 없었다.
이 한 권의 동화 속에는 우리의 삶이 들어있다. 황새의 기나긴 여정을 보며 인간 삶의 모습을 보게 된다. 평탄하지만은 않더라도 다양한 경험이 우리를 성장하게 만든다. 평온한 듯 하다가도 폭풍이 몰아치기도 하고, 이제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좌절하기에 앞서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기도 한다. 운명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게 되기도 하고, 큰 틀에서 보면 삶의 모습은 반복되며 이땅을 채우고 있다. 황새의 이야기를 보며 우리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기린이 이야기하는 '마음의 소리 듣는 법'은 인간 세상의 현재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마음의 소리를 듣는 법을 잊고 살았던 것을 떠올리게 된다. 잠깐 멈추어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마음의 소리를 듣는 법에 대해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나 보구나. 아주 간단하면서도 어렵지! 귀 기울여 듣는 게 생각보다 어렵단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 실패하지. 특히 사람들은 더 못 듣지."
기린은 계속 잎사귀를 따먹으며 되새김질을 했다.
"사람들은 이 선물을 완전히 잊어버렸어. 시끄러운 도시에 살기 시작하면서 이런 조용한 생활을 못 견디게 되었지. 그들의 영혼은 생각이 아닌 소음으로 가득 차 있어. 감정이란 고요한 영혼 속에서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법인데,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말도 안 되는 일들을 하지. 밤낮으로 미친 듯이 일하고 틈만 나면 싸워. 갈매기들이 사는 해안가를 쓰레기 더미로 만들어버리질 않나, 이제는 우리가 사는 숲까지 파괴하고 있어. 그들은 마음이 주는 선물을 잃어버린거야. 그렇게 방향을 잃고 살아가다가 결국엔 인생의 막다른 길목에서 허무하게 죽어가지. 그깟 종이 쪼가리 돈이 뭐라고 목숨 걸고 달려드는 걸 보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어. 사람들은 참 어리석어. 키가 커서 내 눈엔 다 보인다고." (181쪽)
이 책의 글과 그림은 구이도 콘티의 작품이다. 강한 터치로 역동적인 힘을 느끼게 하면서 동물들을 생동감 있게 잘 그려내고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와도 어우러져 이야기에 힘을 실어준다. 그림이 글을 전달하는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느낌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정신없이 하루하루 시간만 가고 있다고 느낄 때, 삭막해진 현실에서 따뜻한 동화를 읽으며 감수성을 채워주고 싶을 때, 이 책 속의 글과 그림을 보며 잠깐 마음의 쉼표를 찍고 내면의 소리를 듣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