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타이완을 만났다 - 삶이 깊어지는 이지상의 인문여행기
이지상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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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이지상 작가의 책 중에 『언제나 여행처럼』『슬픈 인도』『나는 지금부터 행복해질 것이다』『여행자의 유혹』을 읽어보았다. 타이완 여행에 대한 글을 썼다는 것을 알고는 왠지 오지 여행과 어울릴 듯한 느낌에 '타이완'이라는 여행지와 저자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나는 지금부터 행복해질 것이다』를 읽으며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이지상 작가에게 타이완은 첫 여행지이고,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가로 살게 된 첫 단추였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애틋하고 마음에 와닿는 글귀가 많았다.

 

이 책 『그때, 타이완을 만났다』는 여행작가 이지상이 2011년 출간한 타이완 여행에세이집의 개정증보판이다. 저자에게 타이완은 첫 해외 여행지였다. 20여 년 전인 1988년 8월, 직장에서 휴가를 얻어 8박 9일 동안 여행을 다녀왔고, 그것은 인생을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길 위의 여행자는 한 곳에 정착하기 힘들다. 마음은 붕붕 떠다니며 또다시 여행을 꿈꾸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도 결국 두 달 만에 사표를 내고 배낭을 멨다고 한다. 여행 작가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첫 여행지이기 때문에 애틋한 그곳을, 그동안 다시 방문하며 여러 느낌을 집약해서 이 책에 쏟아부었을 것이다. 그 마음이 온전히 느껴져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으로 첫여행에 대한 여행 기억을 떠올려본다. 나에게도 첫 여행지에 대한 기억은 남다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그럴 것이다. 첫여행지는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다시 그곳으로 여행을 하더라도 처음의 그 느낌이 아니어서 약간은 실망하고 마는 곳, 그렇지만 또다시 그곳에 갈 수밖에 없는 그런 곳이다.

첫 여행지는 첫사랑과도 같다. 비 내리던 축축한 런던, 매연에 휩싸인 방콕, 소똥이 즐비한 뉴델리의 뒷골목, 무더위와 먼지에 휩싸인 카이로의 광장조차, 그곳이 첫 여행지라면 언제나 가슴 설레는 성소(聖所)가 된다. 그곳에서 근원을 알 수 없는 노스탤지어를 느끼기 때문이다. (29쪽)

저자에게 타이베이는 언제나 '첫 여행'으로 돌아가는 통로라고 이야기한다. 나에게 첫 여행지는 타이베이가 될 뻔했지만, 갑자기 방향을 틀어 인도로 향하게 되었고, 그것은 내가 꼽는 여행지를 뒤바꿀만한 위력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그때 만약 타이베이를 첫 여행지로 가보게 되었다면, 나또한 저자처럼 아련한 첫 여행지의 기억으로 타이베이를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영원한 '끄기off'가 아닌 잠깐의 정지. 타이완 여행은 빠르게 달리는 '삶이라는 열차'에서 잠시 내려 따스한 햇볕을 쬐고, 맛있는 것도 사 먹으며 몸을 푸는 시간과도 같았다. (26쪽)

이 책을 통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 당시의 그곳을 떠올리게 되었다. 타이완 여행은 잠깐의 정지같은 여행이었다. 슬슬 거닐며 에너지를 회복하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렇기에 저자의 이야기에 눈을 크게 뜨며 여행의 시간을 되짚어본다. 지금 그곳에 다시 간다면 어떤 느낌일까? 공감가는 것이 많아질수록 생각도 많아진다.

 

타이완에서 간 곳 중에 가장 그곳의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었으면서도 그렇게까지 유명할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주펀'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거리가 많아서가 아니라 그 시간, 분위기 속에서 느끼게 되는 잃어버렸던 옛날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 때문에. (261쪽)

그곳에 갔을 때에는 생각보다 별로라고 느꼈지만, 지나고보니 다시 그곳을 여행하면 주펀에는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그 시간과 분위기 속에서 느릿느릿 정지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 여행 기억의 조각과 맞물리는 지점에서 특히 공감하게 되고, 잊혀진 듯한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를 때 환희에 젖게 된다.

 

단순히 여행지에 대한 정보와 감상만 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큰 틀에서 우리네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점도 이 책을 읽는 의미가 된다.

모든 인간은 갑작스럽게 세상에 던져져 정신없이 살다 간다.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고통과 슬픔과 불안 속에서 살다가 마침내 세상을 뜬다. 얼핏 보면 인생은 절망적으로 보이지만 우리 자신을 생의 순환 속에서 활동하는 '에너지의 흐름'으로 본다면 누구나 우주의 신비에 참여하는 즐거운 승리자가 된다. (306쪽)

살아있어서, 여행을 하게 되고, 또다른 여행을 꿈꾸게 되는 그런 시간이다. 약간 움츠러들었던 나의 마음이 기지개를 켜는 듯하다. 그렇게 생각하고보니 에필로그에 담긴 저자의 말이 꼭 나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나에게도 타이완을 만날 때가 온 것인가?

"삶이 힘들다고 느껴지는 분들, 낯선 땅을 헤쳐 가는 여행이 두렵거나 귀찮아진 분들이라면 타이완에 한번 가 보세요. 거창한 것 기대하지 말고 이웃집 마실 가듯 가 보세요. 잘 먹고, 잘 쉬고, 잘 놀다 보면 문득 '이게 행복이구나.'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겁니다. 단, 겸손하고 느긋한 여행자가 되어."(3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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