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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닌 시간, 홋카이도 ㅣ In the Blue 17
문지혁 글.사진 / 쉼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그림과 사진으로 마음을 채워주는 책, 번짐 시리즈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 내 코드에 맞는 책이다. 가본 곳에 대해서는 그리움의 향수가 생기며 멈춰서서 바라보게 되고, 아직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해서는 언젠가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도록 만드는 책이다. 그림으로 그려진 표지가 눈길을 사로잡고,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이번에는 홋카이도를 담았다. 그곳에 가본 적은 없지만 책을 통해 마음을 물들이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여행지의 분위기를 그림과 사진으로 느껴보고 싶은 때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을 흔들어줄 감상적인 여행 책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이 책 『혼자가 아닌 시간 홋카이도』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문지혁. '누군가 여행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망설일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훌쩍 떠나는 상상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이라는 소개가 인상적이다. 흐릿한 사진과 서툰 여행의 아름다움을 믿는다는 그의 생각은 책을 보며 느끼게 되는 솔직담백하고 투박한 정서로 나타난다. 그를 따라 서툰 여행객이 되어 느릿느릿 여행지를 살펴보는 시간이 된다. 바삐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보고자 서두르는 여행객이 아니다. 한두 가지 덜 보아도 되고, 천천히 내 마음을 끌어내는 여행을 하게 된다. 마음에 머무는 무언가를 강조하며 여행이 진행된다.
'마음 속에 풍경 하나쯤 그리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프롤로그 中)
저자에게 그런 곳은 홋카이도라고 이야기하며 이 책을 시작한다. 가본 적이 없는 곳이어도 상관없다. 이 책을 통해 충분히 간접적으로 여행을 상상하는 시간이 될 테니까. 오타루OTARU, 삿포로SAPPORO, 하코다테HAKODATE 이 세 곳을 이 책을 보며 여행하는 기분으로 읽어보게 된다.
운하의 도시 오타루. 그곳에서 그는 그림을 그리는 초로의 사내를 만난다.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혹시 원본인지를 물었더니, 웃으며 고개를 흔드는 사람, 제법 '화가같은' 포즈를 취해준 그 사람을 사진에 담았다. 천천히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 오타루를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 느낌이다. 오르골당 앞에 서 있는 커다란 증기 시계도 보고, 영화 <러브레터>의 기억도 더듬어본다. 어떤 사진은 마음으로 먼저 찍힌다는 말을 보며, 나에게 마음으로 먼저 찍힌 사진이 무엇이었던가 생각해본다.
붉은 별이 빛나는 계획도시, 삿포로. 바쁘고 분주한 장년의 이미지인 그곳에서는 할 것도, 볼 것도, 먹을 것도 많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떠날 때면 늘 놓친 것들이 생각나 아쉬워지는 도시. 여러 번 만났지만 아직 그 속 이야기를 다 듣지 못한 것만 같은 도시. 저자에게 삿포로는 그런 도시다. '삿포로'하면 '맥주'가 떠오르는 나에게 이 책에서도 삿포로 맥주 박물관 이야기를 해준다. 1987년 7월 개관한 이래 2004년 12월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사진에 담긴 삿포로의 야경을 보며,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본다. 여행지의 야경이기에 아름다웠을까, 그곳을 바라보는 저자의 마음이 편안해서 아름다워보이는 것일까? 여행할 때의 마음을 떠올려본다.
황홀한 야경을 품은 도시 하코다테. 눈쌓인 항구도시, 그곳의 먹거리 몇 가지도 함께 살펴보고, 케이블카를 타고 하코다테산이라 불리는 산 정상으로 올라갈 때 담은 사진도 바라본다.
이 도시의 야경이 아름다운 이유는, 고요하게 빛나기 때문. (269쪽)
사진과 그림으로 접하는 야경을 바라보며, 사람 사는 에너지를 느껴본다. 멀리서 바라볼 때 고요하고 정적인 모습, 가까이서 보면 불빛 아래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며 분주할지도 모를 사람들의 일상을 떠올린다.
이 책을 보며 여행에 대해 생각해본다. 여행은 단순히 공간만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낯선 공간에 던져진 내 모습을 보며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된다. 일상에서 보지 못했던 나의 과거 시간과 그에 대한 감상까지 끌어내는 의식이다. 다른 여행자의 글을 보며 나의 여행을 되짚어보는 것 또한 여행의 일종이다. 이 책을 읽으며 여행을 떠올리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여행은 팔 할의 우연과 이 할의 행운이 만들어 내는 마술. (311쪽)
반복되는 여행을 통해 나는 배웠다. 시간은 우리 주위를 공전하고 삶은 여러 겹으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319쪽)